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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4

韓国政府、慰安婦証言集発行へ


これを見ると、韓国で「強制動員」と言っているのは、日本語で言うところの「広義の強制連行」に近い意味らしい(しかし、挺対協などは、最初は「徴用」だと主張していた)。慰安婦騒動が始まってから20年も経って、ようやく公式の証言集というのは少々奇妙な話。韓国政府も最初からこれが身売りの話だと分かっていたのだろう。

これまで「日本の右翼」が証拠を出せと言っていたが政府公認の資料でなかったから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と言っているが、証言集なら政府公認非公認は関係ない。なにより、この記事を読む限り「従軍慰安婦を動員する業務が徴用の対象業務に含まれていた」ことを証明するものでもなさそうである。

最後に、金日成時代に発行された北朝鮮の証言集を中央日報が独自に手に入れたという話が。金日成の死去は94年だから、韓国は北朝鮮に約20年以上遅れて公式の証言集を発行したことになる。韓国政府は「女性の名誉と尊厳」について日本や北朝鮮に比べて意識が遅れているのではないか?朝鮮戦争の慰安婦に関する資料を非公開にしているのも、そのせいか?

政府傘下の機関といっても、朝鮮人だけで8万から18万が動員されたと主張する調査機関って、果たして学術的に相手にする価値はあるのだろうか?

「軍人の相手をした年齢が・・・」衝撃
慰安婦12人肉声証言入れた口述集、政府来年1月発刊へ

政府が日本軍慰安婦ハルモニの肉声証言を入れた口述集を出す。 国務総理直属対日抗争期強制動員被害調査およ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等支援委員会(委員長パク・インファン・以下委員会)が、来年1月慰安婦ハルモニの口述資料集を発刊する予定だと23日明らかにした。 政府レベルで慰安婦ハルモニの公式記録を発行するのは今回が初めてだ。 委員会は2005年1月から最近まで全国各地を歩き回り日本軍慰安婦被害者ハルモニ12人の口述資料を採集した。 慰安婦ハルモニは口述集で数十年前体験した恥辱の記憶を苦痛に呼び出した。

ハン・スンボク(89・仮名)ハルモニは1940年日本人2人にむやみに引きずられて行った。 釜山港で全身にむちで打たれて船に乗った。 目を明けると台湾、基隆の日本軍部隊近隣だった。 十七歳の少女はその日から5年間日本軍人を体で受け取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ハルモニは震える声でぞっとした記憶を語った。

「昼夜無条件に軍人だけを相手にするのだ。 軍人は今日死ぬか明日死ぬか分からないから人情がない。 軍人が列をつくって押し寄せて・・・。 一度相手をする度に洗ってまた洗って、下半身が冷たく自分の体ではないようだった」

キム・ボクニム(82・仮名)ハルモニもほぼ同じ時期に中国、延吉(ヨンギル)に引きずられて行った。 「金を儲けるようにする」という職業紹介所の人の話にだまされたのだ。 1942年、ハルモニ十三歳の時であった。 初め1年間は雑用だけだった。 しかし翌年日本軍人を相手にする慰安婦になった。 十四歳の少女ががっしりした軍人を相手するのは深刻な苦痛だった。

「まだ十四歳になったのが子宮が開かない。 日本語で軍人が『できないよ』と、お客さん相手をしない(?)と私を殴った。 ああ、私がその言葉だけ言えば今でも心臓がどきどきして…」

ハルモニは解放後に中国人服で男装したまま逃げた。 彼女は「私の苦労したことは、天と地しか分からない」として胸を打った。

委員会によれば日帝は1930年初めから1945年まで約8万~18万人の朝鮮人女性を「日本軍慰安婦」として強制動員した。 だが、この中236人だけ公式被害者と確認された。 大部分は各種病気などで死亡したり中国など海外に住んで把握が容易でない状態だ。 委員会側は口述集調査過程で生存している慰安婦ハルモニ3人を新たに捜し出した。 2007年以後6年ぶりだ。 チョン・ヘギョン調査2課長は「大多数の被害ハルモニは家族に迷惑になるかと思って慰安婦という事実を隠して生きている」と話した。

これまで民間レベルで慰安婦口述集が発刊されたことはある。 だが、今回の口述集は政府レベルで作成された最初の慰安婦関連記録物という点で意義が大きい。 委員会側は「慰安婦白書発行も検討中」と明らかにした。 パク・イヌァン委員長は「これまで日本右翼勢力が『証拠を出せ』と主張してきたが政府レベルの公式文書がなく対応できなかったのが事実」とし「今回の口述集が日本右翼に否定できない証拠と受け入れられるように願う」と話した。
一方北朝鮮は金日成(キム・イルソン)政権の時慰安婦口述集を公式発行していたことが確認された。 本紙が単独入手した北朝鮮の慰安婦口述集(1995年発行)には「(日本軍慰安婦は)日帝ファッショの非人間的圧迫と搾取、そして耐え難い人身的侮辱行為」というキム・イルソンの端書が含まれている。 2004年発刊された「日本軍性的奴隷制も」でも金正日の言葉が書かれている。

中央日報 2012.12.24
日本語版

"군인들 몸으로 받아낸 그때 나이가…" 충격

위안부 12명 육성 증언 담은 구술집, 정부 내년 1월 내기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을 담은 구술집을 낸다. 국무총리 직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장 박인환·이하 위원회)는 내년 1월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술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공식 기록을 발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원회는 2005년 1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2명의 구술 자료를 채집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구술집에서 수십 년 전 겪은 치욕의 기억을 고통스럽게 불러냈다.

한순복(89·가명) 할머니는 1940년 일본인 2명에게 무작정 끌려갔다. 부산항에서 온 몸에 매를 맞고 배에 올랐다. 눈을 떠보니 대만 지룽의 일본군 부대 인근이었다. 열일곱 소녀는 그날부터 5년간 일본 군인들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끔찍했던 기억을 풀어냈다.

“낮이고 밤이고 무조건 군인들만 상대하는기라. 군인들이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께 인정사정이 없어. 군인들이 나라비(줄)를 서서 죽 미는데…. 한 번 받을 때마다 씻고 또 씻고 하니께 아랫도리가 차가워서 남의 살이 돼 버리는기다.”

김복님(82·가명) 할머니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 옌지로 끌려갔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직업소개소 사람의 말에 속아서였다. 1942년, 할머니 나이 열세 살 때였다. 처음 1년간은 허드렛일만 했다. 그러나 이듬해 일본 군인들을 상대하는 위안부가 됐다. 열네 살 소녀가 건장한 군인들을 받아내는 건 극심한 고통이었다.

“이제 열네 살 먹은 게 자궁이 벌어지나. 일본말로 저그끼리 ‘데키나이요(できないよ: 할 수가 없다)’카더니 손님 안 받는다고 나를 두들겨 패는기라. 아이고, 내가 그 말만 하면 지금도 심장이 뛰고….”

할머니는 해방 후에야 중국인 옷으로 남장을 한 채 달아났다. 그는 “내 고생한 거는 하늘과 땅밖에 모른다”며 가슴을 쳤다.

위원회에 따르면 일제는 1930년 초부터 1945년까지 약 8만~18만 명의 조선인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236명만 공식 피해자로 확인됐다. 대부분은 각종 질병 등으로 사망했거나 중국 등 해외에 살아 파악이 쉽지 않은 상태다. 위원회 측은 구술집 조사 과정에서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 3명을 추가로 찾아냈다. 2007년 이후 6년 만이다. 정혜경 조사2과장은 “대다수 피해 할머니들이 가족들에게 폐가 될까봐 위안부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민간 차원에서 위안부 구술집이 발간된 적은 있다. 하지만 이번 구술집은 정부 차원에서 작성된 최초의 위안부 관련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위원회 측은 “위안부 백서 발간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박인환 위원장은 “그동안 일본 우익 세력들이 ‘증거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 문서가 없어 대응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구술집이 일본 우익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 정권 때 위안부 구술집을 공식 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북한의 위안부 구술집(1995년 발간)에는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파쇼의 비인간적 압박과 착취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인신적 모욕행위”라는 김일성의 머리말이 담겨 있다. 2004년 발간된 ‘일본군성노예제도’에서도 김정일의 발간사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