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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慰安婦、ホロコーストサバイバーと再会


「돼지 풀과 사료를 주며」という部分を、どう訳すのか分からなかったが、「豚の草と飼料」を与えられたと訳した。間違っていたら指摘して下さい。食事に絡めた日本軍による虐待というイメージなのだろうが、食事の献立は慰安所の主人か賄いが決めるのである。豚の餌を食わされたとしても、それは経営者ががめつかったという話で日本軍は関係ない。しかし、何人の人が、彼女が「主語抜き」で話をしていることに気づいたか?

イ・オクソンは海外講演も多く、アメリカやカナダからもファンレターをもらうらしい。中央日報の英字版は、2年前、彼女が日本の軍人に拉致されたと紹介していたが、彼女の過去の証言と照らし合わせると疑わしい。

慰安婦被害イ・オクソン・ハルモニ「反省ない日本政府の態度に怒り」

日の慰安婦蛮行知らせようと再び米国訪ねたイ・オクソン・ハルモニ、ニューヨークでホロコースト生存者と再会…生き生きした証言に米大学生「驚くべきだ」

2011年12月米国、ニュージャージー州パリセイズパーク市に建てた海外初の日本軍慰安婦記念碑を訪れ、黙黙と涙を流して米国人の心を打ったイ・オクソン・ハルモニ(87). 彼が1年半ぶりに再びニューヨークとニュージャージーを訪れた。 高齢で10時間を越える飛行機搭乗も大変だったが変わらない日本政府の態度に我慢できなかったと話した。

11日(現地時間)午後、ニューヨークのクイーンズ・コミュニティカレッジのカッファバーグ・ホロコーストセンターを訪れた彼女は、当時一緒に会見に出たホロコースト(ナチのユダヤ人大虐殺)生存者のお婆さんとの再会の抱擁を交わした。 イ・ハルモニは「日本の反省ない態度に腹が立つ」として出ない声を力いっぱい振り絞って話した。 同席したチャールズ・レビン、ロン・キム・ ニューヨーク州下院議員など地元の政治家たちも首を縦に振った。

この日、地元の画家の日本軍慰安婦ハルモニをテーマにした美術展が同時に開かれ特別な来客も目についた。 今回の行事を主管した市民参加センター(注:KACE)が昨年から韓国などの辛い歴史を知らせるために開設した「東北アジア歴史の正義インターンシップ」に参加している米国大学生だ。 彼らはイ・ハルモニの証言に大いに驚いたようだった。

「慰安所に行ってみると、人住む所でなく屠殺場同じだった。 幼い少女に豚草と飼料をやって(? 돼지 풀과 사료를 주며 )延命するようにしてたし、死の淵(?)も数回渡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日本軍が強制的に私を引っ張っていったが日本は介入しなかったというと・・・」

イ・ハルモニが1942年16才の年齢に日本軍慰安婦に引きずられて行き、中国吉林省の延吉で解放された年まで体験した仕事を生き生き伝えると、すぐに大学生の質問が多くなされた。 イ・ハルモニは疲れることも忘れたまま一つ一つ答えた。 ある学生は「学校で一度も触れたことがない話」だったと話した。

イ・ハルモニは15日記念碑を再び訪問した後17日にはワシントンで開かれる日本軍慰安婦決議案連邦下院通過6周年記念行事に参加する。

東亜日報 2013.7.13

2年前の様子
イ・ヨンス(右端)は今回同行せず

위안부 피해 이옥선 할머니 “반성 없는 일본 정부의 행태에 분노”

日의 위안부 만행 알리려 다시 미국 찾아간 이옥선 할머니
뉴욕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재회… 생생한 증언에 美대학생들 “놀랍다”

2011년 12월 미국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시에 세워진 해외 첫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찾아 묵묵히 눈물만을 흘려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이옥선 할머니(87). 그가 1년 반 만에 다시 뉴욕과 뉴저지를 찾았다. 고령으로 10시간이 넘는 비행기 탑승도 힘들었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일본 정부의 행태를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본보 2011년 12월 17일자 A6면 참조… “한국도 못한걸…” 美 위안부 추모비 앞 떠나지 못한 할머니들

11일(현지 시간) 오후 뉴욕 시 퀸스커뮤니티칼리지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를 찾은 그는 당시 함께 회견에 나섰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 할머니와 재회의 포옹을 나눴다. 이 할머니는 “일본의 반성 없는 행태에 분노한다”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힘껏 짜내 얘기했다. 자리에 함께한 찰스 래빈, 론 김 뉴욕 주 하원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현지 지역 화가들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주제로 한 미술 전시회가 함께 열려 특별한 손님도 눈에 띄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시민참여센터가 지난해부터 한국 등의 아픈 역사를 알리기 위해 개설한 ‘동북아 역사정의 인턴십’에 참가하고 있는 미국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이 할머니의 증언에 적잖이 놀라는 듯했다.

“위안소에 가 보니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도살장 같았다. 어린 소녀들에게 돼지 풀과 사료를 주며 연명하도록 했고 죽음의 고비도 수차례 넘겨야 했다. 일본군이 강제로 나를 끌고 갔는데 일본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 할머니가 1942년 16세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에서 광복되던 해까지 겪었던 일들을 생생히 전하자 대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할머니는 피곤함도 잊은 채 하나 하나 답했다. 한 학생은 “학교에서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15일 기림비를 다시 방문한 뒤 17일에는 워싱턴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연방 하원 통과 6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