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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5

米軍慰安婦、初めての実名告発


アメリカ軍の慰安婦がついに実名で名乗り出た(!)

金学順が名乗り出た時のように、全米を揺るがす大ニュースになるか?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が一面で報じ、オバマ大統領が謝罪、アジア女性基金を立ち上げ、日本人慰安婦もついに補償の対象に?・・・なんて事にはなるまい。

元アメリカ軍人の中からも、早くから日本軍の慰安婦はキャンプ(基地)村の売春婦と変わらないという指摘があった。その事に目をつむり日本を叩く韓国の運動家たちを、彼は「偽善者」と呼んだ。

韓国のキャンプ村売春について報じた2009年の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は、慰安婦という言葉こそ使わなかったが(ネット上では「慰安婦」と訳した産経に対してバッシングを浴びせる左派系日本人も見られた)、今回のオーマイニュースの記事は、ハッキリとこれを慰安婦だと言い切っている。しばしば慰安所では日本名を強制されたなどと言われるが、韓国でも「源氏名」が使用されていたことが彼女の証言から分かる。

米軍基地村の女性、ジョンジャさんの証言を聞いて下さい

[書評] <米軍慰安婦キャンプ村の隠された真実>

「キム・ジョンジャがある窓を指差した。 人身売買された数日後、逃げて捕まり監禁された部屋だといった。その日、部屋に閉じ込められたまま彼女はチンピラに集団で暴行された。 その後にも警察に通報したとか、、米軍が買ってくれる(?)ご飯を食べたと、米軍(客?)を引っ張って来れなかったとチンピラに殴られたりした。その窓の前で彼女は泣き崩れた。ハンカチで口を塞ぎ座り込んで嗚咽した。

ヨンジュゴルの「慰安婦」たち

-本当に:この小部屋で・・・(泣)・・・この小部屋で閉じ込められ合って・・・(泣)・・・」 -<米軍慰安婦基地の村の隠された真実>

「米軍慰安婦キャンプ村の隠された真実」(ハンウルアカデミー編集)は我が国にも政府によって統制され管理された米軍慰安婦があったという事実を米軍基地村(キャンプ村)の女性が証言した記録、すなわち証言録だ。

証言者はキャンプ村の女性、すなわち米軍慰安婦として数十年を生きてきたキム・ジョンジャさん。16才の時、小学校頃の同級生が自分が働く紡織工場に紹介させる」と騙し、自分の借金まで押し付け、売春していた坡州ヨンジュゴルに人身売買した。 その後、米軍の慰安婦になった。

キム・ジョンジャ氏は坡州のヨンジュゴルに言った後、ポン引きの監視の中で数十年間米軍のキャンプ村を抜け出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そうこうするうちにキャンプ村の女性たちの人権活動集いでこの本の企画者であるセウムトの助けで米軍のキャンプ村をかろうじて抜け出すことができた。

彼女は米軍基地村から抜け出すまで数十年の間、彼女の意志と全く無関係に何人ものポン引きに売られ、새코날 のような薬物中毒になり体を売った。 ひたすらポン引きのために金を儲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言ってみれば性奴隷であった。

数十年の間、数多くの米兵を相手に体を売って金を儲けたが、多くの売春女性たちがそうするように稼いだ金はほとんど全部ポン引きに奪われた。 また、売春婦として生きる生活が長くなれば長くなるほど理解不能な理由と計算法で借金だけが増えた

京畿道坡州の売春街、俗称「ヨンジュゴル」

彼女が転々としたキャンプ村は、坡州市のヨンジュゴルを始めとして、Munsanのキャンプ村とGwangtanのキャンプ村、東豆川の香港ヴィレッジ(?)、群山のキャンプ村、平沢市の安停里のキャンプ村(Camp Humphreys)、議政府市のPaesbeolキャンプ村、ソウルのSamgagjiキャンプ村、大邱市のWaegwanキャンプ村など米軍が駐留したところだ。

「韓国政府は1973年6月『韓米親善協会』の設立と機能に関する規定を公布し、その年の9月まで全国に68の「協会」が作られた。 この協会の韓国側構成員はキャンプ村クラブのポン引き、地方政府の関係者(市長や郡守、保健所長、広報官)、地元警察、韓国特殊観光協会、姉妹会(記者注:基地の村女性たちの福祉などのためという名目などでポン引きによって米軍キャンプ村女性たちを会員で登録管理したが、実は監視や管理などが主目的だった)代表であったし、米国側は基地司令官(あるいは、その代理)、憲兵司令官、軍医官、民事課将校(地域関係業務と将校)、公務将校などだった。

協会の集いは通常月に一度開かれたが、この会議で双方は「相互理解と関心の問題」を解決しようとし、キャンプ村クラブのサービスと施設の改善、性病伝染者などとキャンプ村女性たちにへの指示は、共通の理解問題で上位(?)に置かれていた」 (キャサリン・H・S・ムーン 2002:127) - <米軍慰安婦基地の村の隠された真実>

私たちにとって慰安婦は「日本軍慰安婦」だけだ。 このために米軍基地周辺で売春をした女性たちが、実際は韓国政府によって統制され管理された「米軍慰安婦」だったとの事実に衝撃を受ける人もいるかも知れない。 本によれば「1970年代パク・チョンヒ政権の『キャンプ村浄化事業』を通じ、米軍慰安婦はずっと存在した」と明らかにしている。

彼女は私たちに「洋パン(ヤンセクシ)」「洋公主」「ヤンガルボ」などと呼ばれた、後ろ指を差され蔑視されて米兵相手に性を売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米軍キャンプ村の女性たちと米軍のキャンプ村が韓・米両国政府によって直接管理されたことを生き生きと証言する。

「慰安婦」の健康証明書 

この本はキム・ジョンジャの証言の他に、証言旅行、その旅程により今でも厳格に存在しているキャンプ村(?)の姿などを写した写真と当時米軍キャンプ村を取り巻いて広がった事件と政策に関する新聞記事、米軍キャンプ村の人同士で交わされる用語や米国慰安婦あるいは米軍キャンプ村の現実が分かる関連説明等を含む。

これまでセウムトのような団体や女性運動家によって米軍キャンプ村あるいは米軍キャンプ村の女性問題を扱う試みは、稀にはあったという。 しかし、このようにキャンプ村女性が直接立ち上がって自身の経験と苦痛を証言したことは初めてとのことだ。

キャンプ村の女性が自身の経験と苦痛を証言したのは初めて

彼女が数十年間米軍のキャンプ村で呼ばれた(米軍のキャンプ村でつけられた)名前を捨て、両親がつけてくれた名前でこのような証言をするのは、証言を通じてはじめて息をすることができ、無くした自身を探し当てることができたからだという。

彼女が証言した理由は、米軍基地周辺で売春をした女性たちが意図的に統制され管理されて売春をせざるを得なかった被害者だという事実を国民に知らせたいからだという。 また、自身のように人身売買され言いなりになって搾取されるのも足りなくて米軍とポン引きに死んでいった数多くの米軍キャンプ村の女性たちの無念の死、今でも存在する米軍キャンプ村の女性たちの口惜しい事情を国民に知らせたいためだ。

基地の周りには売春街が出来る(ヨンジュゴル)

キム・ジョンジャが瞬間ギョッとするようだったのにさめざめと泣き始めた。

--本当に、空を屋根とし、大地(?)を床として、それと共に米軍を受けた・・・。동지섣달에 구덩이를 이렇게 파구서、거기에 들어가 팔으라 하면 팔고・・・体を・・・ある男(?)したらは枯淡にまた、別の男、また別の男、また別の男・・・ 洗うこともできず・・・パンツをどう履いて(?)・・・早くして金を儲けて持って降りてこ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 お金でも与える? どうする時は毛布与えて、米軍の毛布。ムカデの食べるご飯、乾いたこと、それを与えて。 それを持って毛布持って明け方ぐらいなって降りてこなくちゃ。  환할 때 거기 올라 댕기는 거 알면 또 잽혀 갈까봐。 生きてきたのが本当に・・・死なずに、ここまでこの年を取るように生きてきたことだけでも本当に・・・本当に・・・生きてきたのが狂いそう・・・(泣)・・・」 -<米軍慰安婦基地の村の隠された真実>で <ブログ注:この部分話し言葉の為、手作業でも修正仕切れず>

彼女は死んで海に葬られ(?)たいと言う。 今は平凡な山に過ぎないが、一時米軍の訓練場で使われたムンサン(京畿道坡州市)の色々な野山に引きずられて行って訓練中の米兵に体を売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記憶とその苦痛のため、山をまともに見ないで(?)生きるためだ。

本を読み、ずっと子供の頃、隣近所の誰の娘誰それを「ヤンガルボ」あるいは「洋パン」「洋公主」と指差し悪口を言ったりしていた町内の大人たちの姿が浮び上がった。 カルボが何かも分からなかったその時、コソコソ話す大人たちからは、決して望ましくない何か、汚い何か感じたものだ。

このように幼い頃に知った米軍キャンプ村の女性たちに対する偏見は、その後、米軍キャンプ村の女性たちの一連の人権活動に接しながらも、あるいはパク・チョンヒ政権が米軍のために施したという話を聞いても同情さえ覚えなかった。

この<米軍慰安婦キャンプの村の隠された真実>を読みつつ、永い歳月抱いていた偏見を破ってくれて、個人的に本当にありがとうと思う。 今後他の証言者の勇気ある証言がさらに出て、多くの国民の公憤を得ることができたら、そして韓・米両国政府の責任を問う基礎になって欲しい。

また、キム・ジョンジャ氏の願い通り、搾取の結果で苦痛な生活を送る米軍慰安婦キャンプ村の女性たちが、せめて医療費の心配だけでもなしに治療受けることができるならば、そして私たちの社会でこれ以上放置されることのないように。


公平の為に言っておくと、現在のアメリカ軍は、少なくとも表向きはこういった(人身売買紛いの)売買春にアメリカ兵が関わる事を禁止している[Stars and Strimpes 2005.8.28]。また、キム・ジョンジャも働いていた安停里では、店が売春に関わっていると分かれば兵士の出入りを禁止すると軍は通達している。ただ、従業員によれば、そうした通達を店側が厳格に守っているかは疑わしい[Stars and Strimpes 2005.10.27]。この本を企画したセウムトという団体は、挺対協が日本政府にしたように、キャンプ村売春についての資料公開や関係者の処罰をオバマ政権に要求したらしい例によって、アメリカ政府はスルーしたようだが。

本文中に挿入した写真は京畿道坡州の売春街、俗称ヨンジュゴルの様子(要確認)。正確な撮影日は不明。

”パスポートを取り上げる行為は違法”
米軍主催の説明会(Camp Humphreys 2005)


미군기지촌 여성, 정자씨 증언을 들어보세요

[서평]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김정자가 한 창문을 가리켰다. 인신매매된 며칠 후에 도망치다 붙잡혀 감금됐던 방이라고 했다. 그날 방에 갇힌 채 그녀는 깡패들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당했다. 그 후로도 경찰에 신고했다고, 또는 미군이 사주는 밥을 먹었다고, 미군을 끌고 오지 못했다고 깡패들에게 구타를 당하곤 했다. 그 창문 앞에서 그녀가 무너져 내렸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오열을 했다.

- 정: 이 골방에서… 흑흑흑… 이 골방에서 갇혀서 맞고… 흑흑…."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에서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한울아카데미 펴냄)은 우리나라에도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된 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군 기지촌 여성이 증언한 기록, 즉 증언록이다.

증언자는 기지촌 여성, 즉 미군 위안부로 수십 년을 살아온 김정자씨. 16세 때, 초등학교 동창이 '자신이 일하는 방직공장에 소개시켜준다'고 속여 자신의 빚까지 떠넘겨 성매매하던 파주 용주골로 인신매매하였다. 그후 미군위안부가 되었다.

김정자씨는 파주 용주골로 간 이후 포주들의 감시 속에서 수십 년간 미군 기지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활동 모임으로 이 책의 기획자인 새움터(박스기사 참고)의 도움으로 미군기지촌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미군기지촌에서 벗어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그녀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여러 포주들에게 팔려 새코날 같은 약물에 중독되어 몸을 팔았다. 오로지 포주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말하자면 성노예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아 돈을 벌었지만,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이 그러는 것처럼 번 돈은 거의 전부 포주들에게 빼앗겼다. 또, 성매매 여성으로 사는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해하지 못할 이유와 방식의 계산으로 빚만 늘어갔다.

그녀가 전전했던 기지촌들은 파주 용주골을 시작으로 문산 기지촌과 광탄 기지촌, 동두천 홍콩빌리지, 군산 기지촌, 평택 안정리 기지촌, 의정부 뺏벌 기지촌, 서울 삼각지 기지촌, 대구 왜관 기치촌 등 미군들이 주둔한 곳이다.

"한국정부는 1973년 6월 '한미친선협회'의 설립과 기능에 관한 규정들을 공포했고, 그해 9월까지 전국에 68개의 '협회'가 만들어졌다. 이 협회의 한국 측 구성원은 기지촌 클럽 포주들, 지방정부 관계자(시장이나 군수, 보건소장, 공보관), 지방경찰, 한국 특수 관광협회, 자매회(기자 주: 기지촌 여성들의 복지 등을 위한다는 명목 등으로 포주들에 의해 미군기지촌 여성들을 회원으로 등록 관리하였으나 실은 감시나 관리 등을 주목적이었던) 대표들이었고, 미국 측은 기지 사령관(혹은 대리), 헌병사령관, 군의관, 민사과 장교(지역 관계 업무와 장교), 공무 장교 등이었다.

협회의 모임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열렸는데, 이 모임에서 양측은 '상호 이해와 관심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고, 기지촌 클럽 서비스와 시설의 개선, 성병 전염자들과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지도는 공통의 이해문제로 우위에 놓여있었다." (캐서린 H.S.문.2002:127) -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에서

우리에게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뿐이다. 이 때문에 미군기지 주변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이 사실은 우리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된 '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책에 의하면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기지촌 정화사업'을 통해 미군위안부는 계속 있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양색시', '양공주', '양갈보' 등으로 불리던,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으며 미군들을 상대로 성을 팔아야만 했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과 미군 기지촌이 한·미 양국 정부에 의해 직접 관리되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책은 김정자의 증언 외에 증언 여행, 그 여정에 따라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기치촌의 모습 등을 찍은 사진과 당시 미군기지촌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과 정책에 관한 신문기사, 미군기지촌 사람들끼리 오가는 용어나 미국위안부 혹은 미군기지촌의 현실을 알 수 있는 관련 설명 등을 담고 있다.

이제까지 새움터 같은 단체나 여성운동가들에 의해 미군기지촌 혹은 미군기지촌 여성문제를 다루기 위한 시도들은 더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기지촌 여성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증언한 것은 처음이란다.

기지촌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증언한 것은 처음

그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군기지촌에서 불린(미군 기지촌에서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이와 같은 증언을 하는 이유는 증언을 통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녀가 증언한 이유는 미군기지 주변에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 의도적으로 통제되고 관리되며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란다. 또한 자신처럼 인신매매되어 끌려 다니며 착취당하는 것도 모자라 미군과 포주들에게 죽어간 수많은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억울한 죽음, 지금도 존재하는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김정자가 순간 멈칫하는 것 같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정: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그러면서 미군을 받았다…. 동지섣달에 구덩이를 이렇게 파구서, 거기에 들어가 팔으라 하면 팔고… 몸을… 한 놈 하고 나면은 고담에 또 딴 놈, 또 딴 놈, 또 딴 놈…. 씻지도 못하고… 빤스를 어찌 입어… 빨리빨리 해서 돈 벌어갖고 내려와야 되는데…. 돈이나 줘? 어쩔 땐 담요 줘, 미군 담요. 지네들 먹는 밥, 말라붙은 거, 그거 줘. 그거 들고 담요 들고 새벽쯤 돼서 내려와야지. 환할 때 거기 올라 댕기는 거 알면 또 잽혀 갈까봐. 살아온 게 진짜 … 죽지 않고 여기까지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온 것만 해도 진짜… 참… 살아온 게 미쳐 버리겠다… 흑흑흑…."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에서

그녀는 죽어서 바다에 묻히고 싶단다. 지금은 평범한 야산에 불과하나 한때 미군의 훈련장으로 쓰인 문산(경기도 파주시)의 여러 야산으로 끌려가 훈련 중인 미군에게 몸을 팔아야만 했던 기억과 그로인한 고통 때문에 산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시절 이웃동네 누구네 딸 아무개를 '양갈보' 혹은 '양색시', '양공주'라 지칭하며 흉을 보곤 하던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갈보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때, 수군거리는 어른들에게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무언가, 더러운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알게된 미군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편견은 이후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인권 관련 일련의 활동들을 접하면서도, 혹은 박정희 정권이 미군들을 위해 베푼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동정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 책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을 읽으면서 오랜 세월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줘서 개인적으로 참 고맙다. 앞으로 다른 증언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들이 더 나와 많은 국민의 공분을 얻을 수 있었으면, 그리하여 한·미 양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김정자씨의 소원대로 착취의 결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들이 병원비 걱정만이라도 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