ソウル新聞から在米韓国人有権者センター(KAVC)のキム・ドンソク所長のインタビュー。KAVCとキム・ドンソクについては、
これまでにも取上げたことがある。
2007年のアメリカ下院の慰安婦決議。韓国政府は日本政府の手前、議会工作に資金は拠出しなかった、とキム所長は言う。たぶん本当なのだろう。
しかし、06年6月5日の中央日報の伝えるところでは(記事は現在ネットから削除されている)、韓国の女性家族部(省)の長官が、日本が「女性・少女へのら致・組織的強かんで、非人道的行為・犯罪を行った」として
「決議案が本会議に上程、可決することを期待し、韓国女性を代表し全的な支持を送る」という書簡をアメリカの議員に送っているし、駐米韓国大使館の参事官が
「可決に向けた運動を展開する在米韓国人団体などにホンダ議員を紹介するなど、可決に関連したすべての過程を調整した」と同じく中央日報が08年に報じている。
ご丁寧にも「(参事官は)
自分を徹底的に隠した。韓国政府が介入しているとの印象を与えれば...米下院が負担を感じ、処理を保留するかも知れない、と判断したから」だと白状している。いつもの事ながら、日本政府は裏切られたわけだが、国際政治というのはそういうものなのだろう。
キム・ドンソクはしかし、韓国政府から資金援助がなかった為にアメリカの議員たちから政治資金を無心されて困ったと告白している。これは、知らなかったなぁ(笑)
その他、全米に「慰安婦の碑」を建てるという計画についても、当サイトで何度かお伝えした。「日本軍性奴隷制度」をホロコーストとダブらせるイメージ戦略も、目新しいニュースではない。ただし、
ホロコースト博物館内に「慰安婦の碑」を建てるという話は初めてかもしれない。
慰安婦問題とは関係ないが、竹島(独島)問題でアメリカ人の情に訴えるために(?)子供を連れて行ったという話。かつて
アナベル・パクが子供を連れて下院議員を説得して回った(慰安婦決議)話を思い出す。
キムは、米国で
一部の韓国系がやっている独島(竹島) 広告は逆効果だとも指摘している。
「在外参政権利用して出世しようとする人がいる」キム・ドンソク韓国人有権者センター所長会ったところ…
来年4月総選挙から始まる在外国民選挙を控えて全世界同胞社会がざわついている。 特に在外同胞が最も多く居住する米国の韓国人社会は少なくないジレンマに陥った雰囲気だ。 200万在米同胞中100万人は在外国民投票権を持つ永住権者および一般・留学生滞留者などで、他の100万人は米国内投票権を持った市民権者などであるためだ。
在米同胞の米国内政治力伸張のため「草の根運動」を主導してきたキム・ドンソク(54)韓国人有権者センター所長を去る22日ソウル プラザホテルで会って1時間余りの間インタビューした。 キム所長は在外国民選挙および韓国人政治力向上のための在外同胞政策をはじめ、日本軍慰安婦・独島(竹島)問題などに対する立場を詳しく明らかにした。 次はキム所長との一問一答.
→在外国民選挙が始まるのにこれに対する評価は。
-その間在外同胞政策は海外で他国へ移住する時に反共教育をさせるなど現地で模範市民がよくすることよりは、公館で管理して韓国側で視線を転じるようにして現地で孤立になった。 中国の場合、移民者らに中国を忘れて現地で新しい中国を作れというが、私たちはそのような方向を持って長期的に在外同胞を考えなかったために粗雑に在外同胞に参政権を与えることになった。 もちろん韓国国籍の人々に参政権を与えることが原則的に間違いではないが、今は国際社会で民族力量を構築するという側面での政策が出てくるべきなのにそんなことはなくて、韓国で視線を転じて出世しようとする。 それは在外同胞として成功でない。 米国で長く生きたら米国で競争力を持って影響力を行使するべきなのに、そうならないことが在外同胞社会の現実だ。
→韓国人政治力伸張のための草の根運動を始めることになった契機は。
-19年前の1992年4月29日米国のロサンゼルス韓国人タウンで黒人暴動が起きたが韓国人に対する保護はなされなかった。 これを目撃して、じっとしていられなかった。 白人政治家たちが在米同胞のために仕事をするようにしようと韓国人密集地域で政治力結集のための韓国人有権者草の根運動を始めた。 ニューヨークを中心に韓国人らが市民権をたくさん受けるようにして有権者で登録するように促して4万人の新規有権者を集めた。 数万人の票付和雷同の現象が現れるから議会で相当な関心を持ったよ。
→日本軍慰安婦決議案通過など相当な成果を上げたが。
-2008年ビザなしで90日間米国を訪問できるビザ免除プログラム(VWP)が施行されたのも私たちの側の役割が65~70%はなると見る。 韓国のアメリカビザ拒否率が下がり行きにくい状況で、2006年から米議会を動かして拒否率を落とす方向で議員らを説得して貫徹させた。
→日本軍慰安婦決議案通過後の後続措置は。
-日本側との摩擦を考慮して韓国政府・政界の助けを排除して韓国人らの力で決議案を通過させたところ米議員らの後援支援金要請が続いて堪え難かった。 「関係者が問題解決」心情で後続作業に出たし、韓国人密集地域議員らの訪韓プログラムを作った。 また、議員らが地方区韓国人らに対してたくさん理解して後援もさらに受けるようにするために「アメリカ韓国人功労決議案」を提案した。 2010年3月下院で通過した。 慰安婦問題も決議案にだけ終わ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考えで「慰安婦記念碑」を銅版に刻んでニュージャージー市図書館のそばに第1号をたてた。 今後2~3年内米全域に記念碑を10個以上建てて、ホロコースト博物館にも建てる予定だ。
→独島(ドクト)問題の海外広報などに対する意見は。
-2008年7月米議会図書館で独島(竹島)の名称を「リアンクール岩礁」 に変えようとす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独島(竹島)問題に飛び込んだ。 韓国人子供たちを連れてワシントンで行って涙で訴えた。 子供両親たちが独島(竹島)問題にパニックがあって仕事をしに行くことができないが、それで税金も出しにくいという要請文を発表した。 独島(ドクト)名称変更が米国益に絶対役に立たないと論理的にアピールした。 米議会図書館の司書が独島(竹島)名をなぜ変えようとしたなら、韓国広報専門家などがワシントンポストなどに「独島は私たちの土地」広告を出したのを見て独島が紛争地域だと考えたためだ。 米国内独島広報は役に立たない。 今は学術的に整えることみな整える時まで実効的支配を維持しながら戦略的に接近しなければならない。 特に米国人たちが我が方を聞き入れ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在米同胞協力(?)強化策および政府の役割に対する提言は。
-韓国人たちが米国内模範市民になって母国のためにはもちろん貧困退治・犯罪予防など米社会問題に堂々と参加して寄与してこそ政治力が伸張する。 韓国人1世は母国だけ眺めている。 韓国人2世は相当数が出世したが韓国と韓・米関係に対して関心を持たない。 アイデンティティの危機が深刻だ。 韓国政府は在米同胞を抱いて管理して統制して韓国に引き込もうとせずに、米国社会に思う存分参加して実力を発揮しろと薦めなければならない。
“재외참정권 이용해 출세하려는 사람 있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만났더니…
내년 4월 총선부터 시작되는 재외국민 선거를 앞두고 전 세계 동포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특히 재외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미국의 한인사회는 적지 않은 딜레마에 빠진 분위기다. 200만 재미동포 중 100만명은 재외국민 투표권을 갖는 영주권자 및 일반·유학생 체류자들이고, 다른 100만명은 미국 내 투표권을 가진 시민권자들이기 때문이다.
재미동포의 미국 내 정치력 신장을 위한 ‘풀뿌리 운동’을 주도해온 김동석(54)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을 지난 22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1시간여 동안 인터뷰했다. 김 소장은 재외국민 선거 및 한인 정치력 향상을 위한 재외동포 정책을 비롯, 일본군 위안부·독도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자세히 밝혔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
→재외국민 선거가 시작되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재외동포 정책은 해외로 이민 갈 때 반공교육을 시키는 등 현지에서 모범 시민이 되게 하기보다는, 공관에서 관리하고 한국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해 현지에서 고립됐다. 중국의 경우 이민자들에게 중국을 잊고 현지에서 새로운 중국을 만들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방향을 갖고 장기적으로 재외동포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설프게 재외동포한테 참정권을 주게 됐다. 물론 한국 국적의 사람들한테 참정권을 주는 것이 원칙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민족 역량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의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고, 한국으로 눈을 돌려 출세하려고 한다. 그건 재외동포로서 성공이 아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으면 미국에서 경쟁력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재외동포 사회의 현실이다.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한 풀뿌리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년 전인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는데 한인들에 대한 보호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목격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백인 정치인들이 재미교포를 위해 일하도록 하려고 한인 밀집 지역에서 정치력 결집을 위한 한인 유권자 풀뿌리 운동을 시작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인들이 시민권을 많이 받게 하고 유권자로 등록하도록 독려해 4만명의 신규 유권자를 모았다. 수만명의 표쏠림 현상이 나타나니까 의회에서 상당한 관심을 갖더라.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는데.
-2008년 비자 없이 90일 동안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이 시행된 것도 우리 측의 역할이 65~70%는 된다고 본다. 한국의 미 비자 거부율이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2006년부터 미 의회를 움직여 거부율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의원들을 설득해 관철시켰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후 후속 조치는.
-일본 측과의 마찰을 고려해 한국 정부·정치권의 도움을 배제하고 한인들의 힘으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더니 미 의원들의 후원금 요청이 이어져 난감했다. ‘결자해지’ 심정으로 후속 작업에 나섰고, 한인 밀집 지역 의원들의 방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의원들이 지역구 한인들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후원도 더 받게 하기 위해 ‘미주 한인 공로 결의안’을 제안했다. 2010년 3월 하원에서 통과됐다. 위안부 문제도 결의안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위안부 기림비’를 동판에 새겨 뉴저지 시 도서관 옆에 1호를 세웠다. 향후 2~3년 내 미 전역에 기림비를 10개 이상 세우고, 홀로코스트 박물관에도 세울 예정이다.
→독도 문제의 해외 홍보 등에 대한 의견은.
-2008년 7월 미 의회 도서관에서 독도 명칭을 ‘리앙크루 록스’로 바꾸려 한다는 것을 알게 돼 독도 문제에 뛰어들었다. 한인 어린이들을 데리고 워싱턴으로 가서 눈물로 호소했다. 어린이 부모들이 독도 문제에 패닉이 있어 일을 하러 가지 못하는데, 그러면 세금도 내기 어렵다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독도 명칭 변경이 미 국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어필했다. 미 의회 도서관 사서가 독도 명칭을 왜 바꾸려 했냐면, 한국 홍보전문가 등이 워싱턴포스트 등에 ‘독도는 우리 땅’ 광고를 낸 것을 보고 독도가 분쟁 지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 독도 홍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학술적으로 갖출 거 다 갖출 때까지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면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미국인들이 우리 편을 들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재미동포 역량 강화 방안 및 정부 역할에 대한 제언은.
-한인들이 미국 내 모범 시민이 돼 모국을 위해서는 물론 빈곤퇴치·범죄예방 등 미 사회 문제에 당당히 참가해 기여해야 정치력이 신장된다. 한인 1세는 모국만 바라보고 있다. 한인 2세는 상당수 출세했지만 한국과 한·미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체성의 위기가 심각하다. 한국 정부는 재미동포들을 품고 관리하고 통제해 한국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미국 사회에 마음껏 참여해 실력을 발휘하라고 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