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6

なぜ「連行」を使わぬ?共同通信



日本の通信社でありながら、英語の配信記事では今だSex slave(性奴隷)という言葉を使う共同通信なのに、日本語で配信する時は「連行」という言葉すら使わない?


朴 玉蓮さん(パク・オクリョン=元従軍慰安婦)元慰安婦の女性が共同生活する韓国の「ナヌムの家」によると、15日、呼吸不全のため京畿道内の病院で死去、92歳。

19年、全羅北道生まれ。41年に現在のパプアニューギニア・ニューブリテン島のラバウルに連れて行かれ、3年間、旧日本軍の慰安婦として働かされた。90年代から京畿道にある「ナヌムの家」で暮らし、元慰安婦を支援する市民団体が毎週水曜日に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で行っている抗議集会にもたびたび参加した。(ソウル共同)

熊本日日新聞 2011.5.15

2011/05/15

慰安婦騒動の仕掛け人、元社会党議員 朝鮮統一に奔走中【清水澄子】



当時国会議員であった清水澄子は、91年、国会で朝鮮人女性(慰安婦)は「国家総動員法に基づいて挺身隊というのは徴用を受けた」と主張し(91.8.27)、同僚議員たちと一緒に政府を追及していた。政府は何度もそういった事実はないと説明していたが、彼女たちは納得しなかった。

しかし93年(93.3.23)には「政府は強制を立証する資料がないと表明しておられるわけですけれども、政府が考えられる強制というのはどのような内容でございますか」と、話を「強制連行(徴用)から「強制(性)」へとすり替えている。

彼女も話をすり替え慰安婦騒動を大きくした元凶の一人。2007年には当時の事をこう振り返って誇っているから、質が悪い。

吉見義明教授が防衛庁研究所図書館で「従軍」に関する軍の資料を発見し...私はこの資料で事実を政府に確認しました。 「強制とは何か」という質問に対して、政府は...だましたり脅したりして本人の意思に反して慰安婦にした場合も、強制だとはっきり答弁しています。 (日本の進路 2007.4)

清水は自分の追及により政府が「強制」を認めたと言っているが、彼女は、もともとは強制連行(徴用)の事実を追及していたはずである。それが、「『従軍』に関する資料」がどうの騙しも「強制」であるという言質を政府から取ったのと自慢しているのだからメチャクチャである。支離滅裂である事は本人も重々承知のはず。こういう人間が日韓関係を悪くしてきたのである。

安倍元首相を「新しいアジアの友好的な関係を作ろうという意思」がないと批判した彼女だが、真に日韓友好を求める人々は、むしろ清水のような日本人を淘汰する所から始めるべきだろう。

そんな彼女は今、朝鮮半島の南北交流の為に奔走している。南北分断も日本のせいだと言いながら・・・。(以下、翻訳の精度が悪そうなので、注意して下さい)


「韓国は北に食糧を支援し、北には感謝の意を伝えねばならない」

(10)清水澄子元日本社民党議員

1991年11月25日. 南北の女性が分断46年ぶりにソウルで顔を合わせた。 分断後初めて北朝鮮女性が板門店を越え、南北統一と平和を歌った。 これを成功させた人物は韓国の女性でも北朝鮮の女性でもなかった。 4年以上韓国と北朝鮮のメッセンジャーの役割を果たした清水澄子前日本社民党議員の努力が隠れていた。 南北分断に対する日本の責任を主張する清水議員から南北女性交流を成功させるまでの後日談と今の南北関係に対する所感を聞いてみた。

→4・15金日成の誕生日を迎えて北朝鮮に行ったと聞いた。 この頃平壌の雰囲気はどうか.

-金日成主席生誕100年(2012年)を控えてお祝いムードでした。 昨年北朝鮮に行った時とは違い、住宅がよく整備されているという感じだった。 杏の花とレンギョウがとても綺麗に咲いていて、休日にお祭りが重なりより楽しそうな雰囲気に見えました。

→外部では北朝鮮が非常に貧しいことが知られているが。

-経済的に貧しいのは事実です。 それでも来年に強盛大国を控えて国民経済強化を最優先する一方、とても自信に満ちて動いている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した。 技術などの色々な側面で遅れましたが、そんな中で自分たちの力で成し遂げるという意欲がすごいと感じました。

→何度目の北朝鮮訪問か。

-24回目です。 1972年に行ったのが最初でした。

→どんな契機で北朝鮮問題に関与することになったか。

-1972年北朝鮮の招請で初めて平壌を訪問しました。 その時までしても日本では朝鮮半島は認識の対象ではなかった。 当時北朝鮮で博物館、歴史展示館などを見て、日本が韓半島を植民支配したとのことを初めて知りました。 いわゆる女性運動、平和運動をする私が日本のこういう野蛮な行動を知らずにいたというからものすごく衝撃を受けました。

→南北が分断されたところに日本の責任を感じると主張しているのに….

-日本が起こした戦争で韓半島が踏みにじられた後、解放されることもなく、逆に連合軍によって分割占領されてではないか。 日本が敗戦したので韓半島を日本の領土と見て犠牲になったのだ。 植民支配が原因になって分断という犠牲を強要されているという意味で日本は韓半島問題に関心を持たなけれ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考えます。

→1991年の韓国、北朝鮮の女性交流にどんな契機に参加することになったか。

-1987年8月イ・ウジョン当時女性団体連帯共同代表が、「原水爆禁止世界大会(?)」に参加するため来日されました。 監視を避け、夜彼女が泊まっているホテルを訪ねて行って韓国の民主化の話を聞きたいと言いました。 するとイ代表の方から北朝鮮同胞の話を聞かせてくれと言われました。 イ代表は「同族なのに四十年以上会っていられない。 北朝鮮については何も分からない。 日本で北朝鮮女性に会うことができないか」と言って、韓国と北朝鮮の女性が会える場を作って欲しいとお願いされた。

実際日本と北朝鮮で国交が結ばれていなかった状況で、私としても大変難しいことでしたが、イ代表の情熱に感服するほかありませんでした。 それで誰に会いたいかと尋ねたところ「何と」ヨ・ヨング当時最高人民会議副議長(モンヤン ヨ・ウニョンの娘)を言うではありませんか(笑). その後4年間人伝を通じて北朝鮮に手紙を送った末に日本大会の開催が決定されました。 恐らく金日成主席に手紙が伝えられたと思われます。

→とても長い努力の末に成し遂げた成果だった。

-イ代表は南北が会うといえば政府の干渉を受けるから「アジア平和の女性の役割」でしたらどうかというアイディアを出しました。 行事の準備も文書では一切残さず、口頭でだけ伝え密かに準備しました。 正体が明らかになると思い、参加者も曖昧にしました。 三木睦子(故三木武夫前総理の夫人)、オタカ・ヨシコ自民党参議員などを招請しました。 後でロブト「自民党行事か」という誤解を受けることもありました。 大成功でした(笑い)。 日本で開かれた初めての大会に1000人以上が集まって大盛況を成し遂げました。

→集会で韓国、北朝鮮が同意を集めたか。

-日本が過去植民支配に対して謝罪しなけれ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主張しました。 平和・友好的な関係を作り韓国、北朝鮮女性の交流を拡大して、慰安婦問題も共に解決しようと同意を集めた。 政治の壁を壊すのはやはり民衆の力というものを感じた。

→同じ年11月にソウルで第2回大会が開かれた。

-韓国女性たちが真の大変だと思いました。 韓国に帰って統一院を動かしましたが、当時韓国ではこの集会に対する反発が強かった。 結局ヨ・ヨングがお父さんのヨ・ウニョンの墓地を参拝しましたが、約束した予定には無かったと政府で問題と見なして途中で北に帰りました。 途中でこわれたのは真に遺憾でしたが、集会当時あたかも南北が統一されたように興奮して感激した。 韓国と北朝鮮女性たちが抱いて泣いて笑う姿に感激しながらも、一方で分断の責任を感じました。

→今と比較すると当時南北交流がとても活発だったようだ。

-民衆らの交流、対話がなければ和解と統一に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 2000年6・15南北共同宣言を発表した時いよいよ明るい時代がくるんだなと考えました。 軍事的観点にだけ相手を見れば憎しみと怒りしかできない。 昨年に色々な軍事的な問題があったがどのようにすれば緊張をなくすことができるかを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

→南北統一が日本に脅威になると考えないか。

-そうではありません。 日本が(南北統一で)習うことができるのを学び、東北アジア支配の歴史だけでなく、前に東北アジア地域をどのようにするのか悩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お互いの文化を尊重しながら地域の新しい未来、新しい状況を作るという考えないとこのような時代は100年以上も続きます。 人間性を発揮できる国を作らなければ、民主的で平和的な国になりにくい。 それを成し遂げるのが私たちの世代の役割だと考えます。

→韓国など国際社会の北朝鮮に対する食糧支援に対してはどう思うか。

-食糧支援は人道主義レベルの問題です。 南北間の対立があっても支援の意志がなければ対話の道は開かれません。 人間は一度支援をした国は忘れません。 日本人は戦後米軍の乾パン・脱脂粉乳などを受けながら占領軍に対する敵対感がなくなった。 やはり食べ物ということは人間に日常生活でなければ最も苦しいことではないのか。 北朝鮮も色々な支援に対して韓国同胞に感謝の意を伝えるのがいい。

→南北が統一されるなら、どんな形態が最も良いだろうか。

-他の国が口を出す問題ではありませんが、最も良いのは他の国の干渉なしで同じ民族どうし自らするのが最も良いと考えます。 双方の良い点を取り、統一を他の国の干渉や軍事的対立だけで考えないならば必ず実現されることラで考えます。 朝鮮民族は長い歴史と文化を持っています。 私は抗日運動や民主化闘争で朝鮮の民族性に大変驚いた。 より建設的な方向で経済発展だけでなく東北アジアの発展のために知恵を助けたら良いでしょう。 権力者でなく、市民たちが額を突き合わせれば良い知恵が出てくると考えます。


[나와 통일] “한국은 北에 식량 지원하고 北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10) 시미즈 스미코 前 일본 사민당 의원

1991년 11월 25일. 남북의 여성이 분단 46년 만에 서울에서 얼굴을 맞댔다.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여성이 판문점을 넘어와 남북통일과 평화를 노래한 것. 이를 성사시킨 사람은 남한의 여성도 북한의 여성도 아니었다. 4년 넘게 남북한의 메신저 역할을 한 시미즈 스미코 전 일본 사민당 의원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남북 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주장하는 시미즈 의원으로부터 남북 여성 교류를 성사시키기까지의 뒷얘기와 현 남북관계에 대한 소회를 들어 봤다.

→4·15 김일성 생일을 맞아 북한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요즘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

-김일성 주석 탄생 100년(2012년)을 앞두고 축하 분위기였다. 작년에 북한에 갔을 때와 달리 주택이 잘 정비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살구꽃과 개나리꽃이 아주 예쁘게 폈고, 분위기가 휴일에 축제가 더해져 즐거워 보였다.

→외부에서는 북한이 매우 빈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내년에 강성대국을 앞두고 국민 경제 강화를 최우선하는 한편 굉장히 자신감에 차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늦었지만 그런 가운데서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몇 번째 방북인가.

-24번째다. 1972년에 간 게 처음이었다.

→어떤 계기로 북한 문제에 관여하게 됐나.

-1972년 북한의 초청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조선반도가 인식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북한에서 박물관, 역사전시관 등을 보고,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른바 여성운동, 평화운동을 하는 내가 일본의 이런 야만적인 행동을 모르고 있었다니 엄청 충격을 받았다.

→남북이 분단된 데에 일본의 책임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한반도가 짓밟힌 뒤, 해방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합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지 않았나.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한반도를 일본의 영토로 보고 희생자가 된 것이다. 식민지배가 원인이 돼 분단이라는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1년 남북한 여성 교류에 어떤 계기로 참가하게 됐나.

-1987년 8월 이우정 당시 여성단체연대 공동대표가 ‘원자폭단 금지 세계대회’ 참석차 일본에 왔다. 감시를 피해 밤에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가 한국의 민주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이 대표가 북한 동포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동족인데도 사십년 넘게 못 만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일본에서 북한 여성을 만날 수 없겠느냐.”면서 남북한 여성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일본이 북한과 국교가 맺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로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대표의 열정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무려’ 여연구 당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몽양 여운형의 딸)을 말하는 게 아닌가(웃음). 그 이후 4년간 인편을 통해 북한에 편지를 보낸 끝에 일본 대회 개최가 결정됐다. 아마도 김일성 주석에게 편지가 전달됐던 것 같다.

→굉장히 긴 노력 끝에 이뤄 낸 결실이었다.

-이 대표는 남북이 만난다고 하면 정부의 간섭을 받을 테니 ‘아시아 평화의 여성의 역할’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행사 준비도 문서로는 일절 남기지 않고, 구두로만 전달해 몰래 준비했다. 정체가 드러날까 봐 참가자도 모호하게 했다. 미키 무쓰코(고 미키 다케오 전 총리의 부인), 오타카 요시코 자민당 참의원 등을 초청했다. 나중에 정부으로부터 “자민당 행사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대성공이었다(웃음). 일본에서 열린 첫 대회에 1000명 이상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집회에서 남북한이 뜻을 모았나.

-일본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남북한 여성의 교류를 확대하고, 위안부 문제도 함께 해결하자고 뜻을 모았다. 정치의 벽을 부수는 것은 역시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같은 해 11월에 서울에서 제2차 대회가 열렸다.

-한국 여성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 통일원을 움직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이 집회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결국 여연구가 아버지 여운형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약속한 일정엔 없었던 일이라고 정부에서 문제를 삼아 도중에 북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깨진 건 참 유감이었지만, 집회 당시 마치 남북이 통일된 것처럼 흥분하고 감격했다. 남북한 여성들이 껴안고 울고 웃는 모습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로 분단의 책임을 느꼈다.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남북 교류가 굉장히 활발했던 것 같다.

-민중들의 교류, 대화가 없으면 화해와 통일로 갈 수 없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을 때 드디어 밝은 시대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군사적 관점으로만 상대를 보면 미움과 분노밖에 생기지 않는다. 작년에 여러 군사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긴장을 없앨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북통일이 일본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일본이 (남북통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동북 아시아 지배의 역사뿐 아니라 앞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상황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시대는 100년도 더 갈 것이다.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나라가 되기 어렵다. 그걸 이룩하는 게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등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다. 남북 간의 대립이 있더라도 지원 의지가 없으면 대화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인간은 한번 지원을 해 준 나라는 잊지 않는다. 일본인은 전쟁 후 미군의 건빵·탈지분유 등을 받으면서 점령군에 대한 적대감이 없어졌다. 역시 음식이라는 건 인간에게 일상생활에서 없으면 가장 괴로운 것 아니냐. 북한도 여러 지원에 대해 한국 동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좋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어떤 형태가 가장 좋을까.

-다른 나라가 말할 문제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건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같은 민족끼리 스스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양측의 좋은 점을 취하고 통일을 다른 나라의 간섭이나 군사적 대립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실현될 것라고 생각한다. 조선 민족은 긴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항일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에서 조선의 민족성에 크게 놀랐다.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경제 발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지혜를 살려 주었으면 좋겠다.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지혜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2011/05/13

年40万人が強姦されたコンゴ



戦争の手段としてのレイプが実行されているコンゴでは、2006年から2007年の一年間で40万人がレイプされたという報告がアメリカから出た。この数字は、これまでの国連の推計を上回る。

DR Congo: 48 rapes every hour, US study finds

The study, in the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found that 400,000 females aged 15-49 were raped over a 12-month period in 2006 and 2007.

That rate is significantly higher than the previous estimate of 16,000 rapes reported in one year by the UN.

The DRC says the figures reflect women being better able to report rape.

Sexual violence has long been a dominant feature of the continuing conflict in eastern DR Congo.

Amber Peterman, leading author of the study, said: "Our results confirm that previous estimates of rape and sexual violence are severe underestimates of the true prevalence of sexual violence occurring in the DRC.

"Even these new, much higher figures still represent a conservative estimate of the true prevalence of sexual violence because of chronic underreporting due to stigma, shame, perceived impunity, and exclusion of younger and older age groups as well as men," she added.
Worst affected area

The study, entitled Estimates and Determinants of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used data from a 2007 government health survey.

Previous estimates have been derived from police and health centre reports.

The highest numbers of rapes were found in war-ravaged North Kivu, where an average of 67 women out of 1,000 have been raped at least once.

However, the report said sexual violence was also widespread outside the conflict zones of eastern Congo.

The BBC's Thomas Hubert in Kinshasa says the study is in line with earlier reports that found sexual violence was spreading outside of war zones and into Congo's civilian society.

Government spokesman Lambert Mende told the BBC that recent increases in rape figures were a result of better reporting rather than rising violence.

"The report itself of these scientists is an evidence of the state becoming more and more efficient by dispatching judges, prosecutors, police all over the country," he said.

"It is that, that allows people now to complain and to feed such reports."

Commenting on the report, Michael VanRooyen, director of the Harvard Humanitarian Initiative, said that "rape in the DRC... has emerged as one of the great human crises of our time".

BBC 2011.5.11

2011/05/11

韓国の売春婦団体「売春防止法」撤廃を要求



ネットでは、「売春は韓国の国技」などと悪口を言う人もいるが、かつては日本も(少なくとも日本の一部の地域では)これで糊口を凌いでいたのである。いわゆる「からゆきさん」は貴重な外貨の稼ぎ手でもあった。

韓国の売春婦の全国組織のアンケートによると、防止法によっても性売買の市場の規模は変わっていないと感じている人が5割、46パーセントが防止法が売春婦が海外に出稼ぎに行く原因になっていると考えているらしい。

メンバーは、売春防止法の撤廃を要求しつつも、「この仕事に好きで就く女性はいない」と言っているという。

かつて慰安婦問題の第一人者と言われる学者は、好きで慰安婦に応募をする人がいる筈はないのだから、なんらかの「強制」が原因である(暗に「強制連行」だと仄めかしていたのだろう)と主張した。いかに浮世離れした理論を振り回していたか分かる。

この団体は売春防止法により生存権が脅かされていると主張している。もちろん、これらはあくまで売春婦側の言い分である。動物以下の扱いを受けているとも。


韓国の売春女性ら会見、性売買防止法の撤廃要求

全国の売春女性の集まり「ハント女性従事者連盟」の会員10人が11日にソウルで記者会見を開き、売春女性の人権を抑圧する「性売買防止特別法」の即時撤廃を求めた。

会場に姿を見せた20~30代の女性らは、帽子やサングラスで顔を隠している。ソウルの永登浦、弥阿里、京畿道の平沢、坡州などの売春街地区で働いているといい、人権保護のため画像処理と匿名を求めたうえで、会見に臨んだ。

女性らは、2004年9月に性売買防止特別法が施行されて以来、自分たちの生存権が脅かされていると訴える。全国30以上の売春街地区が同法により閉鎖されれば、水面下での性売買を望む男性がさらに増え、性暴力も増加すると主張した。

また、4月に現代リサーチ研究所に依頼し成人男女1000人を対象に実施したというアンケート調査の結果を紹介。「韓国社会の性暴力は法施行前より増えている」との回答が47.6%に及んだほか、性売買市場の増減を尋ねる質問への回答は、「増加した」が23.2%、「減少した」が19.8%、「変わらない」が49.9%で、法施行は事実上、無意味だと強調した。

また、「法を改正すべき」だとの回答も73.3%に達しているとし、法の迅速改正または廃止を求めた。このほか、「法施行後に海外で売春を行う女性が増えた」との回答は46.1%あり、これも法施行の弊害の一つだと指摘した。

連盟関係者は、女性部が売春女性の更生プログラムや補助金(40万ウォン、約3万円)などを提示しているが、現実的ではない政策だと指摘した。今後も無分別な取り締まりや、説得力のない閉鎖が行われれば、生存権のためにたたかうと話している。

また、「この仕事に好きで就く女性はいない。死ぬ覚悟でやると決めたが、動物以下の扱いを受けている。金銭を要求するのでもない」と述べ、法の改正または廃止を強く訴えた。



ソウルでは、先月の15日にも売春婦がデモを行い、一部が服を脱いでデパートに進入しようとして警察と衝突する騒ぎを起こしている。

ソウル、永登浦(ヨンドンポ)駅前売春業者事業主と女性など200人余りは15日午後永登浦タイムスクエア広場で二日目の集会を開いて「取り締まり反対」デモを行った。

デモ隊は集会に続きタイムスクエア一帯で行進を行い、一部の参加者は上着を脱いでデパートに進入しようとして警察と衝突を起こしたと伝えられた。

永登浦警察署は先月事業主らに取り締まり方針を通知した後、今月1日から売春を集中取り締まっている。

NAVER 2011.4.15

영등포 성매매여성 '단속반대' 시위

서울 영등포역전 성매매 업소 업주와 여성 등 200여명은 15일 오후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이틀째 집회를 열고 '단속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집회에 이어 타임스퀘어 광장 일대에서 행진을 벌였으며 일부 참가자들은 상의를 벗고 백화점으로 진입하려다 경찰과 충돌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업주들에게 단속 방침을 통보한 뒤 이달 1일부터 성매매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


2011/05/09

現代の強制性【東日本大震災 4】騙される労働者



共同通信が、大阪から騙されて連れて来られた労働者が福島原発で瓦礫の片付けをさせられていると報じている

日本の一部の学者たちが「強制連行」の実例だと宣伝し、韓国の運動家たちが、募集したのが民間の業者であることを伏せ、あるいはあたかも日本政府(軍)の指示で業者が騙していたかのように話をすり替えてきた「甘言による募集」の現代版である。

言うまでもなく、福島原発での作業は国が主導して行わせている。国の「関与」の有無など論じるまでもない。

5年前には、イラクの米軍施設の建設に騙されてアジアから連れて来られた労働者が働かされていたというニュースもあったが、「慰安婦問題の専門家」が用いる超理論は、彼らの間でしか通用していないのである。


求人と違い「福島原発で作業」 大阪・西成の労働者

日雇い労働者が多く集まる大阪市西成区のあいりん地区で、東日本大震災後、宮城県で運転手として働く条件の求人に応募した男性労働者から「福島第1原発で働かされた。話が違う」と財団法人「西成労働福祉センター」に相談が寄せられていたことが8日、関係者への取材で分かった。

センターは求人を出した業者側の調査に乗り出し、大阪労働局も事実関係の確認を始めた。支援団体は「立場の弱い日雇い労働者をだまして危険な場所に送り込む行為で、許されない」と反発している。

関係者によると、センターが3月17日ごろ、業者からの依頼をもとに「宮城県女川町、10トンダンプ運転手、日当1万2千円、30日間」との求人情報を掲示。応募して採用された男性は東北に向かった。

ところが雇用期間中の3月25日ごろ、男性からセンターに「福島第1原発付近で、防護服を身に着けがれきの撤去作業をしている。求人は宮城だったのにどうなっているんだ」と電話があった。

これを受け、センターが雇用終了後に男性や業者側に聞き取りをしたところ、男性が一定期間、防護服を着て同原発の敷地内での作業に従事していたことが判明した。

東京電力によると、原発敷地内では同社の社員以外に協力会社の労働者ががれき撤去や電線敷設などの作業をするケースがあるというが、センターは「男性の詳細な作業内容はつかめておらず、さらに聞き取りを進める」としている。

労働者らを支援するNPO法人釜ケ崎支援機構は「初めから原発と言ったら来ないので、うそをついて連れて行ったともとられかねない。満足な保障もない労働者を使い捨てるようなまねはしないでほしい」と話した。

あいりん地区は日雇い労働者が仕事を求めて集まる「寄せ場」としては国内最大とされる。同センターは大阪府が官民一体で労働者の職業の確保などを行う団体。
(共同)

東京新聞 2011.5.8 



追記:

だまして原発で働かせないよう…東電などに要請

大阪市西成区・あいりん地区の60歳代の労働者2人が「宮城県内での勤務」との求人に応募したのに実際には東京電力福島第一原子力発電所敷地内などで働かされた問題を受け、厚生労働省は13日、東電や人材ビジネスの事業者団体などに対し、求人を出す際は労働条件を適切に明示するよう文書で要請した。


厚労省によると、2人は3月、岐阜県大垣市の建設業者が出した求人に応募。求人は「宮城県女川町でダンプカー運転手として働く」との内容だったが、実際は同原発周辺で防護服を着てタンクから水を運ぶ仕事などに従事させられたとして、大阪労働局が職業安定法違反の疑いで調査している。

細川厚労相は13日の閣議後の記者会見で、「決してだましたような形で労働者を原発の作業で働かせるということがないよう措置を取った」と話した。

読売新聞 2011.5.13
http://www.yomiuri.co.jp/national/news/20110513-OYT1T00680.htm

障害者の性



こういった話も、「戦場の性」の問題を考える参考になるだろう。

重度障害の男性手助け

重度の男性身体障害者の射精を介助するサービスが、全国に広がっている。県内でも、新潟市に本部を置く「NPOホワイトハンズ」が3年前から介助を始めた。利用者からは歓迎の声も上がるが、障害者の性に対する社会の理解は低く、専門家は支援の充実の必要性を指摘している。

ホワイトハンズは、2008年4月1日に新潟市で設立された。脳性まひや筋疾患などのため、自力で射精できない障害者が介助の対象。北海道や東京都、大阪府、福岡県など18都道府県でサービスを実施している。県内では現在、5人の利用者がいるという。

佐賀市内で一人暮らしの40代男性は3年前から介助サービスを利用している。脳性まひで生まれつき両手が不自由。サービスを利用する前は満足に射精行為ができず、気分がイライラすることが多かった。
男性は「障害者も普通の男と同じで性欲はある。男を磨いて彼女をつくる努力をすべきだとは思うが、難しい場合には介助サービスが必要だと思う」と語り、「社会はもう少し障害者の性について考えてもらいたい」と訴える。

鳥栖市内の女性(27)は、週刊誌の記事を見てホワイトハンズの活動を知り、スタッフになった。介護の仕事を続けながら、介助サービスを行っている。

女性によると、介助サービスはゴム手袋をはめる。コンドームを着用してもらい、射精を促す。射精後はタオルで利用者を拭き、サービスは終了となる。

介助中に利用者がスタッフの体に接触することは禁止で、性的な会話もしない決まりだ。「日常会話で雰囲気を和ませてから介助する。終了後に利用者のうれしそうな顔を見ると、必要なサービスと感じる」

「息子は夢精しているが、親としては風俗店に連れて行きにくい。何か手伝えないかと悩んでいる」
24日に福岡市の県NPO・ボランティアセンターで開かれたホワイトハンズの勉強会。全国から障害者の親らが参加し、訪問介護の女性が、性欲をため込む障害者の現状を訴えるなど、お互いの悩みを話し合った。

ホワイトハンズの利用料金は15分3500円、30分5500円で、1時間を超えると1万円以上かかる。オランダでは、介助サービス料金を全額負担する自治体もあるが、日本ではまだ支援が広がっていない。

大学でジェンダー(社会的・文化的性差)や性について学び、介護職の経験もあるホワイトハンズ代表の坂爪真吾さん(29)は、介助サービスを始めた経緯を「障害者の性の問題が置き去りにされている現状を何とかしたかった」と話す。

だが、介助サービスに抵抗感をあらわにする障害者の家族や入居施設は多い。

県西部にある重度障害者の入居施設の責任者は「排泄(はいせつ)の世話で手いっぱいで、性の問題まで手が回らない。施設としては性の介助を受け入れることは考えていない」と否定的だ。

県障害福祉課によると、県内で両手が不自由な18歳以上の障害者は約2千人いる。同課の担当者は「特に相談は寄せられていないが、要望があれば(県として)考えていく必要がある」と話している。

●性の問題 社会も支援

西九州大の滝口真教授(障害者福祉学)の話 食事や睡眠、排泄(はい・せつ)という人間の基本的な欲求のなかには、性欲も含まれる。障害者が性に関心を持たないと考えるのは短絡的で、射精出来ずに体の不調を訴える障害者の声もある。障害者の性の問題も社会は避けることなく、トータルヒューマンケアサービスの一環としての支援が必要ではないか。

朝日新聞 2011.5.2

自衛隊員のPTSD【東日本大震災】



参考資料として。わいせつ自衛官の話は、言い訳のように聞こえなくもないが。


「もう限界。家に帰して…」捜索現場襲う惨事ストレス

東日本大震災で被災地に派遣され、遺体の捜索・収容作業に当たっている自衛隊員や海上保安官、警察官の「心のケア」が課題となり始めている。これまでに1万人近い遺体を収容するなど奮闘してきたが、一方で凄惨(せいさん)な現場で受けた精神的ショック(惨事ストレス)から心的外傷後ストレス障害(PTSD)のような症状を訴えたり、奇行に走るケースも出ており、各省庁では惨事ストレス・ケアに乗り出した。(SANKEI EXPRESS)

「もう限界です。家に帰していただけませんか」

西日本の部隊に所属する陸上自衛隊の30代の男性自衛官は、部下の切実な訴えに接するたび、心に重圧がのしかかる。

震災直後に被災地入りし、数十人の部下と続けたテント暮らしはまもなく2カ月を迎える。主な任務は沿岸部での遺体の捜索活動。これまでに数十人の遺体を収容、自治体などに引き渡した。

住宅のがれきの下では、全身に傷を負った親子とみられる若い女性と5~6歳ぐらいの女の子の遺体を発見した。「もしこれが自分の妻と子供だったら…」。思わずつぶやいた同僚は、夜になるとテントの中でうなされていた。

春を迎えて日中の気温が上昇し、日を追うごとに発見される遺体の損傷は進んでいる。交代もままならず、「精神的にまいってしまい、前線を離れる隊員が多くなった」。

防衛省によると、過去最大となる約10万人の自衛隊員を投入した今回の震災では、警察、消防、米軍などと合同で行った分も含めてこれまでに計約9200人の遺体を収容。今も被災地では、1日数人単位で遺体が発見され続けている。

肉体的な疲労に加えて、損傷がひどい遺体を扱う惨事ストレスは日に日に増している。一部には奇行に及ぶ者も出ている。

海上自衛隊横須賀基地所属の3等海曹(31)は、宮城県沖で遺体収容作業を終えて通常業務に戻った3月下旬、レンタルビデオ店で下半身を露出し公然わいせつ容疑で現行犯逮捕された。再び被災地での活動が決まっていたことから、「また行くのが嫌だった。捕まれば行かなくてすむと思った」のが犯行理由だった。

防衛省は、被災地での活動終了後に隊員が精神的負担からPTSDを発症する可能性があると判断。活動を終えて1カ月後、半年後、1年後をめどに、質問項目に記入する形式で心理状態を調査する方針だ。

警察庁も対策に乗り出した。ケアの対象は岩手、宮城、福島の3県警の全警察官・警察職員の計約1万500人で、問診票を配り震災対応後の心身の状態について調査。惨事ストレスが強いとみられる職員には、委託先の民間機関から臨床心理士らのチームを派遣し、面談を行う。

一方、がれきが漂う海中で捜索や遺体収容に当たっている海上保安官らも、相当な惨事ストレスを受けているとみられる。

海上保安庁は、震災発生から1週間後に被災地で業務に従事する潜水士や巡視船艇の職員ら約1600人を対象にアンケートを実施。うち約1割の職員について、心のケアなど「経過観察が必要」とする結果が出た。

こうした職員らと面談した海保の惨事ストレス対策アドバイザーを務める広川進・大正大准教授(臨床心理学)によると、「涙が止まらない」「現場の光景がフラッシュバックする」といったPTSDに似た症状を訴える声もあがったという。

広川准教授は「過酷な作業の長期化が予測されるこれからが一番危険。まとまった休息をとって頭のスイッチを強制的にオフにするなど、十分なケアが必要」と指摘する。

産経新聞 20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