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3

大邱市慰安婦歴史館、今年中のオープン目指す


テグ市にオープン予定に新しい慰安婦博物館については、何度かお伝えしている。その続報。

5000万ウォンとすると、現在のレートで470万円超。以前のニュースにもちょっと出たが、キム・スンアク・ハルモニは、この二倍のお金を残して亡くなっている。昨年の12月になって、女性家族部が2億ウォン(約2千万円)を支援することになったのは、慰安婦問題の国際的キャンペーンを繰り広げるチョ・ユンソン女性家族部長官の方針だろう。小松電気産業の小松昭夫が支援を申し出た件については、触れられていない。

大邱に慰安婦歴史館建てる

市民会、2012年から4億5千万ウォン余り募金、女性家族部2億支援約束…年内開館予定

「貴方たちは私死ねば忘れるんだろう?」

去る2010年の1月に持病で入院、治療を受けたキム・スンアク(84)ハルモニが話した。 「違います」そばを守ったイ・インスン「挺身隊ハルモニと共にする市民の会(以下市民会)」事務局長が頭を垂れて低い声で答えた。

ハルモニはまもなく恨み多い生涯を終えた。 十六才で満州に連行され、日本軍慰安婦になったハルモニだ。 ハルモニは慰安婦歴史館をたててほしいという遺言と共に5千万ウォンを残した。

「慰安婦ハルモニを記憶されるんですか。 大邱に慰安婦歴史観を作るのに助けてください」2年が過ぎた昨年の3月8日、市民会活動家が通りに出た。

彼らは大邱広域市中区東城路で日本軍慰安婦被害ハルモニの顔が描かれたパンフレットを人々の手に握られた。

小さなブースの中では「ヒウム(希望を集めて花を咲かせる)」ブレスレットを販売した。 大邱に慰安婦歴史館を作るために民間で市民募金運動が始まった日だった。

大邱に慰安婦歴史観を作ろうという声は2009年12月から出て始めた。 だが、当初は女性家族部と大邱市がこれを冷遇し困難を経験した。

市民会はこれ以上慰安婦歴史観建設を遅らせられないと判断し、昨年3月本格的に市民募金に出た。 昨年10月までヒウム腕輪を売り、4億5千万ウォン余りの収益金を集めた。

また、人々が少しずつ募金に参加して1千6千万ウォンが集まった。

市民団体は集まったお金で中区西門路1街に2階建の建物(105.7㎡)を2億3千万ウォンに購入した。 だが、建物が狭く展示空間が充分でないと1月そばの建物(129.0㎡)まで買い入れることに決めた。

建物の購入と改装費、展示費など必要な費用も5億ウォンから12億5千万ウォンに増えた。

だが、その間慰安婦歴史観建設に力を加えてほしいという粘り強い要請にも特別な反応がなかった女性家族部から昨年12月うれしい便りが伝えられた。 慰安婦歴史観をたてるのに2億ウォンを支援するという話であった。 もう3億ウォンだけ募金すれば慰安婦歴史観を開館できることになる。 今年中に開館する計画を立てている慰安婦歴史館にはハルモニが使った服とメガネ、時計など遺品と物品200点余りを展示する計画だ。

慰安婦被害者であるイ・ヨンス(86・大邱達西区)ハルモニは「大邱に慰安婦歴史館ができるのは私が生涯望んだ願い」と言い「皆さんが私たちに関心を見せ、力を貸してくれ本当にありがとう。 今年中に慰安婦歴史館が開館するのを必ず見ることができたら良いだろう」と話した。

市民会イ・インスン事務局長は「今月から歴史・建築・女性など専門家10人で歴史観実行委員会が構成された。 今年は必ず開館出来るように努力する」と話した。

女性家族部には237人の慰安婦被害ハルモニが登録されていたが、今は55人(23%)だけが生存している。 大部分が八十歳を遥かに越えた나であり(?)、98歳の被害ハルモニもいる。 大邱と慶北には現在のそれぞれ5人と2人のハルモニが生存している。

大邱新聞 2014.3.20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 세운다

시민모임, 2012년부터 4억5천여만원 모금
여성가족부 2억 지원 약속…연내 개관 예정

“너희들은 나 죽으면 잊을 거지?”

지난 2010년 1월 지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김순악(84) 할머니가 말했다. “아니에요” 곁을 지키던 이인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사무국장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머니는 곧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열여섯 살에 만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던 할머니다. 할머니는 위안부 역사관을 세워달라는 유언과 함께 5천만원을 남겼다.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시나요.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을 짓는데 도와주세요” 그후 2년이 흐른 지난해 3월 8일 시민모임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얼굴이 그려진 팸플릿을 사람들의 손에 쥐어줬다.

조그맣게 차려진 부스 안에서는 ‘희움’(희망을 모아 꽃피움) 팔찌를 판매했다.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을 짓기 위해 민간에서 시민 모금 운동에 들어간 첫 날이었다.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을 짓자는 목소리는 지난 2009년 12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여성가족부와 대구시가 이를 외면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모임은 더 이상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지난해 3월 본격적으로 시민 모금에 나섰다. 지난해 10월까지 희움 팔찌를 팔아 4억5천여만원의 수익금을 모았다.

또 사람들이 조금씩 모금에 참여해 1천6천만원이 모였다.

시민단체는 모인 돈으로 중구 서문로 1가에 2층 건물(105.7㎡)을 2억3천만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건물이 좁아 전시 공간이 충분치 않자 지난 1월 옆 건물(129.0㎡)까지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건물 매입과 리모델링비, 전시비 등 필요한 돈도 5억원에서 12억5천만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동안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힘을 보태달라는 꾸준한 요청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던 여성가족부에서 지난해 12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위안부 역사관을 세우는데 2억원을 지원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3억원만 모금하면 위안부 역사관을 개관할 수 있게 된다. 올해 안에 문을 열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위안부 역사관에는 할머니들이 사용하던 옷과 안경, 시계 등 유품과 물품 200여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6·대구 달서구) 할머니는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이 생기는 것은 내가 평생 동안 바랐던 소원”이라며 “모두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힘을 보태줘서 너무 고맙다. 올해 안에 위안부 역사관이 문을 여는 것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모임 이인순 사무국장은 “이달부터 역사·건축·여성 등 전문가 10명으로 역사관 실행위원회가 구성됐다. 올해는 꼭 개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는 237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등록돼 있었지만, 지금은 55명(23%)만 살아있다. 대부분이 여든살을 훌쩍 넘긴 나이며, 98세인 피해 할머니도 있다. 대구와 경북에는 현재 각각 5명과 2명의 할머니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