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一で渡米したキム
協力する大人も少なくないらしい(YTN 2016.6.23)
高校生活を(事実上の)反日キャンペーンに捧げた少女。ニュートンサウス高校はかなりレベルの高い高校らしい。そこで慰安婦問題を生徒や父兄、教師たちに知らせる活動を始めたキムは、聯合ニュースの取材に日本人学生によるハルモニに対する無礼を語る。記者には、日本人学生とも仲良くやってくれ、君たちが諍う必要はないのだと忠告する気もないだろう。大人達は反日の為に若者を利用し、彼らをその気にさせた。
ところで、YTNのニュースに写っていた男性(右から二人目)。見覚えがあると思ったら、例の慰安婦セールスマンではないか。ニュージャージー州に日本軍慰安婦歴史学校オープンしたりしていたが、今も子供たちの洗脳を続けているらしい。ここでも映画『鬼郷』が一役買ったらしい。学校でこんなプロパガンダ映画を上映する。まるで戦時である。
<人々>アメリカで軍慰安婦知らせる韓国人高校生キム・イエナヤン
ニュートンサウス高校<ナビ(蝶々)クラブ>会長「日本学生たち反発、何でもない」
「学校の日本人学生たちの卑劣な言葉が度を越し反発も激しいが、日本軍慰安婦ハルモニが体験した侮辱に比べれば何でもありません。 多くのアメリカ人に慰安婦問題を正しく知らせます」
アメリカのボストンにあるニュートンサウス高校で日本軍慰安婦を知らせる<蝶々(Nabi)クラブ>を結成したキム・イエナ会長(12年生)の強い(?)覚悟だ。 「蝶」は日本軍に犠牲になった慰安婦を象徴する生き物で、ハルモニが苦痛と暴力から抜け出し、自由に羽ばたけるようになることを念願する意味がある。
中学1年の時両親についてアメリカに移民した韓国系1.5世である彼女は、高校1年の時、志を同じくする韓国人とアメリカ人の学生たちを糾合して<ナビ・クラブ>を結成した。現在の会員は13人。指導教師はキムさんの英語教師であるアメリカ人マリ・ケイト・キャスパーさん。学生たちの情熱に感動して自ら志望(?)したという。
このクラブは先月27日校内の講堂で日本軍慰安婦をテーマにした映画『鬼郷』の上映会を開いた。 学生や父兄、教師たちは映画の鑑賞後、慰安婦問題が人権に関する人類普遍の問題だという共感を形成した。
キムさんは21日聯合ニュースとのEメールでのインタビューで「映画の上映を広報する時、私たちのメンバーの1人がある日本人学生から抗議のメッセージを受けた」とし、「その学生はハルモニを慰安婦おばあさんを「Old Ladies」と呼び、『왜 그 사람들은 닥치지 않느냐(なぜあの人達は黙らないのか・・・というような意味?)』という卑劣な事を言った」と伝えてきた。
「そんな目に遭い、歴史教育の重要性を一層痛感しました。まともに教育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に起きる現実に残念に思う心まで聞いた」として「これから日本軍慰安婦をもっと世の中に知らせなければと誓った」と打ち明けた。
高校1年生の時に校内のスピーチ大会に参加したことが、キムさんがナビ・クラブを結成したキッカケになった。当時彼女は「日本軍慰安婦」をテーマにスピーチをして1等を取り、それからこの問題に一層関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
「アメリカの学校に通う生徒や父兄、教師たちが慰安婦問題をよく知らないという事実を知りました。 一度も聞いたことがなかったり、聞いても正確に理解していない学生たちが多かったんです。 大会が終わって客席にいた友達が私に『初めて聞いた。びっくりした』といった話をすることに衝撃を受けてクラブを作りました」。
彼女は活動を始めると慰安婦ハルモニの話を入れた「イラストブック・プロジェクト」を実行した。 ハーバード大やニューベリー・ストリートなど人が集まる場所でイラストブックを販売し収益金をハルモニの憩い場であるナヌムの家に送る計画だ。
ツイッターとネイバーブログなどにプロジェクトについての説明と共に才能ボランティア(寄付)してくれるイラストレーターを募集した。その時200人を越えるイラストレーターが支援し、その中から20人の韓国作家と作業を進めた。
イラストブック出版のために教会を通い募金活動もやった。カップケーキ・ブラウニー・ドーナツ・ピザなどを売って資金を集める「ペイク・セール」も学校で4回開いた。 フェイスブックやSNSで募金キャンペーンを行い寄付を受けるかと思えば、昨年の光復節にはソウル市の駅三洞のCOEX(注:コンベンションセンター)で基金調達の為の「バスキング演奏」もやった。
慰安婦について知らせるレクチャー「私が証拠」を学校で着々と開催している。最初の頃は講師を招へいするのにいろいろ困難があったが、色々な機関と篤志家、才能ボランティアの助けを得て特講も盛況裡に行われた。
レクチャーの後イラストブックを購入した受講生に日本軍慰安婦口述集'Can You Hear Us?'をはじめ、手作りの蝶の形をしたピンバッジ(?)などを配った。イラストブックの出版費や映画上映会に入る予算が足りなくなると自分の小遣でカバーした。
高校生活中ずっと日本軍慰安婦知らせたキムさんは、大学進学を前にしても変らず強い意欲を見せる。 一月に一度は母校を訪ね、サークルの後輩たちと活動計画を立て、イラストブックの販売も続けて行くつもりだ。
大学で国際関係学を専攻する予定の彼女は「一日も早く日本政府が公式謝罪とともに補償をすることを願う」と語った。
聯合ニュース 2016.6.21
<사람들> 미국서 軍위안부 알리는 한인 고교생 김예나 양
뉴턴사우스고교 '나비클럽' 회장 "일본 학생들 반발, 아무 것도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교내 일본 학생들의 막말이 도를 넘고 반발도 거세지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수모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많은 미국인에게 위안부 문제를 정확하게 알릴 것입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뉴턴사우스고교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알리는 '나비(Nabi) 클럽'을 결성한 김예나(12학년) 회장의 야무진 각오다. '나비'는 일본군에 희생된 위안부들의 상징 생물로, 할머니들이 고통과 폭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날갯짓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는 의미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한 한인 1.5세인 그는 고교 1학년 때 뜻을 같이하는 한인과 미국인 학생들을 규합해 '나비클럽'을 결성했다. 현재 회원은 모두 13명에 지도교사는 김 양의 영어 교사인 미국인 마리케이트 캐스퍼 씨로, 학생들의 열정에 감동해 자청했다고 한다.
이 클럽은 지난달 27일 교내 강당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다룬 영화 '귀향' 상영회를 열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은 영화 관람 후 위안부 문제가 인권에 관한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 양은 21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영화 상영을 홍보할 때 우리 멤버 중 1명이 한 일본 학생에게서 항의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그 학생은 할머니들을 위안부 할머니들을 '올드 레이디스'(Old Ladies)라 부르며, '왜 그 사람들은 닥치지 않느냐'는 막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일을 당하면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더 뼈저리게 느꼈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일어나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며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더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김 양이 나비클럽을 결성한 계기는 고교 1학년 때 교내 스피치대회에 참가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스피치를 해 1등을 차지했고, 이후 이 문제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두게 됐다.
"미국 학교에 다니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거나 들어봤더라도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죠. 대회가 끝나고 객석에 있었던 친구가 저에게 '처음 들었고, 놀랍다'는 말을 하는 것에 충격을 받아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활동 시작과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러스트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버드대, 뉴베리스트릿 등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일러스트북을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 보낸다는 계획이다.
트위터와 네이버 블로그 등에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재능기부에 참여할 일러스트 작가를 모집했다. 그때 200명이 넘는 일러스트 작가가 지원했고, 그 가운데 20명의 한국 작가와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일러스트북 출간을 위해 교회를 다니며 모금활동을 펼쳤고, 컵케익·브라우니·도넛·피자 등을 팔아 자금을 모으는 '베이크 세일'도 학교에서 4차례 열었다. 페이스북이나 SNS에 모금 캠페인을 펼쳐 기부를 받는가 하면 지난해 광복절에는 서울 역삼동 코엑스에서 기금 마련 '버스킹 연주'도 개최했다.
위안부를 알리는 강의 '내가 그 증거입니다'를 학교에서 꾸준히 열고 있다. 초반에는 강사를 초빙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기관과 독지가, 재능기부자들의 도움으로 특강도 성황리에 진행됐다.
강의 후 일러스트북을 구매한 수강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구술집('Can You Hear Us?')을 비롯해 직접 만든 나비 모양 핀 등을 나눠줬다. 일러스트북 출간비나 영화 상영회에 들어가는 예산이 부족하면 자신의 용돈을 털어 충당하기도 했다.
고교생활 내내 일본군 위안부 알리기에 나섰던 김 양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도 여전히 강한 의욕을 보인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모교에 찾아가 동아리 후배들과 활동 계획을 세우고, 일러스트북 판매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할 예정인 그는 "하루빨리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와 함께 보상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