ハルモニをお見舞いに行く度に日本政府が謝ったかどうか聞かれる、それが辛い。これは二年前の記事だが、村山一兵は今でもこの話を繰り返している。しかしそれならなぜ、「日本政府は謝った」と本当の事を教えてやらないのだろうか?
ネットに上がっている訪問記などを読むと分かるが、実はナヌムの家のハルモニと日本人はとても良い関係にある。しかしながら、大勢の日本人ボランティアがいても一向に誤解は解けない。それは、日本人が本当のことを伝えないからなのだろう。
ムン・ピルギ・ハルモニの告別式…ボランティアの日本人留学生「私たち申し訳なくて」
日本軍慰安婦被害者ムン・ピルギ(82)ハルモニの告別式が7日京畿(キョンギ)広州市(クァンジュシ)、光州(クァンジュ)葬儀場で開かれた。
1943年慰安婦で強制動員されたムン・ハルモニは2003年10月からナムヌの家に暮らし5日亡くなった。
ムン・ハルモニは結婚ぜず血縁は妹一人だけだ。 だが、告別式場は遺族の代わりに弔問客をむかえる若者たちで混みあった。
日本人留学生と市民運動家など30人余りが眼に入った。 語学研修や留学のため韓国に来て帰ってナムヌの家と縁を結んだ人々だ。
彼らは普段からナムヌの家を定期的に探してハルモニたちを慰めた。 また、韓国と日本を行き来して証言集会を開くなど慰安婦問題を知らせる活動をしてきた。
彼らはムン・ハルモニの死亡の報を聞き三日間交代で葬儀室を守った。 告別式場では弔問客を案内して他の慰安婦ハルモニの挙動を助けた。
日本人代表で追悼の辞を読んだ村山一兵氏は「ハルモニが病院に入院中に訪ねて行くと、いつも「日本は謝罪したか?」と気にしなかったことがなく胸が痛い。 いつも孫のようによく接して下さる感謝しまう」と最後の挨拶をした。
一兵氏は2003年延世大に留学に来てナムヌの家を訪問した後、日本に帰らず慰安婦歴史館研究員として働いている(注: 村山は一度帰国して大学を卒業している。機械翻訳が正確でないのかもしれない)。
彼はムン・ハルモニの葬式の後、当日の午後慰安婦証言集会のために北海道に発った。
また他の日本人留学生は「日本の若者たちが訪ねてくる度に、ハルモニたちは顔を一度もしかめなかった」「手を握ってくれ、君たちだけ信じると歓迎したハルモニたちにとても申し訳ない」と目がしらを赤くした。
ナムヌの家アン・シングォン(46)事務局長は「ムン・ハルモニは性格が明るく、情が深く日本学生たちがたくさん従った」として「最後行くところが孤独でなかっただろう」と話した。
ムン・ハルモニの死亡でナムヌの家にはキム・クンジャ(82)ハルモニら7人が残った。
東亜日報 2008.3.8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3080156
恨 못풀고 간 위안부 할머니 마지막 길 지킨 일본 청년들
문필기 할머니 영결식… 자원봉사 日 유학생 “저희가 죄송스러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필기(82) 할머니의 영결식이 7일 경기 광주시 광주장례식장에서 열렸다.
1943년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문 할머니는 2003년 10월부터 나눔의 집에서 살다가 5일 세상을 떠났다.
문 할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아 혈육이라곤 여동생 1명뿐이다. 하지만 영결식장은 유족 대신 조문객을 맞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일본인 유학생과 시민운동가 등 30여 명도 눈에 띄었다. 어학연수나 유학차 한국에 왔다가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나눔의 집을 정기적으로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증언 집회를 여는 등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해 왔다.
이들은 문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사흘간 교대로 빈소를 지켰다. 영결식장에서는 조문객을 안내하고 다른 위안부 할머니의 거동을 도왔다.
일본인 대표로 추도사를 한 무라야마 잇페이(村山一兵) 씨는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 중일 때 찾아가면 항상 ‘일본이 사죄했느냐’며 관심을 놓은 적이 없었는데 가슴이 아프다. 항상 손자처럼 잘 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잇페이 씨는 2003년 연세대에 유학 왔다가 나눔의 집을 방문한 뒤 일본에 돌아가지 않고 위안부역사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문 할머니의 장례식 뒤 이날 오후 위안부 증언 집회를 위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떠났다.
또 다른 일본인 유학생은 “일본 젊은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할머니들이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며 “손을 잡아주며 너희들만 믿는다고 반겨준 할머니들께 너무 죄송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눔의 집 안신권(46) 사무국장은 “문 할머니가 성격이 밝고 정이 많아 일본 학생들이 많이 따랐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할머니의 별세로 나눔의 집에는 김군자(82) 할머니 등 7명이 남았다.
donga.com 2008-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