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7

ハルモニの絵をバッグにした大学生



以前のエントリーの続き。バッグには「このバッグを手にとって、彼女(ハルモニ)たちの涙を手にとって」と書かれている。

運動の前面には正義感あふれる若者が立ち、慰安婦のイメージはより洗練されていく。こういったキャンペーンに「慰安婦はたんなる売春婦」「粉砕」デモでは対抗できようはずはないわけで、日本の愛国者たちもその事を学んで欲しいと思う。しかし20年以上に渡る反日キャンペーンに対する恨みは深い。

 

16才の時の1937年、「工場で仕事をする女工を募集する」という話にだまされて日本軍慰安婦になった。 71才になった1992年、日本軍慰安婦被害者憩い場の「ナムヌの家」に入所して水曜集会に参加して慰安婦問題を全世界に告発した。 そして絵を描いた。 傷を描くことで解きほぐすように「モッタ咲いた花」、「引きずられて行く日」等の絵も残した。 キム・スンドク・ハルモニは「日本の謝罪を受ける」という最後夢をかなえることができず2004年脳出血で死亡した。

しかしハルモニが描いた絵「モッタ咲いた花」中花をまねて作ったエコバックで慰安婦おばあさんらの夢を叶えるのだとして大学生たちが出た。・・・



16살 때인 1937년, “공장에서 일할 여공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 71살이 된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에 입소하고 수요집회에 참가하며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에 고발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상처를 그림으로 풀어내듯 ‘못다 핀 꽃’, ‘끌려가는 날’ 등의 그림도 남겼다. 김순덕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를 받겠다”던 마지막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04년 뇌출혈로 별세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그린 그림 ‘못다 핀 꽃’ 속 꽃을 본떠 만든 에코백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꿈을 이루겠다며 대학생들이 나섰다.
고려대 경영대 동아리인 사이프(SIFE) 디자인팀(위 사진)은 지난 12월부터 나눔의 집을 돕기 위해 ‘블루밍 백’(Blooming Bag·아래)이라는 에코백을 만들어 고려대 백주년 기념관 북카페와 홀리스 커피 코트라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에코백의 판매 비용 중 가방 제작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나눔의 집에 기부되고, 나눔의 집은 이 돈을 ‘국제평화인권센터’ 건립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들의 ‘착한 컨설팅’은 운영 비용의 대다수를 후원에 의존하는 나눔의 집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독립된 수익 구조가 필요하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이 고민을 바탕으로 2009년 9월 출범 뒤 이들은 나눔의 집에 와서 수제비누를 만들어 하나는 가져가고, 하나는 판매용으로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외부 홍보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더 널리 알리고자 에코백을 선택한 것이다. 배경진(22·심리학 4)씨는 “보통 윤리적 소비는 공정무역 등 외국 상황에 관심이 많은데, 이 에코백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동도 계속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6명이서 밑천 없이 에코백을 만들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제작비는 고려대 CCP(Creative Challenger Program) 지원을 통해 300만원을 마련했고, 디자인은 디자이너 김성윤씨의 재능 기부를 통해 해결했다. 지난 12월부터 판매를 시작했지만, 아직 대량생산에는 어려움이 있어 500개밖에 만들지 못했다. 배씨는 “더 많은 후원과 도움을 받아 이 일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소년소녀가장, 미혼모 등 ‘못다 핀 꽃’들이 꽃을 피우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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