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9

日韓市民団体協議会がスタート(挺対協なども参加)




挺対協東北アジア歴史財団など、お馴染みの団体もいる。韓国が北のシンパを国内に抱えて苦労しているように、日本と韓国の関係がこじれる原因の一つになっているのが、韓国側と呼応する日本の「進歩派グループ」の存在だろう。

東北アジア歴史財団は、日中の「歴史歪曲」に対抗すべくノ・ムヒョン韓国大統領の支持を得て設立されたが、4年前に中国担当の研究員の半数をリストラしている。けっきょくロシアや中国に無理無体は通用しないので、運動も自然に下火になる。

しかし、協力者に事欠かない日本相手ではそういう事はないようだ。



韓日過去の歴史市民団体協議会スタート

民族問題研究所、民主社会のための弁護士会過去の歴史清算委員会、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アジア平和と歴史教育連帯など13の市民団体が参加する常設協議体「韓日市民宣言実践協議会」が22日スタートした。

参加団体は日帝強制動員被害者、日本軍慰安婦問題、靖国問題、独島(竹島)問題、日本教科書わい曲、親日派問題、在日同胞やサハリン同胞問題など韓日間の過去の歴史清算運動を繰り広げたところだ。

協議会はこの日午後西大門区、東北アジア歴史財団で旗揚げ式を行い「昨年庚戌国辱100年をむかえて韓国と日本の130ヶ余り市民団体が'植民主義清算と平和実現のための韓日市民宣言'を発表したがその延長線上で協議会をスタートさせた」と説明した。

引き続き「宣言文の原則と実践課題を持続的に展開し、団体間に過去の歴史懸案情報を交流する一方主要懸案に対して外国の韓日過去の歴史関連団体らと連帯活動をするだろう」と付け加えた。

先立って協議会は先月日本大地震と原子力発電所事故がおきるとすぐに共同募金運動を広げて827万5千ウォンを集め、この日日本の韓日過去の歴史関連団体協議体の'強制併合100年共同行動日本実行委員会'に伝達した。

日本側実行委員会は伝達された募金額に自らが募金したお金を加えて日本軍慰安婦被害者送信もソン・シンド・ハルモニ、福島の朝鮮学校に渡す予定だと協議会は伝えた。

協議会準備委員長を引き受けたパク・ハンヨン民族問題研究所研究室長は「韓日過去の歴史関連団体らが韓日過去の歴史全般(前半)に対する共同実践機構で常設協議体を作ったことは初めての出来事」と意義を説明した。


韓日 과거사 시민단체 협의체 출범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13개 시민단체가 참가하는 상설협의체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가 22일 출범했다.

참가 단체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문제, 독도 문제, 일본 교과서 왜곡, 친일파 문제, 재일교포ㆍ사할린동포 문제 등 한일 간 과거사 청산운동을 벌여온 곳들이다.

협의회는 이날 오후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출범식을 하고 "지난해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130여개 시민단체가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실현을 위한 한일시민선언'을 발표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협의회를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언문의 원칙과 실천 과제를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단체 간에 과거사 현안 정보를 교류하는 한편 주요 현안에 대해 외국의 한일 과거사 관련 단체들과 연대 활동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협의회는 지난달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나자 공동 모금운동을 펼쳐 827만5천원을 모았으며, 이날 일본의 한일 과거사 관련단체 협의체인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에 전달했다.

일본실행위원회는 전달받은 모금액에다 자체 모금한 돈을 보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 일본 후쿠시마의 조선학교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협의회가 전했다.

협의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한일 과거사 관련단체들이 한일 과거사 전반에 대한 공동 실천기구로 상설협의체를 만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연합뉴스)

2011/04/28

在米韓国人有権者センター所長、慰安婦決議振り返る[金の無心も]



ソウル新聞から在米韓国人有権者センター(KAVC)のキム・ドンソク所長のインタビュー。KAVCとキム・ドンソクについては、これまでにも取上げたことがある

2007年のアメリカ下院の慰安婦決議。韓国政府は日本政府の手前、議会工作に資金は拠出しなかった、とキム所長は言う。たぶん本当なのだろう。

しかし、06年6月5日の中央日報の伝えるところでは(記事は現在ネットから削除されている)、韓国の女性家族部(省)の長官が、日本が「女性・少女へのら致・組織的強かんで、非人道的行為・犯罪を行った」として「決議案が本会議に上程、可決することを期待し、韓国女性を代表し全的な支持を送る」という書簡をアメリカの議員に送っているし、駐米韓国大使館の参事官が「可決に向けた運動を展開する在米韓国人団体などにホンダ議員を紹介するなど、可決に関連したすべての過程を調整した」と同じく中央日報が08年に報じている。

ご丁寧にも「(参事官は)自分を徹底的に隠した。韓国政府が介入しているとの印象を与えれば...米下院が負担を感じ、処理を保留するかも知れない、と判断したから」だと白状している。いつもの事ながら、日本政府は裏切られたわけだが、国際政治というのはそういうものなのだろう。

キム・ドンソクはしかし、韓国政府から資金援助がなかった為にアメリカの議員たちから政治資金を無心されて困ったと告白している。これは、知らなかったなぁ(笑)

その他、全米に「慰安婦の碑」を建てるという計画についても、当サイトで何度かお伝えした。「日本軍性奴隷制度」をホロコーストとダブらせるイメージ戦略も、目新しいニュースではない。ただし、ホロコースト博物館内に「慰安婦の碑」を建てるという話は初めてかもしれない。

慰安婦問題とは関係ないが、竹島(独島)問題でアメリカ人の情に訴えるために(?)子供を連れて行ったという話。かつてアナベル・パクが子供を連れて下院議員を説得して回った(慰安婦決議)話を思い出す。

キムは、米国で一部の韓国系がやっている独島(竹島) 広告は逆効果だとも指摘している。


「在外参政権利用して出世しようとする人がいる」キム・ドンソク韓国人有権者センター所長会ったところ…

来年4月総選挙から始まる在外国民選挙を控えて全世界同胞社会がざわついている。 特に在外同胞が最も多く居住する米国の韓国人社会は少なくないジレンマに陥った雰囲気だ。 200万在米同胞中100万人は在外国民投票権を持つ永住権者および一般・留学生滞留者などで、他の100万人は米国内投票権を持った市民権者などであるためだ。

在米同胞の米国内政治力伸張のため「草の根運動」を主導してきたキム・ドンソク(54)韓国人有権者センター所長を去る22日ソウル プラザホテルで会って1時間余りの間インタビューした。 キム所長は在外国民選挙および韓国人政治力向上のための在外同胞政策をはじめ、日本軍慰安婦・独島(竹島)問題などに対する立場を詳しく明らかにした。 次はキム所長との一問一答.

→在外国民選挙が始まるのにこれに対する評価は。

-その間在外同胞政策は海外で他国へ移住する時に反共教育をさせるなど現地で模範市民がよくすることよりは、公館で管理して韓国側で視線を転じるようにして現地で孤立になった。 中国の場合、移民者らに中国を忘れて現地で新しい中国を作れというが、私たちはそのような方向を持って長期的に在外同胞を考えなかったために粗雑に在外同胞に参政権を与えることになった。 もちろん韓国国籍の人々に参政権を与えることが原則的に間違いではないが、今は国際社会で民族力量を構築するという側面での政策が出てくるべきなのにそんなことはなくて、韓国で視線を転じて出世しようとする。 それは在外同胞として成功でない。 米国で長く生きたら米国で競争力を持って影響力を行使するべきなのに、そうならないことが在外同胞社会の現実だ。

→韓国人政治力伸張のための草の根運動を始めることになった契機は。

-19年前の1992年4月29日米国のロサンゼルス韓国人タウンで黒人暴動が起きたが韓国人に対する保護はなされなかった。 これを目撃して、じっとしていられなかった。 白人政治家たちが在米同胞のために仕事をするようにしようと韓国人密集地域で政治力結集のための韓国人有権者草の根運動を始めた。 ニューヨークを中心に韓国人らが市民権をたくさん受けるようにして有権者で登録するように促して4万人の新規有権者を集めた。 数万人の票付和雷同の現象が現れるから議会で相当な関心を持ったよ。

→日本軍慰安婦決議案通過など相当な成果を上げたが。

-2008年ビザなしで90日間米国を訪問できるビザ免除プログラム(VWP)が施行されたのも私たちの側の役割が65~70%はなると見る。 韓国のアメリカビザ拒否率が下がり行きにくい状況で、2006年から米議会を動かして拒否率を落とす方向で議員らを説得して貫徹させた。

→日本軍慰安婦決議案通過後の後続措置は。

-日本側との摩擦を考慮して韓国政府・政界の助けを排除して韓国人らの力で決議案を通過させたところ米議員らの後援支援金要請が続いて堪え難かった。 「関係者が問題解決」心情で後続作業に出たし、韓国人密集地域議員らの訪韓プログラムを作った。 また、議員らが地方区韓国人らに対してたくさん理解して後援もさらに受けるようにするために「アメリカ韓国人功労決議案」を提案した。 2010年3月下院で通過した。 慰安婦問題も決議案にだけ終わ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考えで「慰安婦記念碑」を銅版に刻んでニュージャージー市図書館のそばに第1号をたてた。 今後2~3年内米全域に記念碑を10個以上建てて、ホロコースト博物館にも建てる予定だ。

→独島(ドクト)問題の海外広報などに対する意見は。

-2008年7月米議会図書館で独島(竹島)の名称を「リアンクール岩礁」 に変えようとす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独島(竹島)問題に飛び込んだ。 韓国人子供たちを連れてワシントンで行って涙で訴えた。 子供両親たちが独島(竹島)問題にパニックがあって仕事をしに行くことができないが、それで税金も出しにくいという要請文を発表した。 独島(ドクト)名称変更が米国益に絶対役に立たないと論理的にアピールした。 米議会図書館の司書が独島(竹島)名をなぜ変えようとしたなら、韓国広報専門家などがワシントンポストなどに「独島は私たちの土地」広告を出したのを見て独島が紛争地域だと考えたためだ。 米国内独島広報は役に立たない。 今は学術的に整えることみな整える時まで実効的支配を維持しながら戦略的に接近しなければならない。 特に米国人たちが我が方を聞き入れ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在米同胞協力(?)強化策および政府の役割に対する提言は。

-韓国人たちが米国内模範市民になって母国のためにはもちろん貧困退治・犯罪予防など米社会問題に堂々と参加して寄与してこそ政治力が伸張する。 韓国人1世は母国だけ眺めている。 韓国人2世は相当数が出世したが韓国と韓・米関係に対して関心を持たない。 アイデンティティの危機が深刻だ。 韓国政府は在米同胞を抱いて管理して統制して韓国に引き込もうとせずに、米国社会に思う存分参加して実力を発揮しろと薦めなければならない。

ソウル新聞 2011.4.26

“재외참정권 이용해 출세하려는 사람 있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만났더니…

내년 4월 총선부터 시작되는 재외국민 선거를 앞두고 전 세계 동포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특히 재외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미국의 한인사회는 적지 않은 딜레마에 빠진 분위기다. 200만 재미동포 중 100만명은 재외국민 투표권을 갖는 영주권자 및 일반·유학생 체류자들이고, 다른 100만명은 미국 내 투표권을 가진 시민권자들이기 때문이다.

재미동포의 미국 내 정치력 신장을 위한 ‘풀뿌리 운동’을 주도해온 김동석(54)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을 지난 22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1시간여 동안 인터뷰했다. 김 소장은 재외국민 선거 및 한인 정치력 향상을 위한 재외동포 정책을 비롯, 일본군 위안부·독도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자세히 밝혔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

→재외국민 선거가 시작되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재외동포 정책은 해외로 이민 갈 때 반공교육을 시키는 등 현지에서 모범 시민이 되게 하기보다는, 공관에서 관리하고 한국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해 현지에서 고립됐다. 중국의 경우 이민자들에게 중국을 잊고 현지에서 새로운 중국을 만들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방향을 갖고 장기적으로 재외동포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설프게 재외동포한테 참정권을 주게 됐다. 물론 한국 국적의 사람들한테 참정권을 주는 것이 원칙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민족 역량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의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고, 한국으로 눈을 돌려 출세하려고 한다. 그건 재외동포로서 성공이 아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으면 미국에서 경쟁력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재외동포 사회의 현실이다.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한 풀뿌리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년 전인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는데 한인들에 대한 보호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목격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백인 정치인들이 재미교포를 위해 일하도록 하려고 한인 밀집 지역에서 정치력 결집을 위한 한인 유권자 풀뿌리 운동을 시작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인들이 시민권을 많이 받게 하고 유권자로 등록하도록 독려해 4만명의 신규 유권자를 모았다. 수만명의 표쏠림 현상이 나타나니까 의회에서 상당한 관심을 갖더라.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는데.

-2008년 비자 없이 90일 동안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이 시행된 것도 우리 측의 역할이 65~70%는 된다고 본다. 한국의 미 비자 거부율이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2006년부터 미 의회를 움직여 거부율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의원들을 설득해 관철시켰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후 후속 조치는.

-일본 측과의 마찰을 고려해 한국 정부·정치권의 도움을 배제하고 한인들의 힘으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더니 미 의원들의 후원금 요청이 이어져 난감했다. ‘결자해지’ 심정으로 후속 작업에 나섰고, 한인 밀집 지역 의원들의 방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의원들이 지역구 한인들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후원도 더 받게 하기 위해 ‘미주 한인 공로 결의안’을 제안했다. 2010년 3월 하원에서 통과됐다. 위안부 문제도 결의안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위안부 기림비’를 동판에 새겨 뉴저지 시 도서관 옆에 1호를 세웠다. 향후 2~3년 내 미 전역에 기림비를 10개 이상 세우고, 홀로코스트 박물관에도 세울 예정이다.

→독도 문제의 해외 홍보 등에 대한 의견은.

-2008년 7월 미 의회 도서관에서 독도 명칭을 ‘리앙크루 록스’로 바꾸려 한다는 것을 알게 돼 독도 문제에 뛰어들었다. 한인 어린이들을 데리고 워싱턴으로 가서 눈물로 호소했다. 어린이 부모들이 독도 문제에 패닉이 있어 일을 하러 가지 못하는데, 그러면 세금도 내기 어렵다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독도 명칭 변경이 미 국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어필했다. 미 의회 도서관 사서가 독도 명칭을 왜 바꾸려 했냐면, 한국 홍보전문가 등이 워싱턴포스트 등에 ‘독도는 우리 땅’ 광고를 낸 것을 보고 독도가 분쟁 지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 독도 홍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학술적으로 갖출 거 다 갖출 때까지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면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미국인들이 우리 편을 들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재미동포 역량 강화 방안 및 정부 역할에 대한 제언은.

-한인들이 미국 내 모범 시민이 돼 모국을 위해서는 물론 빈곤퇴치·범죄예방 등 미 사회 문제에 당당히 참가해 기여해야 정치력이 신장된다. 한인 1세는 모국만 바라보고 있다. 한인 2세는 상당수 출세했지만 한국과 한·미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체성의 위기가 심각하다. 한국 정부는 재미동포들을 품고 관리하고 통제해 한국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미국 사회에 마음껏 참여해 실력을 발휘하라고 권해야 한다.

韓国、先進型学習システムの一環として小中学校に慰安婦アニメ配布



これは前のエントリーの続報・・・というより、内容はほぼ同じ。ただ前回より若干詳しい。個人的には「民族の苦難」という部分に注目している。

慰安婦を、日帝「強占期」を代表する民族的犠牲者として官民を上げて売り込んでいるというわけか。

女性家族部、「日本軍慰安婦被害者フラッシュ アニメーション」製作・配布

2011年04月27日--女性家族部(長官ペク・ヒヨン)は最近の日本の歴史教科書わい曲などで韓国・日本間緊張が高まっている状況で、小中学生を対象にした広報アニメーションの「歴史正しく知ること:日本軍慰安婦被害者」を製作して創意的体験学習活動資料で全国一線の小中学校に配布した。

「創意的体験学習活動」は全国の小学校一二年生中学一年(週三回)、高校一年(週四回)を対象に単純詰め込み式の教育でないテーマ探求型現場体験学習を通じて学生たちのサークル活動など自発的学習を誘導できる先進型教育技法だ。

第一線の小中学校では創意人格教育ネット(www.crezone)を通じて広報用フラッシュ アニメーションに接することができ、教科教師の指導の下で日本軍慰安婦被害者に対する体験型学習活動を進行することになる。

体験型学習活動により日帝治下日本軍慰安婦被害者らが体験した過去の歴史と私たちの民族の苦難を学校現場で生き生き体験できる機会を提供することができ、歴史に対する関心を呼びおこすことができて大きい効果を上げると期待される。

学習資料で提供される広報用フラッシュ アニメーションは被害者証言、文献資料、関連専門家の考証を経て小中学生層に伝えやすいクイズ形式のアニメーション形態で製作され、日本軍慰安婦被害者の証言者料、関連写真資料など歴史的に重要な歴史資料をたくさん含んでいる。

日本の改正教科書で日本軍慰安婦被害者に対する記述を削除して存在自体を否定しているという批判が出ていて、日本の歴史的事実わい曲に対抗して歴史教育を強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声が高まっているなかで、育ち盛りの小中学生を対象に日本軍慰安婦被害者に対する歴史的真実をすぐに知らせることができる契機を用意したというのに大きい意味があると女性家族部は明らかにした。

Newswire 2011.4.27


여성가족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배포

(서울=뉴스와이어) 2011년 04월 27일 -- 여성가족부(장관 백희영)는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한·일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 애니메이션인 ‘역사바로알기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제작하여 창의적 체험학습 활동자료로 전국 일선 초·중등학교에 배포하였다.

‘창의적 체험학습 활동’은 전국의 초등학교 1, 2학년과 중학교 1학년(주당 3시간), 고등학교 1학년(주당 4시간)을 대상으로 단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주제탐구형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등 자발적 학습을 유도할 수 있는 선진형 교육기법이다.

일선 초·중등학교에서는 창의인성교육넷(www.crezone)을 통해 홍보용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으며, 교과 선생님의 지도아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체험형 학습활동을 진행하게 된다.

체험형 학습활동을 통해 일제치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과거사와 우리민족의 고초를 학교현장에서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학습자료로 제공되는 홍보용 플래시 에니메이션은 피해자 증언, 문헌자료, 관련 전문가 고증을 거쳐 초·중등 학생층에게 전달하기 쉬운 퀴즈형식의 애니메이션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자료, 관련 사진 자료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사자료를 많이 담고 있다.

일본의 개정 교과서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여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으며, 일본의 역사적 사실 왜곡에 대응하여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자라나는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바로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여성가족부는 밝혔다.

2011/04/26

リビアで少女らへの性的暴行横行



リビアで少女らへの性的暴行横行か、国際NGOが調査結果公表

子どもたちに国際援助を行う非政府組織(NGO)セーブ・ザ・チルドレンは23日、カダフィ政権軍と反体制派の戦闘が続くリビアで、10歳未満の少女を含む子どもたちが性的暴行を受けている実態を明らかにした。

同団体は、反体制派の拠点都市ベンガジにある6カ所の避難民キャンプで、約300人の子どもらを対象に聞き取り調査を実施。過去4週間の間に、ラスラヌフやアジュダビヤ、ミスラタの各地で、性的暴行を受けたり、殺害の現場を目にしたとの報告を受けた。

調査を行ったマイケル・マールト氏によると、子どもたちやその家族らは「兵士」が暴行を行ったと話しているものの、同団体は政権軍と反体制派のどちらの兵士かは明らかにできないとしている。

アジュダビヤの戦闘から逃れてきた母親らは、4─5人の10代の少女が誘拐され、4日間監禁された状態で性的暴行を受けたと証言。さらに同じアジュダビヤで、8歳の少女が10歳の姉やほかのきょうだいの目の前で性的暴行を受けたという報告もあった。 

マールト氏は、性的暴行の事実は確認できていないとしながらも、事件には一貫性があると指摘。「キャンプで聞く話は非常によく似ている。そのため、(性的暴行は)事実だと確信している」と述べた。

また同団体によると、暴力の対象は子どもだけでなく大人にも及んでおり、複数の子どもが自分たちが暴行される前に、父親が殺害され、母親が性的暴行を受けるのを目撃したと話しているという。

ロイター 2011.4.25

「貢女」と日本軍慰安婦


元慰安婦が韓国の中高生を相手に、私たちのような犠牲者を出さないよう韓国を強い国にしておくれと説教するのは、慰安婦が「貢女」のイメージで語られることが多いからだろう。これがすなわち、千田夏光以来の「従軍慰安婦強制連行」のイメージである。

韓国人も「慰安所内の強制が問題」だなどとは思っていないのである。ただし、イ・教授が米軍相手の洋公主も同列に置いているのは興味深い。

なお、女性を貢がせるというのは、国家間の力関係だけでなく、身分の上下によっても生じたはずである。朝鮮に限らず、日本の歴史にもそういった例は事欠かない。いや、朝鮮の歴史にもあったのではないか?


高麗・朝鮮王朝時代の「貢女」の実態とは

高麗時代から朝鮮王朝時代まで続いた「恥辱」

娘が候補になると、顔に薬を塗って傷を付けることも

「娘が生まれたら秘密にしたまま暮らす。他人に知られるのが心配で、隣人にも娘を見せられない。娘を隠していた事実が発覚すれば、村全体が害を被ることになり、親族を縛って取り調べ、屈辱を与える。処女を選ぶ過程でわいろが取り交わされるが、金がある者は切り抜け、金がない者は連れて行かれる」

高麗時代、李穀(イ・ゴク)=1298-1351=がはるか遠くの元の皇帝に差し出した上訴は、切々としている。李穀が訴えたのは、ことあるごとに中国に献上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人間の献上品」こと貢女のことだ。恥辱の歴史は、5世紀初めまでさかのぼる。高句麗・新羅から中国の北魏に、女子を送ったという記録がある。貢女の献上が最も盛んに行われたのは、高麗後期から朝鮮王朝時代にかけてだった。ソウル大学奎章閣のイ・インスク人文韓国(HK)事業研究教授は、今月末に出版される『朝鮮人の海外旅行』(文字の甕社)で、『高麗史』と『朝鮮王朝実録』を中心に貢女の残酷な実態をまとめた。

■自害・早婚で抵抗することも

高麗時代の元宗15年(1274年)、元が140人の婦女を連行したのを皮切りに、忠烈王・恭愍王代に元に対し献上した貢女は170人以上、44 回に上った。朝鮮王朝時代にも、太宗から孝宗の時代にかけて、明・清に対し9回にわたり146人が献上された。学界では、中国の高官が私的に連れて行ったケースを合わせると、数千人に上ると推定している。

中国から、貢女を選ぶ「採紅使」が訪れると、朝廷では貢女選抜機関を臨時に設置し、巡察使が各地を物色して回った。だが、民衆の抵抗は激しかった。孝宗の時代、慶尚道の鄭煌(チョン・ファン)という人物は、娘が貢女候補になったことを知るや、娘の顔に薬を塗って傷を付けた。また、娘を出家させるケースもあった。高麗時代には、乳飲み子を乳母が抱いて嫁がせることまであった。そのため朝鮮王朝時代には、世宗が「12歳以下の女子については婚姻を禁ずる」という法令を公布し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だった。

朝鮮王朝時代の太宗8年4月、各地から処女30人が選ばれ、ソウルに移送された。父母を亡くして3年以内の女性や、息子がいない家の一人娘を除いた 7人が、景福宮での最終審査に臨んだ。しかし中国の使臣は「美しい女がいない」として官吏を棒で打とうとした。娘たちも指名を避けようと、体に障害があるかのように口をゆがめたり、足を引きずったりした。最終的に、娘たちの父親は全員罷免されたり、流刑に処されたりした。同年7月、再び選抜が始まった。太宗は「処女を隠した者、針灸を施した者、髪を切ったり薬を塗ったりした者など、選抜から免れようとした者」について、厳罰に処するという号令を下した。

■国内外の権力関係を反映

貢女たちのほとんどは、他国で人妻や「めかけ」として人生を終えたが、中には皇帝の目に留まり妃嬪(ひひん=君主の側室)の地位を与えられ、権力の道を歩む者もいた。高麗出身の奇皇后は、母国高麗の王位継承に関与するほどだった。貢女出身の妃嬪の父や兄も「皇親」として権勢にあずかった。奇皇后の兄・奇轍(キ・チョル)は、高麗国王と並んで馬に乗り、歓談した。朝鮮王朝時代の太宗・世宗の代に相次いで2人の妹を貢女として送った韓確(ハン・ファク)=1403-56=は、右議政や左議政(共に現在の副首相クラス)などの要職を歴任した。韓確が密通に及んだ事実が発覚した際も、世宗は「罰せられない人物」だとして黙認するしかなかった。

中国は大陸に新たな権力が誕生したり、国内の国家権力が不安定になるたびに貢女を要求した。高麗や朝鮮の新たな支配者にとって、大国の承認を得ることは最大の急務だった。世宗でさえ、貢女の献上は「国内の利害のみならず、外国にも関係することなので、ただ(中国皇帝の)令に従うのみ」と語った。イ教授は「貢女は、中世国家の欲望と男性の欲望が凝縮された国家間の力学関係から生じた副産物。特定の時期に起こった事件というレベルを越え、その後も“慰安婦”、“洋公主(米兵を相手にする歓楽街の女性)”のように、強大国と弱小国の間で繰り返されてきた」と語った。

朝鮮日報2011.4.24  

関連エントリー: 500人の青少年がナヌムの家で孝行

琉球新報と米下院決議 (2007年)


言うまでもなく、軍の関与がなかったなどと主張している人はいない。安倍の言葉足らずは遺憾だが、あれも質問者の言葉に釣られたという事情もあるだろう。安倍のような「否定派」が否定しているのは強制連行(徴用)である。

琉球新報も百も承知で書いているわけだろうが・・・。


安倍政権発足後、従軍慰安婦問題への日本軍の関与はなかったとする動きが加速し、韓国をはじめ、中国でも日本への批判は強まっている。...世界は従軍慰安婦問題で日本が責任を認め、謝罪しているとは認識していない現実を直視する必要がある。...安倍首相はその後「官憲が人さらいのように連れて行く強制性はなかった」と「狭義の強制性」を否定している。これで河野談話を継承していると言えるのだろうか。...日本が過去の歴史としっかり向き合い、被害者に明確に謝罪しない限り、今後も従軍慰安婦問題は尾を引くことになろう。

琉球新報 2007.6.28

慰安婦謝罪要求 真摯に受け止めるべきだ

米下院外交委員会が第2次大戦中の従軍慰安婦問題をめぐり、日本政府に対して公式に謝罪するよう求めた決議案を賛成多数で可決した。
決議自体には法的拘束力はなく、日本政府は「日本がその都度反応すれば、問題がさらに深刻化しかねない」と静観する構えである。
安倍政権発足後、従軍慰安婦問題への日本軍の関与はなかったとする動きが加速し、韓国をはじめ、中国でも日本への批判は強まっている。
米下院外交委員会での謝罪要求決議案可決もその表れである。日本政府はそれを静観するのではなく、真摯(しんし)に受け止めるべきである。
謝罪要求が日米関係の悪化を招くと懸念する声もある。しかし、それ以前に、世界は従軍慰安婦問題で日本が責任を認め、謝罪しているとは認識していない現実を直視する必要がある。
外務省幹部は「4月の日米首脳会談などで、1993年の河野洋平官房長官談話に沿って『謝罪』を表明した安倍晋三首相の言葉がすべてだ」としている。
確かに安倍首相は2006年10月、政府が従軍慰安婦に「心からのおわびと反省の気持ち」を表明した河野談話を継承する考えを示してはいる。
だが、安倍首相はその後「官憲が人さらいのように連れて行く強制性はなかった」と「狭義の強制性」を否定している。これで河野談話を継承していると言えるのだろうか。
決議案は「慰安婦制度は日本政府による強制的な売春」とし「日本には問題軽視の教科書や世論がある」と指摘している。
自民党内には河野談話見直し論が根強く、歴史教科書からは従軍慰安婦に関する記述が消えてきている。決議案はこのような動きをけん制する意味合いもある。
日本が過去の歴史としっかり向き合い、被害者に明確に謝罪しない限り、今後も従軍慰安婦問題は尾を引くことになろう。
河野談話の歴史的意義を再確認し、それに沿って対応していくことが日本には求められている。

2011/04/21

ハーバード大で証言するイ・ヨンス(2007年)




ここで彼女が何を語っているか分からないが、彼女のこれまでの証言には色々と矛盾が指摘されている。

일본군에 의해 16살때 납치돼 '위안부'(성노예) 생활을 했던 이용수 할머니가 28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한 강의실에서 100여명의 청중을 상대로 당시의 참혹했던 삶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日本軍によって16歳の時に拉致され、『慰安婦』(性奴隷)の生活をしていたイヨンスさんが28日、米ハーバード大学ケネディスクールの一教室で、100人余りの聴衆を相手に、当時の悲惨な生活について証言している。

[B-U] Jpn, Nico, P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