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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6

パリセイズパーク市長、日本への対抗策発表

日本側の反論文書を示す市長
"韓国に対する誹謗の度が増している"

日本側の抗議活動が組織化・過激化していると言っているが、舌の根の乾かぬ内に、日本の動きに対抗する為に韓国系の教会が資金援助を決定したと明かしている。市側は「慰安婦問題に精通する」画家スティーブ・カバルロを担当に据えた(いっそ、日本のテレビに出てもらってはどうだろうか?)。パリセイズパーク市の本気の表れか、それとも止まぬ抗議がいささか煩わしくなったのか。

日本側の抗議は、今のところ逆効果しか産んでいない。ただ、その辺はタイミングや抗議の仕方によって変わる事も考えられる。これまでは稚拙さが目立ったが、抗議のし方が改善されてくれば、マイナスがプラスに転じる日が来ないとも限らない。あまり期待は出来ないが。

日本側が説得の材料と考えた物が、中傷の証拠として逆利用される

市は、慰安婦問題通?のカバルロを担当に任命

とはいえ、市長と副市長、そして慰安婦問題担当に任命されたカバルロが揃って手にしているのは、日本の有志が作った反論広告THE FACTSのニューバージョンである。市長が自らこの広告を、明らかに好意的でない様子で記者に掲げて見せている意味をよく考えたい。資料を突きつければどちらが正しいか分かるはずだ!は、通用しないようである。残念ながら。しかし、日本側の抗議を無視する事が出来なくなっているのも事実のようである。

"日本の「不平」に対し歴史的事実で対応していく"
日本人ら「反慰安婦・記念碑運動」徐々に過激化

不平Eメール70通・団体まで乗り出し「印刷物」送るなど組織化

パリセイズパーク、「平和的真実明らかにする」対応出て

ニューヨーク一円「慰安婦記念碑」に対する日本人の不平と抗議がますます激しくなっている。

2010年10月パリセイズパーク公立図書館の前に初つの慰安婦記念碑建立以来一部日本人が個人的に抗議をしてきたのが次第に内容も乱暴になり、最近では団体が乗り出し慰安婦に対する小冊子を作って郵送するなど組織化され、韓国人の適切な対応が要求されている。

これに対してパリセイズパークでジェームズ・ロタンド市長とジェイスン・キム副市長、スティーブ・カバルロ公立図書館司書兼ギャラリーキュレーターらは14日午前11時、市民(Borough)ホールで記者会見を行い「日本側の抗議と不平に対して歴史的真実を土台に人権と平和のための対応をしていく」と明らかにした。

市側はこのためにスティーブ・カバルロ氏を対応担当者に内定し、コリアン社会の支援と関心を求めた

カバルロ氏は2007年から慰安婦問題に関心を持ち、韓国を訪問してキム・ボクトン・ハルモニなど被害者の証言を直接聞くなど慰安婦真実明らかにするのに力を尽くしている。

カバルロ氏は米国の韓国人画家らを集めて慰安婦をテーマにした美術展を開き、パリセイズパークの記念碑をデザインした人物でもある。

この日記者会見でパリセイズパークのロタンド市長は「2010年10月の記念碑建立以来今まで70通余りの抗議手紙とEメールを受けた。 最近の手紙内容は韓国に対する誹謗の度が増している。 12月にはある団体が日本政府が主張する内容を後押しする過去の書類が印刷されたパンフレットをフェデックスで郵送してくるなど、ますます組織化、激烈化している。 もうこれを無視することは出来ないと考える。 より体系的で効率的対応が必要な時だ」と話した。

ジェイソン・キム副市長は「初期のメールは『韓国人が主張する慰安婦問題は嘘だ』という程度の抗議だったが、ますます強度が高まると今は団体や組織が出て『慰安婦』でなく『自発的売春婦』とか『韓国人もベトナム戦争に参戦してさらに悪いことをし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とんでもない主張をしてきている」と紹介し「日本側に対する対応は市で行政府より慰安婦問題に関する正確な知識を持っているスティーブ・カバルロ司書が民間人の身分に出て平和的に対応した方が良いという判断で、これを一任することにした」と説明した。

彼は「このことのための経済的支援はまずニュージャージー韓国人長老教会で引き受けることにした。 教会は主に着手金500ドルを支援した。今後韓国人社会全体がさらに関心を持って支援して欲しい」と明かした。

カバルロ氏は「この間慰安婦に対する多くの資料を勉強し、その真実を知った。 また、慰安婦絵画展などの経験を通じ、これは被害者だけの痛みでない私たち皆の痛みだという考えをするようになった。 日本人たちに「実状を正確に把握して謝罪することによって、共により良い世界を作り出そうと説得する」と話した。

経費を担当することにしたニュージャージー韓国人長老教会のキム・ドイル副牧師は「恨は晴らさなければならない。誤った歴史は正さなければならない。 今私たちが真実を明らかにして和解を成し遂げようとする努力しなければ、歴史と子孫に罪を犯すことになる」と話し、「韓国人(系?)全員がこの隊列に参加して欲しい」と希望した。

2010年10月パリセイズパーク慰安婦期記念碑建立以降、2012年5月初め駐ニューヨーク日本総領事と極右派である自民党衆議院議員4人がパリセイズパークを訪問し、経済支援を餌に記念碑撤去を要求したのに続き、10月26日には「慰安婦は売春婦」と書かれた杭を記念碑と駐ニューヨーク総領事館建物入口に立てかけるなど「杭テロ」を起こして韓国人の怒りを買った。

日本は今年3月8日バーゲン郡の記念碑除幕を前後してバーゲン郡行政府とフリーホルダー(freeholders)、また他の地域の記念碑関連者にも抗議メールを送るなど反慰安婦運動を強化している。

日本人たちの抗議に対抗し、慰安婦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よって人権と平和運動に参加したい韓国人は市民参与センター(201-488-4201)に問い合わせしたり慰安婦関連ウェブサイト、(www.thecomfortwomen.com)を参照して欲しい。 スティーブ カバルロシの連絡先はEメールstevecavallo**@gmail.comだ。

THE NEWYORK ILBO 2013.3.16

「日本人たちに『実状を正確に把握して謝罪することによって、共により良い世界を作り出そうと説得する』」・・・事情を正確に理解してヘイトの連鎖を止め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貴方の方である。カバルロのメールアドレスは一部伏字にした。聞く耳を持たぬ人に何を言っても無駄である。その労力は別の方向に注ぐべきである。

失敗は成功の元
日本人有志が作った新聞広告


일본인들 ‘반(反)위안부·기림비 운동’ 점차 극렬화

투정 이메일 70통·단체까지 나서 ‘인쇄물’ 보내는 등 조직화

팰팍시, ‘평화적 진실 밝히기’ 대응 나서

뉴욕일원 ‘위안부기림비’에 대한 일본인들의 투정과 항의가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다.

2010년 10월 팰리세이즈파크 공립도서관 앞에 첫 위안부기림비가 건립 이래 일부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 항의를 해오던 것이 점차 내용도 거칠어지다가 최근엔 단체가 나서 위안부에 대한 소책자를 만들어 우송하는 등 조직화 되고 있어 한인들의 적절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대해 팰리세이즈파크 보로 제임스 로툰도 시장과 제이슨 김 부시장, 스티브 카발로 공립도서관 사서 겸 갤러리 큐레이터 등은 14일 오전 11시 보로 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측의 항의와 투정에 대해 역사적 진실을 토대로 인권과 평화를 위한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보로측은 이를 위해 스티브 카발로씨를 대응 담당자로 내정하고 한인사회의 지원과 관심을 당부했다.

카발로씨는 2007년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방문하여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듣는 등 위안부 진실 밝히기에 진력하고 있다.

카발로씨는 미국과 한인화가들을 규합하여 위안부를 주제로 한 미술전을 열기도 했고, 팰팍 기림비를 다지인 한 사람 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팰팍 로툰도 시장은 “2010년 10월 기림비 건립 이래 지금까지 70여통의 항의 편지와 이메일을 받았다. 최근 편지 내용은 한국에 대한 비방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어느 단체가 일본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옛 서류들이 인쇄 된 책자를 페덱스로 우송해 오는 등 점점 조직화, 극렬화 하고 있다. 이제는 이를 무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 대응이 필요한 때다”고 말했다.

제이슨 김 부시장은 “처음의 이메일은 ‘한인들이 주장하는 위안부 문제는 허위다’는 정도의 항의였는데, 점점 더 강도가 높아지더니 이젠 단체나 조직이 나서 ‘위안부’가 아니라 ‘자발적 매춘부’라거나 ‘한국사람들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느냐’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고 소개하고 “일본측에 대한 대응은 보로 정부보다는 위안부 문제에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스티브 카발로 사서가 민간인 신분으로 나서 평화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 이를 일임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일을 위한 경제적 지원은 우선 뉴저지한인장로교회에서 맡기로 했다. 교회는 1차로 시드머니 500달러를 지원했다. 앞으로 한인사회 전체가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카발로씨는 “그동안 위안부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공부, 그 진실을 알았다. 또 위안부 그림 전시회 등 경험을 통해 이는 피해자들만의 아픔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인들에게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죄함으로써,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경비를 담당하기로 한 뉴저지한인장로교회의 김도일 부목사는 “한은 풀어야 하고,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진실을 밝혀 화해를 이루려는 노력하지 않는다면 역사와 후손들에게 죄를 짓게 된다”고 말하고 “한인 모두가 이 대열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2010년 10월 팰팍 위안부기림비 건립 이후 2012년 5월초 주뉴욕일본총영사와 극우파인 자민당 중의원의원 4명이 팰팍시를 방문,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기림비 철거를 요구한데 이어, 10월26일에는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적힌 말뚝을 기림비와 주뉴욕총영사관 건물 입구에 세워놓는 등 ‘말뚝테러’를 일으켜 한인들의 분노를 샀다.

일본은 올 3월8일 버겐카운티 기림비 제막을 전후해 버겐카운티 행정부와 프리홀더, 또 다른 지역의 기림비 관련자들에게도 항의 메일을 보내는 등 반(反)위안부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항의에 맞서 위안부 진실을 밝힘으로써 인권과 평화운동에 동참하고 싶은 한인들은 ‘시민참여센터(201-488-4201)로 문의하거나 위안부 관련 웹사이트, (www.thecomfortwomen.com)를 참조하면 된다. 스티브 카발로씨의 연락처는 이메일 stevecavallo56@gmail.com 이다.

2013/01/16

鳩山由紀夫と慰安婦問題


政界を引退した鳩山由紀夫が、昨年の12月、韓国を訪問してまた話を拗らせるような事を言って帰って来た。その時の様子。後回しにしていたエントリーだが、偉大なる天然ボケが、このたび中国に招待されて何やらまた物議をかもしそうな雰囲気なので、今ごろ取り上げてみた(ここでは慰安婦問題に関する部分だけ)。

度を越えた安倍「極右発想」…1~2年内に日本国民が背を向ける
韓中日経済協力で政治・外交対立解決企業間分業体制構築を

◆東北アジア新しいリスク日極右政権/③「対日戦略」専門家対談◆

16日に日本の衆議院選挙が終わると、民主党政権が3年3ヶ月ぶりに幕を下ろし安倍晋三総裁の自民党極右政権がスタートする。 韓国の新しい政権は、安倍政権という厄介な相手を扱わなければならない。

毎日経済は東北アジアの未来を診断して新しい対日戦略を模索するために鳩山由紀夫前日本国首相とキム・ギョンス産業団地公団理事長間の対談を用意した。 先月22日引退した以後鳩山前総理が韓国言論に登場することは今回が初めて。

キム理事長は駐日商務官を歴任するなど知識経済部官僚として経済政策分野の代表的な日本通で活躍してきた。 ユン・ソンジュン産業団地公団顧問が諮問役で参加した。

(中略)

両国の産業の協力が拡大するためにはまず、政治指導者たちが相互ウィンウィンの信頼関係を再構築する必要がある。そのような面でこれまで日本の努力が不足だった。慰安婦問題だけでも日本政府の努力する姿勢が充分でなかった。アジア女性基金も韓国では被害者の半分以上が拒否した。日本政府が補償を含みその方たちに謝罪する言葉を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韓・日条約ですべてが終わったと蓋をしてしまっては究極的な解決はない。(以下略・全文はエントリーの末に)

 ※1 毎日経済 2012.12.11

そもそも、彼には慰安婦問題について語る資格はないのである。

98年?右がイ・ヨンス

鳩山由紀夫といえば、「戦時性的強制被害者問題解決促進法案」について民主党内の反対意見を押さえ、党論を法案賛成にまとめたのは彼だと言われている。そんな鳩山だから、民主党が政権の座についた時、慰安婦らは大いに期待したものである。3年前の韓国紙はこんな調子だった。

慰安婦ハルモニと日本の新総理「10年来の縁」
1998年に鳩山総理と会ったイ・ヨンス・ハルモニ
真実性感じられる人…日本の新政府に期待」
(ソウル=聯合ニュース)イム・ヒョンソプ記者

「今回は本当に慰安婦問題が解決されるでしょう。 鳩山総理なら・・・」

日帝強制占領期慰安婦強制動員被害者であるイ・ヨンス(81)ハルモニは鳩山由紀夫日本内閣総理大臣が就任した16日、彼に短い手紙を送った。

ハルモニは手紙に慰安婦問題の速やかな解決を望むという言葉と共に「鳩山総理内閣のスタート、心よりおめでとう」と書いた。

イ・ハルモニは23日聯合ニュース記者と会い「儀礼的に祝うといったのではない。 私が会った鳩山総理は本当に真実性が感じられる人であったし、彼ならば慰安婦問題に変化をもたらすと信じたからだ」と手紙を書いた背景を説明した。

イ・ハルモニは1998年の夏日本を訪問した際、市民団体で仕事をした日本人教授の紹介で当時民主党幹事長だった鳩山総理に会った。

当時日本では慰安婦被害者に対する賠償のために「女性のためのアジア平和国民基金」が作られたが、ハルモニは鳩山総理に「政府の謝罪もなしで民間で集めたお金で賠償金を支給するのは理解することはできない。 政府は責任を回避せずに公式謝罪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立場を伝えた。

鳩山総理は当時ハルモニの話を耳を傾けて聞いた後「その問題に対しては真剣に考えている。 私たちも熱心に努力する」と答えたとハルモニは振り返った。

ハルモニは「短い出会いだったが安らかな雰囲気で互いに真心に充ちた対話をした。私が彼に信念を持つのもこの時の記憶のため」と話した。

イ・ハルモニは2000年公明党の東順治議員の事務室を訪問した際、鳩山総理と電話で話して安否を伝えられ尋ねたが惜しくも直接会うことは出来なかった。

それから10年が経ち、鳩山総理の返信を待つイ・ハルモニは「忙しい上に一国の指導者としてそんなに軽く答える問題ではない」としながら「しかし、鳩山総理は明確に手紙を読んだことで私たちの切実な心が必ず伝えられたと期待する」と話した。

ハルモニはこの日午前日本大使館の前で日帝被害者団体総連合会などが主催する「韓日会談文書全面公開要求記者会見」に参加し、すぐに「慰安婦問題解決を促す第884回水曜デモ」に参加する予定だ。 民主党政権スタート後、慰安婦ハルモニ達が開催する最初の水曜デモだ。

ハルモニは「鳩山総理がまもなく訪韓するかも知れないというマスコミの報道を見た。私たちの慰安婦被害者も会うようにしてほしいと政府に要請する計画」と明かした。

※2 ハンギョレ 2009.9.23

鳩山は、慰安婦たちにも「トラスト・ミー」と言っていたわけだ。実際やる気はあったようで、2002年に議員会館で催された集会(「戦時性的強制被害者問題の解決の促進に関する法律案」の審議を推し進める決起集会)で、彼は「補償をし、名誉を回復していくのは当然のこと」と演説しているのである。下がその時の写真。

「補償するのは当然」と言った鳩山
結局言いっ放しに終わった

ところが、総理になってみると・・・。

鳩山連立政権の8ヶ月間、日本政府は日本軍「慰安婦」に対していかなる進展も成し遂げられず、国際社会で過去保守政府のような主張を繰り返しています。


・・・と、彼を引き継いだ菅直人首相(鳩山は9ヶ月弱で退陣)がトバッチリを食らって文句を言われる始末。自分は何度かこの手の議員&市民の集会に参加したことがあるが、鳩山本人も彼の秘書も見かけたことがない。福島瑞穂などは頻繁に顔を出しているし、都合のつかない議員は普通秘書を寄越す。この男は、言いっ放し、やりっ放しなのである。

金泳三大統領は、鳩山の一言で方針転換

鳩山には前科がある。1996年、それまでアジア女性基金の受け入れに反対していなかった韓国政府を翻意させるキッカケを作ったのが彼である。秦郁彦はこのように書いている。

たまたまだろうが、その渦中に道化役が登場する。訪韓した鳩山民主党代表が支援団体の要求に呼応するかのような姿勢を見せたので意を強くしたのか、金泳三大統領と柳外相は・・・「国家的個人補償が必要だ」と言い出す。それは日韓条約(1965)の兼合いで「日本に物質的補償は求めない」としてきた、これまでの韓国政府の方針を180度転換するものと言ってよい。まさに「ヤブをつついてヘビを出した」形で・・・


秦は鳩山を道化と呼んだが、何ヶ月か前の朝生(?)でも田原総一朗が(名前こそ出さなかったが)、鳩山のことを「外交を滅茶苦茶にする天才」と呼んでいた。田原によれば、ロシア政府から招待を受けていた鳩山の訪ロを民主党が必死になって阻止したとか。



※1

도 넘은 아베 `극우발상`…1~2년내 日국민이 등 돌릴것
韓中日 경제협력으로 정치·외교 대립 해결
기업간 분업체제 구축을

◆ 동북아 새 리스크 日극우정권 / ③ `대일전략` 전문가 대담 ◆


16일 일본 중의원 선거가 끝나면 민주당 정권이 3년3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아베 신조 총재의 자민당 극우정권이 출범한다. 한국의 새 정권은 아베 정권이라는 거친 상대를 다뤄야 한다.

매일경제는 동북아의 미래를 진단하고 새로운 대일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와 김경수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간의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달 22일 은퇴한 이후 하토야마 전 총리가 한국 언론에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이사장은 주일 상무관을 역임하는 등 지식경제부 관료로서 경제정책 분야의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활약해 왔다. 윤성준 산업단지공단 고문이 자문역으로 참여했다.

■ 하토야마 前총리-김경수 산단 이사장 대담

▶김경수 이사장=지금 한ㆍ일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가 격랑에 빠져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관료나 의원으로 활동할 때는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신념을 실천하기에 제약이 많았다. 이제 개인으로서 동아시아의 협력 증진을 위해 단체를 만드는 등 역할을 할 계획이다.

▶김 이사장=이번에 후쿠오카, 오사카의 기업들을 방문해 보니 한국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하토야마 전 총리=한국 기업의 급성장으로 일본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양국 산업의 협력이 확대되려면 우선 정치지도자들이 상호 윈윈의 신뢰관계를 재구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일본의 노력이 부족했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일본 정부의 노력하는 자세가 충분하지 못했다. 아시아여성기금만 해도 한국에서는 피해자의 반 이상이 거부했다. 일본 정부가 보상을 포함해서 그분들에게 죄송다는 말을 해야 한다. 한ㆍ일조약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뚜껑을 덮어버리듯 해서는 궁극적인 해결이 안 된다.

▶김 이사장=양국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기업 차원의 자세 전환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전 총리=양국 기업이 경쟁한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결합해 새로운 분업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역사ㆍ정치 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김 이사장=지금 한국에서는 일본 차기 정권의 우경화 성향과 엔고 수정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일본은 한국, 중국에 비해 경제가 침체돼 있다. 경제가 약해지면 강한 메시지를 내놓는 사람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 국민이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 서로의 국익 차원에서 보면 현재 상황은 안타깝다.

▶김 이사장=한ㆍ중ㆍ일은 지금까지 협력을 통해 번영을 구가해왔다. 한ㆍ중ㆍ일 관계에서 앞으로도 갈등과 대립보다 낙관적 전망이 가능한가.

▶하토야마 전 총리=새 일본 정부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내가 이 구상을 내놨을 때 반미로 인식됐지만 잘못된 인식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는 미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일본과 미국 간 무역규모보다 한국과 중국을 합친 규모가 더 크다. 지금은 아시아보다는 미국을 우선시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경제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구분이 아니라 양쪽이 같이 번영하며 협력하는 환경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베 정권의 극우적 발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아베 정권 스스로가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이 궤도를 바꾸도록 만들 것이다. 앞으로 1, 2년 안에 일본 경제가 더욱 악화된다면 국민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김 이사장=한국은 대기업이 성장했고, 일본의 중소기업은 여전히 강하다.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 실행한다면 협력관계가 보다 강화될 것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일본이 성장한 것도 중소기업이 훌륭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국 간 풀뿌리 경제에서 협력을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 5년, 10년 후를 내다보고 어떤 수준까지 협력을 강화할지 양국 정부가 고민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농업, 어업 분야는 3ㆍ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동아시아 전체에서 식량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차원에서 한ㆍ일협력이 가능한 분야다.

▶김 이사장=남북 간 경제협력 사업에 일본 기업이 참여함으로써 평화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구상해볼 수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우선은 북한과 일본 간 국교 정상화가 필요하다. 북한ㆍ일본 간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안이 모색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 이사장=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토야마 전 총리=정치와 경제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 분리가 어렵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 협력이 확산된다면 정치와 외교 부문에서의 대립도 변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 끝>

■ He is…


하토야마 前총리는 1947년 도쿄도 출생으로 도쿄대와 스탠퍼드대를 나온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조부는 1950년대 총리를, 부친은 참의원과 외무장관을 지냈다. 외조부는 타이어업체 브리지스톤 창업주다. 1986년 중의원 의원에 첫 당선된 후 7선을 지냈다.

2009년 54년간 이어온 자민당 장기집권을 종식시킨 주역으로 민주당 정권에서 첫 총리를 역임했다. 한ㆍ일 갈등 해소를 위해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으며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1년 만에 사퇴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당론에 반대하는 후보는 공천하지 않겠다고 하자 "의원을 하기 위해 정치적 신념을 바꿀 수 없다"며 지난달 22일 돌연 정계에서 은퇴했다.

※2

위안부 할머니와 日신임총리 '10년 인연'
1998년 하토야마 총리 만난 이용수 할머니
"진실성 느껴지는 사람…일본 새 정부에 기대"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이번에는 정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겠죠. 하토야마 총리라면…."

일제 강점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용수(81) 할머니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취임한 지난 16일 그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다.

할머니는 편지에 위안부 문제의 빠른 해결을 바란다는 말과 함께 "하토야마 총리 내각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썼다.

이 할머니는 23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의례적으로 축하한다고 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난 하토야마 총리는 정말 진실성이 느껴지는 사람이었고, 그라면 위안부문제에 변화를 가져올 거라 믿기 때문"이라고 편지를 쓴 배경을 설명했다.

이 할머니는 1998년 여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일본인 교수의 소개로 당시 민주당 간사장이던 하토야마 총리를 만났다.


당시 일본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위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만들어졌는데, 할머니는 하토야마 총리에게 "정부의 사죄도 없이 민간에서 모은 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지말고 공식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당시 할머니 얘기를 귀 기울여 들은 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할머니는 회상했다.

할머니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 진심어린 대화를 나눴다.

내가 그에게 믿음을 갖는 것도 이때의 기억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2000년 일본 공명당의 히가시 준지 의원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하토야마 총리와 전화로 통화하며 안부를 전하고 물었으나 아쉽게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하토야마 총리의 답신을 기다리는 이 할머니는

"바쁘기도 할 뿐더러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리 가볍게 답변할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분명히 편지를 읽었을 것이고 우리의 절실한 마음이 꼭 전해졌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날 오전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제피해자단체총연합회 등이 주최하는 `한일회담 문서 전면공개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곧바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제884차 수요시위'에 참가할 예정이다.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 후 위안부 할머니들이 여는 첫 수요시위다.

할머니는 "하토야마 총리가 곧 방한할지 모른다는 언론 보도를 봤는데 우리 위안부 피해자들도 만나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度を越えた安倍「極右発想」…1~2年内日国民が背を向ける
韓中日経済協力で政治・外交対立解決企業間分業体制構築を

◆東北アジア新しいリスク日極右政権/③'対日戦略'専門家対談◆

16日日本衆議院選挙が終われば民主党政権が3年3ヶ月ぶりに幕を下ろして安倍晋三総裁の自民党極右政権がスタートする。 韓国の新しい政権はアベ政権という経た相手を扱わなければならない。

毎日経済は東北アジアの未来を診断して新しい対日戦略を模索するために鳩山由紀夫前日本総理とキム・ギョンス産業団地公団理事長間の対談を用意した。 先月22日引退した以後鳩山前総理が韓国言論に登場することは今回が初めてだ。

キム理事長は駐日商務官を歴任するなど知識経済部官僚として経済政策分野の代表的な日本通で活躍してきた。 ユン・ソンジュン産業団地公団顧問が諮問役で参加した。

■鳩山前総理-キム・ギョンス算段理事長対談

▲キム・ギョンス理事長=今韓・日関係はもちろん東北アジアが荒波に陥っている。 新しい環境でどんな役割をする計画なのか。

▲鳩山由紀夫前総理=官僚や議員で活動する時は「東アジア共同体」という信念を実践するのに制約が多かった。 もう個人として東アジアの協力増進のために団体を作るなど役割をする計画だ。

▲キム理事長=今回福岡、大阪の企業らを訪問してみると韓国に対する強い警戒心が感じられた。

▲鳩山前総理=韓国企業の急成長で日本が被害を受けているという認識のためだ。 両国産業の協力が拡大するにはまず政治指導者が相互ウィンウィンの信頼関係を再構築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のような面で今まで日本の努力が不足した。 慰安婦問題だけでも日本政府の努力する姿勢が充分でなかった。 アジア女性基金だけでも韓国では被害者の半分以上が拒否した。 日本政府が補償を含んでその方に陳謝付ける言葉をいわなければならない。 韓・日条約にすべてのことが終わったとふたを覆ってしまうようにしては究極的な解決しない。

▲キム理事長=両国経済協力のためには企業次元の姿勢転換も必要だと見られる。

▲鳩山前総理=両国企業が競争するとだけ考えてはいけない。 お互いの長所を認めて結合して新しい分業体制を作っていくことが重要だ。 また、歴史・政治問題を解決して信頼を積むことが重要だ。

▲キム理事長=今韓国では日本次期政権の右傾化指向と円高修正のためにすべての手段を動員するというメッセージに注目している。

▲鳩山前総理=日本は韓国、中国に比べて経済が低迷している。 経済が弱くなれば強いメッセージを出す人が注目をあびるほかはない。 日本国民が冷静で冷静に判断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お互いの国益次元で見れば現在の状況は残念だ。

▲キム理事長=韓・中・日は今まで協力を通じて繁栄を謳歌してきた。 韓・中・日関係で今後も葛藤と対立より楽観的展望が可能なのか。

▲鳩山前総理=間日本政府は東アジア共同体の重要性をはっきりと認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 私がイ・グさんを出した時反米と認識されたが誤った認識だ。 東アジアの平和は米国のためにも良いことだ。 日本とアメリカ間貿易規模より韓国と中国を合わせた規模がより大きい。 今はアジアよりは米国を優先視するメッセージを出しているけれど経済関係の重要性を見逃したのだ。 米国か、中国かの区分でなく両側が一緒に繁栄して協力する環境を必要とする時代がくるだろう。 アベ政権の極右的発想は長くは続かないだろう。 アベ政権自らが軌道修正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うでなければ国民が軌道を変えさせるだろう。 今後1,2年内に日本経済がより一層悪化するならば国民がこらえ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

▲キム理事長=韓国は大企業が成長したし、日本の中小企業は依然として強い。 経済分野で具体的なプロジェクトを作って実行するならば協力関係がより強化されるだろう。

▲鳩山前総理=日本が成長したのも中小企業が立派だったために可能だった。 両国間草の根経済で協力を広げていく必要がある。 5年、10年後を見通してどんな水準まで協力を強化するのか両国政府が悩んで決める必要がある。 日本では農業、漁業分野は3・11東日本大地震以後非常に難しい状況だ。 東アジア全体で食糧問題をどのように解決するのかに対する次元で韓・日協力が可能な分野だ。

▲キム理事長=南北間経済協力事業に日本企業が参加することによって平和協力を強化する方案も構想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

▲鳩山前総理=先ずは北朝鮮と日本間国交正常化が必要だ。 北韓・日ボン間拉致者問題を解決するために協力する過程で自然に新しい方案が摸索され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と考える。

▲キム理事長=経済と政治を分離する努力が必要なことではないのか。

▲鳩山前総理=政治と経済全部人がすることだと分離が難しい。 かえって多様な分野で経済協力が広がるならば政治と外交部門での対立も変化の道を模索できるはずだ。 <シリーズ終わり>

■ He is…

鳩山前総理は1947年東京都出生で東京大とスタンフォード大を出た政治名門の家柄出身だ。 祖父は1950年代総理を、父親は参議院と外相を過ごした。 母方のおじいさんはタイヤ業者ブリジストン創業者だ。 1986年衆議院議員に初めての当選された後7線を過ごした。

2009年54年間受け継いできた自民党長期政権を終息させた主役で民主党政権で初めての総理を歴任した。 韓・日葛藤解消のために総理就任後靖国神社を参拝しなかったし沖縄米国基地移転問題で1年ぶりに辞退した。

野田佳彦総理が党論に反対する候補は公認しないとすると"議員をするために政治的信念を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として先月22日突然政界から引退した。

2012/11/24

[参考] 韓国が「極右」を連発するわけ


自ら招いた「日本の右傾化」 ソウル・黒田勝弘

先日、韓国の新聞に「極右・野田が極右に警告」という記事が東京発で出ていた。野田佳彦首相が米紙とのインタビューで領土問題に関連し「健康な民族主義は必須だが極端に傾けば排外主義になりうる。(日本には)極端な雰囲気が広がっている」と語ったと紹介していた。

 野田首相はこれまで「領土問題では不退転の覚悟」を語り、武器輸出三原則の緩和や集団的自衛権の行使容認検討などを主張していたのに、選挙を意識し姿勢を変えているというのだ。

 それにしても野田首相まで「極右」とは、首相自身も苦笑いだろう。

 韓国で、気に食わない日本の動きをやたら「極右」と言い出したのは1990年代中ごろからだろうか。当初は石原慎太郎氏など右派、保守派の政治家や知識人、産経新聞や「文芸春秋」などに“極右レッテル”を貼っていたが、対象は広がる一方だ。

 最も新しいところでは「安倍総裁が極右の本性」「安倍、無法な極右公約」などと安倍自民党にホコ先が向いている。

 筆者も「極右言論人」にされて久しい。当初は韓国メディアとのインタビューなどで「何でもかんでも極右とはおかしいのでは。韓国社会が昔に比べ左傾化したから日本の保守派や右派が“極右”に見えるのじゃないか」と反論していたが、今や領土問題や安全保障、教科書記述など「普通の国家」としての日本の当たり前の自己主張はみんな極右になっている。

単に右派とか右翼ではなく「極右」という極端な表現を使うのは、韓国では右派とか右翼には肯定的な意味があるからだ。

 インタビューでは「産経新聞が極右なら朝日新聞など“極左”じゃないのか」とからかったこともあるが、朝日新聞は「良心的新聞」という。その朝日新聞も李明博大統領の竹島上陸や天皇発言では韓国批判に転じたため、韓国のメディアや知識人は大いに戸惑っている。

 最近、ソウルであった日韓関係セミナーの席で「李明博ショックのおかげで日本では朝日新聞はじめみんな産経新聞になりました」と冗談を言ったのだが、韓国における執拗(しつよう)な反日-日本たたきは日本の国民感情を刺激し続けた。

 それが、韓国で盛んに非難される「日本の保守化、右傾化」につながった、少なくともその一要因になっている、という分析が語られることは残念ながらほとんどない

 語られるのは日本経済の沈滞、国力低下、自信喪失、閉塞(へいそく)感…などいつも日本側の背景説明だけだ。韓国(や中国)の民族主義、あるいは極端な反日愛国主義の影響、それへの反省や自制の声はまったくといっていいほど聞かれない

 以前は韓国でも知日派の長老政治家が「こんなに長年、謝れ、反省しろと言い続けられては、日本でなくてもイヤになり怒るだろう」と公開の席で自制論を語ることがあったが、今やそんな風景など見当たらない。

 竹島問題も当初、日本は国交正常化の際の“棚上げ”論で比較的静かだった。しかし韓国は「これでもか、これでもか」と支配強化を続け、挙国的な日本非難キャンペーンで愛国シンボルにしてしまった。「自分のモノを何が悪い」というが、相手がある問題だから相手を刺激するのは当然なのに。

産経 2012.11.24   

2012/11/11

日本を挑発し、焼け太る反日団体


キム・ドンソクにとっては追い風?

「(日本に対して)戦略的な対応が必要だ」・・・だからもっと我々に支援を、協力を、と旧KAVCのキム・ドンソクは言いたいのだろう。

あるコリアウォッチャーによると、韓国人は党派色が強くスポーツや政治団体が乱立して足を引っ張り合う傾向があるのだという。アメリカでも「約32万人が暮らすニューヨーク・ニュージャージー地域に約1000の韓国人団体が乱立している(2009年)」という状況であるという(下記事参照)。

しかし、こうした団体群に統一行動を取らせたり、功名争いに利用されているのが「竹島・日本海・慰安婦問題」の反日の3点セットであるらしく、分裂しているが故に功を競うという思わぬプラス効果を生んでいるように見える。

アメリカの新聞に慰安婦広告を出した男は、日本の主要大学に1万枚のポスターを貼ったと世間を騙したただの目立ちたがり屋である。ところがそんな小物に元首相までが釣られてしまうのが、悲しいことに日本なのである。これが韓国でニュースになるから、ますます向こうは勢いづく。エビで鯛の入れ食い状態。

売名行為に・・・

次期首相を含む38人の日本の国会議員が釣られた

キム・ドンソクは今回の日本側の反論を大いに政治利用するだろう。日本側が挑発に乗り、日本側の反発を利用して反日団体が焼け太るという構図は、抗日戦争が共産中国の統一に貢献したのと似ているかもしれない。

KAVC=韓国人(韓国系米国人)有権者センターは、市民参与センターと名を変えた。組織名からコリアンを外すことによって、非韓国系を巻き込もうとし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訂正:団体名からコリアンは外していなかった/Korean American Civic Empowerment)。慰安婦問題を、日韓の問題でなく普遍的問題として国際社会に訴えて行くという韓国政府と歩を一にする動きかもしれない。こうした韓国人の深謀遠慮に日本側が学べることは多いはずなのだが・・・。

「慰安婦強制動員なかった」=日本有識者ら米で広告

【ニューヨーク聯合ニュース】ジャーナリストの櫻井よしこ氏や作曲家のすぎやまこういち氏ら日本の有識者でつくる「歴史事実委員会」が旧日本軍による従軍慰安婦の強制連行を否定する内容の広告を米紙に掲載し、物議を醸している。

同委員会は先ごろ、日本の自民党、民主党、無所属国会議員39人と共に米ニュージャージー州の地元紙「スターレッジャー」に「Yes,We remember the facts.(われわれは事実を記憶する)」と題した広告を掲載した。

この広告は、韓国の歌手キム・ジャンフンさんと韓国広報専門家として知られる誠心女子大学教養教育院の徐敬徳(ソ・ギョンドク)教授が従軍慰安婦問題に対する日本の謝罪を求め、ニューヨークのタイムズスクエアの電光掲示板や米紙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に掲載した広告に反論する内容となっている。

同委員会は広告の中で、日本政府や日本軍が従軍慰安婦の動員に介入したという内容の文書はなく、「性奴隷」と表現される慰安婦らは許可を得て売春行為を行い、収入は当時の日本軍の将校や将軍よりも多かったという暴言を並べた

また、日本軍が若い女性らを性奴隷に追い込んだ20世紀最大の人身売買事件という主張は歴史の歪曲(わいきょく)であり、日米の親善関係に悪影響を与えかねないとの主張を展開した。

今回の広告は、日本軍による従軍慰安婦の強制連行を認めた1993年の河野洋平官房長官談話を撤回すべきだとする日本の極右派陣営の主張を反映しているとみられる。

河野氏は先月、日本メディアとのインタビューで、「紙の証拠がないからといって、戦後半世紀を超えて今も苦しむ女性の存在や戦争中の悲劇までなかったと言わんばかりの主張には、悲しみさえ覚える」と述べた上で、日本の人権意識が疑われ、国家の信用を失いかねないと懸念を示した。

在米韓国人の権利伸張運動を展開している団体で、慰安婦の碑の設置を主導した市民参与センターのキム・ドンソク常任理事は「一連の流れから見て、ニュージャージーを中心に米国で、慰安婦問題を否定・歪曲しようとする日本側の攻勢がさらに強まると予想されるだけに、戦略的な対応が必要だ」と話している。


ヨン様ことペ・ヨンジュンが40億円を超える所得の9割を日本で稼ぎ出したというニュースもあったが、彼なども日本の総理大臣より稼いでいたはずだ。なにより反論広告には資料が添付されているのだから、暴言だとなじる前に反証を上げて反駁したらどうか?

【取材日記】恥をさらしたニューヨーク韓国人会長選挙

「ニューヨーク韓国人会長の座のために3人の候補が各20万ドル以上の選挙費を投入」

28日(現地時間)、米国の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NYT)に現地の韓国人らの顔を赤らめさせる記事が掲載された。

29日に行われるニューヨーク韓国人会長選挙を取り上げ批判する内容だった。記事は「韓国人が2人集まれば協会を作る」という言葉はもはや通じなくなり、団結することを知らぬ韓国人社会の慢性病をさらけ出した。そして「約32万人が暮らすニューヨーク・ニュージャージー地域に約1000の韓国人団体が乱立している」と指摘した。「ニュージャージー韓国人会」「大ニュージャージー韓国人会」「大南部ニュージャージー韓国人会」「中部ニュージャージー韓人会」など、なぜ分けられることになったのか分からない似たような協会が列挙されている。

各種団体の乱立により、ニューヨーク韓国人会に対する関心も低くなっている。このためNYTは韓国人関係者の話を引用し「候補者たちが多くの金とエネルギーを浪費している」とし「ニューヨーク韓国人会よりも重要なことをしている団体がいくつもある」と皮肉った。韓国人社会の一部では「海外在住韓国人の参政権付与が韓国人会選挙の過熱を呼んだ」という意見がある。国内選挙が行われれば、海外同胞の発言権も高まることから、韓国人会会長の地位争いは激しくなる。

韓国人の情緒を知らない米国メディアには理解できない部分が多いだろう。不慣れな外国で生活しているため、自分の存在価値を確認できる場が必要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しかし既存の団体と合わないからと言って、多少のことで別所帯を構える形態は正当化しがたい。今回のNYTの報道を機に、韓国人の諸団体が統合と協力の道を模索するのであれば、禍転じて福となすだろう。

2012/09/14

大阪市議会、良識派日本人の梯子外す。「慰安婦問題は解決済み」

8月24日に「日本軍『慰安婦』問題・関西ネットワーク」が河野談話を否定した橋下大阪市長に対し、大阪市議会が2010年に慰安婦問題解決に関する意見書を採択したなどと公開質問書を突きつけてから半月も経たない今月の7日、同じ大阪市議会が慰安婦問題は解決済みという意見書を採択したと韓国メディアが報じている。大阪(関西)に強力な支持基盤を持つ良心派日本人は梯子を外された格好である。

東北アジア歴史財団の南相九(ナム・サング)は橋下妄言の影響としているが、イ・ミョンバク大統領の妄動が大元だろう。

大阪市議会が独島・慰安婦問題で意見書採択

【ソウル聯合ニュース】大阪市議会が、旧日本軍の従軍慰安婦問題が「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されている」とし、韓国に強硬な対応を取るよう日本政府に求める意見書を今月7日に採択したことが分かった。

同市議会は意見書で、先月15日の光復節(日本植民地からの解放記念日)の演説で、李明博(イ・ミョンバク)大統領が従軍慰安婦問題に言及し、日本の責任ある措置を求めたことについて、「そもそも1965年の日韓基本条約において、諸問題は『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されている」と主張した

同市議会は2010年10月13日に、従軍慰安婦問題の早期解決を求める意見書を採択している。2年前とは立場を180度変えたことになる。

また、この意見書で同市議会は日本政府が、「対韓融和路線をとり続けていることにより、韓国の行動は歯止めが効かなくなっている」と主張し、日本政府に強硬な対応を求めている。

李大統領の天皇への謝罪要求発言については「極めて礼を失するものであり、到底容認できない」と非難した。

また、李大統領の独島訪問は、「不法上陸」だと規定し、両国の信頼関係を根本から覆すものだとしている。独島問題の重要性に鑑み、「国際司法裁判所(ICJ)提訴にとどまらず、日韓通貨協定更新の見直しなど、対韓外交の総合的見直しを進めるよう強く要望する」と主張した。

韓国の専門家は、同市議会の意見書は日本の極右保守の風潮が、一部政治家に限らず日本社会全体に広がっていることを示すものだと懸念を示した。

東北アジア歴史財団の南相九(ナム・サング)博士は、1965年の韓日基本条約において従軍慰安婦問題は解決済みという主張はこれまでも日本国内の一部にあったが、「市議会で意見書が採択されたのは今回が初めて」と話した。橋下徹大阪市長の従軍慰安婦の強制性を否定した妄言が、影響したのではないかと分析した。

2007年米議会が従軍慰安婦の強制動員に関し、日本政府に公式謝罪することを求めた決議案が採択された。これをきっかけに、日本の地方自治体では今までに30件余り、従軍慰安婦問題解決を促す意見書が採択された。

一方、韓国政府は慰安婦問題の責任を回避しようとする日本側の動きに強く反発している。先月29日には外交通商部の報道官が声明を出し、「時代の流れに逆らう行為だ」と批判した。その上で、「歴史に目をつぶる国に未来はない」とし、被害者の傷を癒すための解決策を一刻も早く講じるよう求めた。

また、慰安婦問題は国際社会が認めている戦時中の女性人権問題であるため、国際舞台で日本を圧迫する方針だ。18日から開催される国連総会の場では慰安婦問題を取り上げる。

2012/09/08

キム・グラ騒動とアン・セホンの「表現の自由」


キム・グラのことは取り上げるタイミングを逸し続けていたのだが、前々から写真家アン・セホンが検閲されたの表現の自由を尊重しないのと日本に対し苦言を呈しながら(慰安婦問題に絡んだ)自国の表現・言論の自由の問題を棚に上げているのが気になっていたので、この際一度エントリーしておいた方がいいと思った。

国民的アイドルとなった慰安婦を娼婦と結びつけることは、韓国ではタブーになっている。古くは大学教授がアメリカ軍基地村の売春婦の問題も無視すべきでないと言って辞職を迫られた(彼を叩いていた連中が今何をしているかと言うと→「米軍売春問題を取り込む挺対協」)。

キムはテキサス村の娼婦がバスに分乗してデモに向かったことを、慰安婦のデモ以来と発言してバッシングを受けたのである。彼はテレビの番組を降板し、復帰が許されたのは5ヶ月近く経った先月末であった。その間、(イ・ヨンフン教授と同じように)ナヌムの家で膝をついてハルモニに謝罪したり息子の学校にマスコミが押し寄せたり。贖罪の為にいろいろな事をやらされたようである。

父親の騒動で息子の音楽デビューも延期された

アン・セホンの場合叩いていたのは日本のネチズンや保守系の市民団体だったが(住所を晒すなどかなり悪質な事も行われたようである[要確認])、キム・グラの場合はマスコミなど社会を上げて彼を叩いたのである。

贖罪の為ナヌムの家人権コンサートに出席したキム(2012.6.6

「慰安婦卑下発言」キム・グラ暫定引退

10年前にした日本軍隊慰安婦卑下発言で論議に包まれた放送人キム・グラが現在の出演中である7個の放送プログラム下車を宣言して暫定引退した。 キム・グラは16日午後7時30分報道資料を通じて日本軍慰安婦さげすみ発言に対する謝罪の立場を伝えてこのように明らかにした。

キム・グラは「成熟でなくてたくさん不足した時期にインターネット放送を通じて話した内容がほとんど10年余りができていく今もう一度問題になるのを見ながら口外に出てきた話を再び拾ってつめ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世の中の真理を新たに悟った」と話した。 引き続き今日この時間から私自身を見て回って自粛する時間を過ごすことに決心した。”として暫定引退の立場を伝えた。

問題になったキム・グラの日本軍慰安婦卑下発言は2002年タンジ日報のインターネットラジオ番組「キム・グラ、ファン・ボンアルの時事対談」で行き来した対話だ。 キム・グラは当時集娼村の女性たちが警察取り締まりに反発、貸切りバスに乗って国家人権委員会を訪ねて行って沈黙デモを行ったのを置いて「売春婦が貸切りバス二台に別れて乗るのは以前に挺身隊(引用注:慰安婦)とかそうだ、久しぶりに見るのではないか?」と話した。

(1)ソウル新聞 2012.4.17

家族と共にお婆さんたちに誠意を尽くす・・・と言えば聞こえはいいが、かつては大学教授、女優、無名のネチズンが慰安婦を侮辱したとして社会的に糾弾され、許しを請う為にこうしてナヌムの家を訪れている。キム・グラの熱心な贖罪活動を美談と捉えるか、社会的生命を断たれようとしている人間の懸命な行動と見るか、人それぞれだろう。

キム・グラ、慰安婦ハルモニにひざまずき謝罪… 「私が無知だった」息子ドンヒョン君、妻とともに3回訪問…

過去の失言で放送暫定引退を宣言した放送人キム・グラが慰安婦おばあさんを直接訪ねひざまずいて謝罪した。

キム・グラは最近3回にかけて京畿道広州に位置する慰安婦おばあさんが集まって住む「ナムヌの家」を訪ねた。

「ナムヌの家」のアン・シングォン所長は11日ノーカットニュースとの通話で「キム・グラ氏が毎週『ナムヌの家』を訪ねハルモニたちと時間を過ごしている。 初めはここに来た事実を明かしたがらながったが、家族と一緒と真心をつくすキム・グラ氏の心が感じられた」と伝えた。

アン所長によれば、キム・グラは先月18日に「ナムヌの家」で初めて連絡を取ってきて、ハルモニを訪ねボランティアしてもかまわないかと尋ねた。 キム・グラがすべての放送で降板(?)を宣言して二日ぶりだ。

アン所長は「4月22日のお昼頃ここを初めて訪れた。 到着しても車を降りずに再度自身が行ってもかまわないかと尋ねた。 ハルモニ(は?)6分程度おられたがその方たちの前でキム・グラはひざまずいて『助けは差し上げられなくてもそのような発言をして申し訳ない』と頭を下げて謝罪した」と伝えた。

謝罪するキム・グラに慰安婦ハルモニは暖かい手助けを差し出した。 ハルモニはこうして訪ねてきてうれしくて、歴史について知らずにこうしたことが起きたことだから、これを機会に歴史に対してよく知って行けばという心を伝えた。

その後にもキム・グラは二度さらに「ナムヌの家」を訪れた。 4月29日息子ドンヒョン君と共に訪問したキム・グラはドンヒョン君に「ナムヌの家」私の(?)位置した日本軍慰安婦歴史館を見学させ、義母が包んだというギョーザを持ってきてハルモニたちと餃子スープを作って食べ共に草を摘む(?)など意義深い時間を過ごした。

また、父母の日を控えた5月6日、妻とドンヒョン君と共にこちらを探したキム・グラはハルモニにカーネーションを付けて上げて、贈り物をした。 特に二度目に「ナムヌの家」を訪ねたドンヒョン君は祖母対するようにハルモニたちと気立てが優しく過ごしたし、キム・グラ家族全員で「ナムヌの家」の保守工事と清掃などを鉄だって長時間留まり帰った。

アン所長は「この日キム・グラ氏が粘り強い助けを望んで『ナムヌの家』後援登録をして行り、今後もずっと訪問してもかまわないのか尋ねた。 私たちの立場では感謝したことなのにキム・グラ氏はやたらと来て気を遣う(?)ことはないかと心配をしたよ。 着実に『ナムヌの家』を探すことにしたし、その間よく分からなかった歴史を知るようになりハルモニに会って感謝しますという言葉も共に伝えた」と明らかにした。

一方、キム・グラは10余年前インターネットラジオ放送で売春女性を慰安婦(挺身隊)に比喩した事実が知らされて荒々しい非難を受けた。 これによってキム・グラは4月16日、芸能界暫定引退を宣言して出演中であるすべてのプログラムを降板し、現在の自粛中だ。

(2)hanlooli.com 2012.5.11

事件は、息子のドンヒョンにとっても文字通り他人ごとではなかった。

父親と一緒にTVに出たことも

キム・グラ息子苦衷、学校に集まる取材陣「もヒドイよ!」

キム・グラの息子ドンヒョン君に対する憂慮の声が高まっている。

最近放送人キム・グラ(42)が10年前従軍慰安婦卑下発言に対する責任を負ってすべての放送で電撃降板して、取材熱がドンヒョン君にまで及んでいる。

このためにキム・グラは去る16日降板を公式宣言し、家族としばらく旅行に出ることもした。 しかし19日中学生であるドンヒョン君が再び登校した19日から取材陣が学校に集まっており、苦衷が並大抵でない。

取材陣は校門の前で待ちかまえ、ドンヒョン君が現れるとすぐに父親の近況を尋ねるかと思えば、ドンヒョン君の友人にドンヒョンの状態を尋ねるなど過剰取材論議に包まれた。

キム・グラも息子に対する心配が大きい。 引退宣言直前にも彼は「(ドンヒョンが)とてもナイーブな時期に事件が起こった」として「息子に過去の話をたくさんしたし、幼い心に恨まない(?)話を幾度もしてきた」と話した。

一方、このような取材熱気に対してネチズンは「現代版連座制ではないのか」 「いくら取材といっても、配慮が必要ではないのか」等批判の声を高めている。

(3)이비ニュース 2012.4.20

キム・グラの復帰が叶ったのは、5ヶ月近くも経ってから。

活動中断していたキム・グラ、tvN「タクシー」で復帰

ことし4月、元従軍慰安婦への問題発言で活動を中断していた韓国タレントのキム・グラが、tvN「現場トークショー タクシー」で活動を再開することがわかった。

tvNは、キム・グラがイ・ヨンジャ&コン・ヒョンジンのバトンを受け継ぎ、来る13日から「タクシー」のMCとして出演することを明かした。

制作陣は「初回放送で活動を中断することになり、休んでいた期間に懐かしく感じていた人々に再び会い、近況や現在の心境を正直に語ってくれるだろう」と伝えた。また、キム・グラとタッグを組む人物が決定していないため、初回放送ではキム・ソンジュが特別MCとして参加するという。

キム・グラは、2002年に進行されたラジオ番組で「娼婦たちが貸し切りバス2台に分かれて乗っているのを見て、過去の従軍慰安婦を見ているようだった」と話した内容がSNSを通じて広がり、物議をかもしていた。

今回、活動復帰を決意したキム・グラは「悩んだ末に、MCとして番組に出演することを決めた」とし、「放送を通して良い姿をお見せすることが、最も良い方法だと思った」と心境を語っている。

「タクシー」制作陣は「番組が、『MCキム・グラ』へと新たに衣替えをしたことで、これにマッチする番組となるよう努力していきたい」と伝えた。

2007年にスタートした「タクシー」は、MCがゲスト乗せたタクシーの中で様々な質問を投げかけ、トークを繰り広げる番組だ。

WoW!Korea 2012.9.3

少し前になるが、キム・グラは(韓国の基準では)決して非常識な歴史観を持った人間ではないと中央日報はフォローしていた(あくまで、黒田記者を「極右」と呼ぶような韓国の基準での話だが)。黒田勝弘とキム・グラの歴史問題を巡るやり取り。「正しい歴史認識」で対抗しようとしたキムだったが、どうやら黒田に論破されてしまったらしい。

慰安婦関連の暴言で非難されたキム・グラが、5年前に極右派日本人と繰り広げた討論の映像が新たに話題を集めている。

キム・グラは2007年にケーブルチャンネルXTMで準備した光復節特集放送にパネラーとして参加した。当時日本側代表として討論に出たのが黒田勝弘氏(当時産経新聞ソウル支局長)。彼は「竹島は日本の領土だ」「韓国は植民支配の恩恵を受けた」と話すなど日本国内の代表的な極右派の1人と評価される人物だ。

当時キム・グラは慰安婦問題に対し、「米国下院議会では決議案を通過させなかったか」と質問し、黒田氏は「ひとつの意見であるだけ。1年に数千件の決議案が採択されるが、その中の1件にすぎない。当時日本社会には職業的にそのような女性(売春)が存在したし違法ではなかった」と答えた。

これに対しキム・グラが「私たちはそのような時代ではなかった」と反論すると、黒田氏は「貧困などの理由で自分が望まないことまでしなければならない状況もあるにはあっただろう。戦争は広い意味の強制性がある」とし、「日本政府は当時謝罪しなかったか」と強い語調で話した。しかしキム・グラは「ならば毎回謝罪するのはいらいらしているのか」と鋭く言い放ち、黒田氏は「慰安婦問題をはじめと過去史はすべてそうだ」と答え討論は一段落した。

その後キム・グラは、「(相手が)父親のような年齢で思った通りに話せなかった。多くの知識で詭弁ばかり並べた」と悔しがった。

この映像が話題を集めているのはキム・グラが2002年にインターネット放送でした話とかみ合わさったためだ。当時キム・グラは性風俗従事者の集団デモを慰安婦に例え物議を呼び、16日に謝罪の意味からすべての番組を降板した。




「私は検閲されている」日本に抗議するアンだが、
自国の言論の自由については一言ないのだろうか?

日本の写真家たちは少々近視眼的になってないか?




※1
‘위안부 비하 발언’ 김구라 잠정 은퇴

10년 전에 했던 일본군위안부 비하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방송인 김구라가 현재 출연 중인 7개 방송 프로그램 하차를 선언하며 잠정 은퇴했다. 김구라는 16일 오후 7시 30분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폄하 발언에 대한 사과 입장을 전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구라는 “성숙하지 못하고 많이 부족했던 시절에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말했던 내용들이 거의 10여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다시 한번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입 밖에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세상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시간부터 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며 잠정 은퇴 입장을 전했다.

문제가 된 김구라의 일본군위안부 비하 발언은 2002년 딴지일보 인터넷 라디오 프로그램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 오간 대화다. 김구라는 당시 집창촌 여성들이 경찰 단속에 반발, 전세버스를 타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 침묵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창녀들이 전세버스 두 대에 나눠 타는 것은 예전에 정신대라든지 참, 오랜만에 보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2
김구라, 위안부 할머니에 무릎꿇고 사죄… "제가 무지했다"
아들 동현군, 아내와 함께 3차례 방문… 후원과 봉사 약속
[제휴기사=노컷뉴스 방송연예팀 봉준영 기자] 과거 말실수로 방송 잠정 은퇴를 선언한 방송인 김구라가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김구라는 최근 3차례에 걸쳐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나눔의 집’을 찾았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11일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김구라 씨가 매주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이곳에 온 사실을 밝히기 꺼려했지만 가족과 함께 와 진심을 다하는 김구라 씨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안 소장에 따르면, 김구라는 지난달 18일 ‘나눔의 집’으로 처음 연락을 취해왔고,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봉사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김구라가 모든 방송에서 하차를 선언한 지 이틀 만이다.

안 소장은 “4월 22일 점심 무렵 이곳을 처음 찾았다. 도착해서도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한 채 재차 자신이 가도 되겠냐고 묻더라. 할머니 여섯 분 정도 계셨는데 그분들 앞에서 김구라는 무릎을 꿇고 ‘도움은 못 드릴망정 그런 발언을 해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죄했다”고 전했다.

사죄하는 김구라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은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할머니들은 이렇게 찾아와줘서 반갑고, 역사에 대해 몰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니 이번 기회에 역사에 대해 잘 알고 갔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그 후에도 김구라는 두 차례 더 ‘나눔의 집’을 찾았다. 4월 29일 아들 동현 군과 함께 방문한 김구라는 동현 군에게 ‘나눔의 집’ 내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관람시켰고, 장모님이 싸주셨다는 만두를 가지고 와 할머니들과 만둣국을 끓여먹고 함께 풀을 뽑는 등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어버이날을 앞둔 5월 6일, 아내와 동현 군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구라는 할머니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선물을 전했다고. 특히 두 번째로 ‘나눔의 집’을 찾은 동현 군은 친할머니 대하듯 할머니들과 살갑게 지냈고, 김구라 가족 모두 ‘나눔의 집’ 보수공사와 청소 등을 도우며 오랜 시간 머물다 돌아갔다.

안 소장은 “이날 김구라 씨가 꾸준한 도움을 원해 ‘나눔의 집’ 후원 가입을 하고 갔으며 앞으로도 계속 방문해도 되는지 물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인데도 김구라 씨는 괜히 와서 신경쓰이게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하더라. 꾸준히 ‘나눔의 집’을 찾기로 했으며 그동안 잘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되고 할머니를 만나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구라는 10여년 전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윤락여성을 위안부(정신대)에 비유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해 김구라는 4월 16일, 연예계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출연 중인 모든 프로그램에 하차했으며 현재 자숙 중이다.

※3
김구라 아들 고충, 학교로 몰려드는 취재진 ‘해도 너무해!’

김구라 아들 동현 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방송인 김구라(42)가 10년 전 종군위안부 비하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든 방송에서 전격 하차하자, 취재 열기가 동현 군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김구라는 지난 16일 방송하차를 공식 선언하고 가족들과 잠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19일 중학생인 동현 군이 다시 등교한 19일부터 취재진이 학교로 몰려들고 있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취재진은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 동현 군이 나타나자 아버지 근황을 묻는가하면, 동현 군의 친구들에게 동현이의 상태를 묻는 등 과잉취재 논란에 휩싸였다.

김구라 역시 아들에 대한 걱정이 크다. 은퇴 선언 직전에도 그는 “(동현이가) 한창 예민한 시기에 일이 터졌다”며 “아들에게 과거 얘기를 많이 해줬고 어린 마음에 원망하지 말을 누누이 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취재열기에 대해 네티즌들은 “현대판 연좌제 아닌가” “아무리 취재라고 해도 배려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데일리안 연예 = 이선영 넷포터]

2012/09/04

消えゆく吉見義明

最近この人の話をトンと聞かない。この人は慰安婦騒動の最大の功労者(?)だった。橋下市長が慰安婦の強制連行に懐疑的な見解を述べ韓国が反発する中、日本のメディアはどこも彼のコメントを取りに行かなかったのだろうか。それとも自分が見落としていただけなのか。

20年前、彼が「証拠を発見した」と朝日新聞が一面で報じたのが慰安婦騒動の始まりである。秦郁彦はこれを「慰安婦問題のビッグバン」と呼んだ。いずれこの人も吉田清治のように無かったことにされてしまうのだろうか?そんな雰囲気が漂い始めている。

そんな吉見教授だが、韓国紙は話を聞きに来てくれたらしい。

2chでは「強制募集って何だ?」「宇宙人、未来人は私の所へ来なさい(涼宮ハルヒの憂鬱)、みたいなものか?」というようなコメントで溢れかえっていたが、貧しさから慰安婦になるのも強制(連行)などと際限なく拡大解釈する学者だから、茶化されるのも仕方ないだろう(このインタビューでは、日本の政治家が「過度に狭く解釈する」と文句を言っている)。

日本軍が慰安婦の採用にあたって誘拐や人身売買の可能性をチェックしていたのは、これらが軍の規定に違反するからだろう。そこから180度逆の結論を導き出す。この人は万事この調子である。

慰安婦以外の強制連行(戦時労務動員)は、文書も名簿も、根拠になった法律も残っている。慰安婦の動員関連書類だけ消えるというのはおかしな話である。彼はこうした屁理屈を駆使した学者として名を残すのだろう。日韓関係を歪めた人間としても。それにしても、北朝鮮の拉致と一緒にするとは、一線を超えている。

[過去の歴史反省ない日本] 「日、慰安婦強制募集証拠多いが外面(?)」


謝罪「河野談話」引き出した吉見義明教授インタビュー

「北朝鮮政府の文書に『日本人を拉致せよ』とされているのがなければ北朝鮮の『日本人拉致問題』がないと主張してもかまわないのか」

日本軍慰安婦制度の強制性を認めて謝罪した1993年河野洋平官房長官談話を引き出した吉見義明(66)中央大教授は31日「日本軍が強制的に慰安婦を募集したという証拠は非常に多い。 日本の政治家たちが真実に目と耳を閉じて各種証拠を見ないだけ」としながらこのように話した。

彼は1992年の1月、日本の防衛庁(現防衛省)防衛研究所図書館で日本軍が慰安婦問題に直接関与した事実が入れられた公文書6点を発見して朝日新聞に情報提供した。 その後日本政府は真相調査を行ったし、1993年8月「日本軍が強制的に慰安婦を募集するのに関与した」という事実を認めた「河野談話」を発表した。

最近野田佳彦総理、安倍晋三前総理、橋下徹大阪市場など日本政治家たちが相次いで日本軍の慰安婦強制連行事実を否定するのを彼はどんな考えで見守ったのだろうか。 橋本市長はさらに「慰安婦が日本軍に暴行、脅迫にあって連行されて行ったという証拠を韓国が出せば良いだろう」とまで言った。

▼ 「日反証なければ慰安婦証言法的効力」 ▼

吉見教授と主五大研究室で会って慰安婦問題に対して話を交わした。

―最近日本政治家たちが先を争って河野談話を否定する発言をするのに….

「彼らは『慰安婦強制動員』と書かれた政府公文書がないということを根拠にそのように主張する。 だが、誰が公文書に『慰安婦を強制的に募集しなさい』で少ないだろうか」

―公文書になった証拠は確かにないか。

「日本軍が慰安所を設置して慰安婦を強制的に募集するのに関与した事実は明白で証拠も非常に多い。 1940年10月に作成された米国公文書はだまされてミャンマー(当時ビルマ)に来た韓国慰安婦20人の話が記されている。 1948年11月東京裁判所判決には日本軍が中国で強制的に慰安婦を募集した内容が記されている。 日本政治家たちはこのような事実を全く言及しない

―一部政治家は日本軍でなく民間業者が慰安婦を募集したと主張する。

「日本軍が直接出て慰安婦を募集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だろう。 だが、慰安所は軍隊が直接用意した。 民間業者が慰安婦を連れてくれば軍隊は誘拐(だまして連れてきたという意味)あるいは人身売買(お金を与えて慰安婦に買ってきたという意味)がでないのかいちいち確認した。 誘拐や人身売買が明白でも軍隊は民間業者を全く処罰しなかった。 このような記録等を見る時日本軍が慰安婦募集に関与したというしかない」

―それでもなぜ政治家たちが日本軍の慰安婦強制募集を否定するか。

「慰安婦問題を過度に狭く解釈するためだ。 彼らは『軍隊が慰安婦を強制的に募集した』という公文書があるか、ないかだけを論じる。 退役日本軍の回顧録、韓国慰安婦おばあさんの証言は受け入れない。 証言も相手方の反証がなければ法的証拠と認定されることができる」

―日本政治家たちは自身の主張に問題点があるということを理解できないという意味なのか。

「冗談で言う話がある。 日本は北朝鮮に拉致日本人問題解決を毎度要請する。 だが、北朝鮮の公文書に『日本人を拉致しろ』とされているのがないだろう。 それなら北朝鮮は『拉致問題はない』で主張してもかまわないことではないのか」

―政治家だけでなく極右団体も河野談話を否定する。 根本的な理由は何か.

「日本が過去の歴史に謝り始めたことはわずか20~30年前だ。 以前には過去の歴史を問題にしなかった。 自己反省が不充分だった。また、一つは日本人たちの自信不足だ。 現在の経済が良くなくて韓国と中国が浮上している。 自信を次第に失いながら自身が違ったのを認めないで外部の攻撃に反発していると考える」

―河野談話の成果をどのように評価するか。

「日本政府が慰安婦の問題点を認めたことは大きい意味がある。 だが、慰安婦問題をまともに解決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河野談話を基礎で日本政府が確かに責任を負って賠償するべきであった。 1996年アジア女性基金を作って国民募金を通じて慰安婦おばあさんに1人当り200万円(約2800万ウォン)ずつ支援することもした。 だが、相当数おばあさんが拒否した。 国民でなく政府が補償金を集めるべきであった」

未来指向の韓日関係を作るために政治家たちがどのようにすべきか.

「日本の政治家たちがもう少し勉強したら良いだろう。 視野をとても狭くせずに事実をありのまま見たら良いだろう。 あったことをないといえば未来指向的な関係になれない。 いくら(過去の歴史を)認めることが苦痛でも将来の信頼関係を積むために認めることは認めなければならない」

―韓国政府は慰安婦問題と関連して国連決議案推進カードを触っている。

「韓国の人々が慰安婦問題に確かに行動する姿を見せるべきだ。 それが日本の将来のためにもより良い。 被害を受けた韓国のお婆さんのためにもそうだ」

stoo.com 2012.9.1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日, 위안부 강제모집 증거 많지만 외면”


사죄 ‘고노담화’ 이끌어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 인터뷰
“북한 정부 문서에 ‘일본인을 납치하라’고 돼 있는 게 없다고 북한의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도 되는 건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이끌어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66·사진) 주오(中央)대 교수는 31일 “일본군이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했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일본 정치인들이 진실에 눈과 귀를 닫고 각종 증거를 보지 않을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2년 1월 일본 방위청(현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문제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담긴 공문서 6점을 발견해 아사히신문에 제보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진상조사를 벌였고, 1993년 8월 ‘일본군이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하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최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 등 일본 정치인들이 잇달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그는 어떤 생각으로 지켜봤을까. 하시모토 시장은 심지어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 협박을 당해 끌려갔다는 증거를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라고까지 말했다.

▼ “日 반증 없으면 위안부 증언 법적효력” ▼

요시미 교수를 주오대 연구실에서 만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최근 일본 정치인들이 앞다퉈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데….

“그들은 ‘위안부 강제 동원’이라고 적힌 정부 공문서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누가 공문서에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하라’고 적겠는가.”

―공문서로 된 증거는 확실히 없나.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하는 데 관여한 사실은 명백하고 증거도 매우 많다. 1940년 10월에 작성된

미국 공문서는 속아서 미얀마(당시 버마)에 온 한국 위안부 20명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1948년 11월 도쿄(東京) 재판소

판결에는 일본군이 중국에서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일본군이 아니라 민간업자가 위안부를 모집했다고 주장한다.

“일본군이 직접 나서 위안부를 모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안소는 군대가 직접 마련했다. 민간업자들이 위안부를 데려오면

군대는 유괴(속여 데려왔다는 의미) 혹은 인신매매(돈을 주고 위안부로 사왔다는 의미)가 아닌지 일일이 확인했다. 유괴나

인신매매가 명백해도 군대는 민간업자를 전혀 처벌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들을 볼 때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정치인들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모집을 부정하나.

“위안부 문제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대가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했다’는 공문서가 있느냐, 없느냐만 이야기한다. 퇴역 일본군의

회고록,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증언도 상대방의 반증이 없으면 법적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자신의 주장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은 북한에 피랍 일본인 문제 해결을 매번 요청한다. 하지만 북한 공문서에 ‘일본인을 납치해라’고 돼 있는 게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납북자 문제는 없다’고 주장해도 되는 것 아닌가.”

―정치인뿐 아니라 극우단체들도 고노 담화를 부정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이 과거사에 사과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30년 전이다. 그 전에는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았다. 자기반성이 불충분했다.

또 한 가지는 일본인들의 자신감 부족이다. 현재 경제가 좋지 않고 한국과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자신감을 점차 잃으면서 자신이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고 외부의 공격에 반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노 담화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고노 담화를

기초로 일본 정부가 확실히 책임을 지고 배상했어야 했다. 1996년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고 국민 모금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인당 200만 엔(약 2800만 원)씩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할머니들이 거부했다. 국민이 아니라 정부가 보상금을

모았어야 했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

정치인들이 좀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시야를 너무 좁게 하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봤으면 좋겠다. 있었던 일을 없다고 하면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과거사를)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장래의 신뢰 관계를 쌓기 위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유엔 결의안 추진 카드를 만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확실히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더 낫다. 피해를 본 한국 할머니를 위해서도 그렇다.”

2012/09/01

韓国紙も訝しむ河野洋平の沈黙


慰安婦の証言以外に強制連行(行政による動員)の証拠が見つからない中で、河野談話は実質的に証拠に準ずるものとして扱われている。つまり「強制連行」は日本政府公認の歴史的出来事という理屈である。例えば朝鮮日報はこのように書く。

...国会ではこの日、日本政府が慰安婦の強制連行を認め、謝罪した1993年の「河野洋平官房長官談話(河野談話)」を撤回すべきとの意見も飛び出した。


その為、韓国(と日本の強制連行派)は、河野談話の撤回を警戒している。そんな彼らだから、河野洋平本人の話を聞こうとアプローチを試みたようである。

本当は日本の報道でクロスチェックしたいところなのだが、何年も前から河野洋平は日本メディアのインタビューを拒んでいるようである。産経の阿比留記者は5年前に、いろいろと理由をつけてインタビューを断られていると書いていた。そして、以前は韓国紙のインタビューには応じた河野だが、今回は韓国メディアも河野本人から直接話を聞くことは出来なかったようだ。ソウル新聞は、2年前にインタビューした時と違う河野の態度に困惑気味?

河野は秘書を通じ、騒ぎが静まったら自分の立場を述べると伝えたとされるが、むしろこんな時だからこそ証言すべきではないのか?

安倍晋三元首相や松原仁国家公安委員長など日本の政治家たちが、慰安婦の強制連行を認めて謝罪した「河野談話」の見直し・撤回を主張していることをめぐり、1993年に談話を発表した河野洋平元官房長官(写真)は29日「(自分の)立場は談話を発表したときと全く変わっていない」と語った。河野元長官の事務所関係者が、本紙の電話取材に応じ同氏の見解を伝えた。

同関係者は「(河野氏は)最近の状況に非常に不満を感じており、日韓関係をとても心配している」と話した。先ごろ一部の国会議員が、談話発表の経緯や事実関係を確認するため河野氏の参考人招致を求めたことに対しては「正式な手続きを踏んだ上で要請があれば、国会で談話に対する立場を堂々と語る」とした。河野元長官はまた「日本と韓国は今回の事態にもう少し冷静に対応してほしい」と語ったとのことだ。

河野元長官は、2007年に当時の安倍晋三首相が「旧日本軍の強制連行はなかった」と主張すると、インタビューで「慰安婦の強制連行がなかったという議論をするのは知的に誠実ではない」と批判した。また、慰安婦の徴集命令を裏付ける証拠資料がないとする右翼の批判には「処分されたと推定できる」と指摘したほか「私は信念を持って談話を発表した」「元慰安婦16人からの聞き取り調査で、明らかに厳しい目に遭った人でなければ証言できないような状況説明が次々と出された」などと語った。

河野元長官は1967年に政界入りした後、衆議院に14回当選した。官房長官、自民党総裁、衆議院議長などを歴任し、09年に政界を引退。引退する際、後輩の議員たちに「日本は被害者であるだけでなく、加害者でもあったということを学んでほしい。特に韓国と中国に関する外交を真剣に考え、正しい姿勢で臨んでもらいたい」と語った。

河野氏は自身の談話をめぐり、極右派の政治家たちから集中的な批判を浴びていることについて「談話を否定することで米国でも問題となり、アジアやオランダなどでも論争が起きた。『日本で政治とは何なのか』という言葉を聞いたのは、非常に遺憾だった」と述べた。


●2010年本紙インタビュー時は「謝罪」

1993年8月4日日本軍慰安婦問題と関連して日本政府の謝罪を入れた「河野談話」を発表した河野洋平前官房長官は最近韓国・日本外交葛藤に対して複雑で息苦しい心情を表明したと伝えられた。

河野前長官の秘書は29日ソウル新聞との電話インタビューで「河野前長官が官房長官を務めた者として日本軍慰安婦問題に対して『今は話す状況でない』という立場を見せている」とし「韓国と日本が激しく対立する今をすぎて雰囲気が沈めば慰安婦問題と河野談話に対する立場を言及するだろう」と話した。

河野前長官の「沈黙」は2010の年ソウル新聞とのインタビューで日本政府の責任、慰安婦に対する丁重な謝罪を伝えた時とは明確に違う姿だ。 彼は当時「日本軍慰安婦問題は明らかな事実だ。 当事者が途方もない苦痛を味わったという点で日本はどうにかできる仕事はしようと思った」と話した。

●「安倍は常に慰安婦問題否定的」

安倍晋三前総理が慰安婦の強制動員を否認したのと関連しても河野前長官は「安倍前総理は常に否認する立場を堅持した。 それほど驚くことではなかった。 もちろん変だとは考えた。 しかし私があえて明らかにしなくても多くの国民はすでによく知っている真実だ」と言及した。

ソウル新聞 2012.9.1

追記: 河野はウォールストリート・ジャーナルの取材も断ったようである。しかも、彼の側近は匿名を条件に話したという。引退したといっても、河野は先日もサンデーモーニングに出演していた。

...Mr. Kono, now retired, declined a request for an interview through an aide. "My understanding is Mr. Kono's position on the statement remains the same," said the aide, who asked not to be identified...(既に引退している河野氏は、側近を通じてインタビューの要請を断った。「私の理解では河野氏の立場は変わっていない」と匿名を希望した側近は述べた)

WSJ 2012.9.19

[위안부 증거 있다] ‘위안부 사죄’ 고노측 “지금은 말할 상황 아니다”

●2010년 본지 인터뷰땐 ‘사과’

1993년 8월 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담은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은 최근 한·일 외교갈등에 대해 착잡한 심정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노 전 장관의 비서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고노 전 장관이 관방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금은 말할 상황이 아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격렬히 맞선 지금을 지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위안부 문제와 고노담화에 대한 입장을 언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노 전 장관의 ‘침묵’은 2010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위안부들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전했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분명한 사실이다. 당사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는 점에서 일본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은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베는 항상 위안부문제 부정적”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부인한 것과 관련해서도 고노 전 장관은 “아베 전 총리는 항상 부인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대부분의 국민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진실이다.”고 언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