ラベル 慰安婦像 の投稿を表示しています。 すべての投稿を表示
ラベル 慰安婦像 の投稿を表示しています。 すべての投稿を表示

2012/02/15

慰安婦像の前で泣き崩れる日本人牧師



2chでは相変わらず国籍を調べろなどと毒づいている人がいるが、実はこういうタイプの日本人は多いのである。特にキリスト者に目立つ。先々月ある韓国在住の日本人牧師の講演を聞きに行ったが、思ったのは、この宗教の教義自体にこの種の陥穽にはまり易い弱点があるらしいということ(誤解のないように言っておくと、キリスト教徒の中にもこういった人々に対して批判的な人はいる)。キリスト教とは関係ないが、在日朝鮮人(差別)問題と慰安婦問題を混同して冷静な判断が出来なくなるのは、村山一兵と同じパターン。


韓国の政治団体が日本政府に対する当てつけに作った偶像(彼女たちはこれを「平和の像」と名付けた)の前で泣き崩れる姿は、確かに一種の偶像崇拝であって合理的思考とは無縁な印象を与える。吉田清治のような詐話師でないにしても韓国のマスコミにとっては好餌なのだろう、カメラが周囲に群がっている。

この野村基之という人物は、過去にこのような文章も書いていたようである。

「大日本帝国の侵略を受け始めた後、1910年からは酷い植民地支配を受けるようになりました。[...]このような寒村にも嘗て日本軍の軍旗がはためき軍靴の音が轟きわたり、住民、特に婦女子を恐怖のどん底に突き落としたのか…あるいは鳥撃帽を深くかぶった特高が嗅ぎ廻っていたのか?…などと想像をしただけでも、日本人青年の一人としてあの穏やかで美しい田舎の土地の上に立つのに罪悪感を覚えたのを今でも鮮明に記憶しています。(日本による過去の侵略の歴史を全く学んでいない現在の日本の若者は韓国映画の俳優に夢中になっています。 極めて不幸な国民だと私はいつも戸惑っています。)」(韓国春川の白基豊校長先生

真実を探求するより想像力を優先させてしまうこの人の性向は、若い頃から変わっていなかったという事だろう。本当に「軍靴の音が轟きわたり」、婦女子が「恐怖のどん底に突き落と」されたのか、村の古老に聞いてみれば良かったのである。ある意味不幸なのはこの人の方である。「平和を愛する人々」と日本の社会に訴えたいと彼は言う。慰安婦像は「平和の像」。運動家たちは日本大使館前の通りを「平和通り」と名付けようとも訴えている。平和という言葉がどんどん胡散臭くなっていくようである。

追記: 中央日報と聯合ニュースの英語版の記事も追加した。中央日報では、野村は forced into sexual slavery by the Japanese Imperial Army(日本帝国陸軍によって性奴隷になる事を強制された)慰安婦を象徴する像にJapan's wartime atrocities(戦時の日本の残虐行為--慰安所システム?)を謝罪した事にされている。野村の場合は彼の本心とさして違わないのかもしれないが、大体において良心的日本人の行動を韓国メディアが解説する場合、話が膨らむ傾向にあるようである。聯合ニュースには日本軍が強制したとは書かれていないが、女性たちは強制された、日本政府が the war crimes(この戦争犯罪)について謝罪も賠償もしていないと書いている。

″花を踏みにじった日本、申し訳ない心を持つのは当然″

'清渓川貧民運動' 野村牧師‘鳳仙花’を演奏し、バラの花を献花
日本大使館への抗議訪問は不発

染みが浮かんだ八十歳の老人の手がフルートの上に用心深く乗せられた。 指を動かし、歌曲‘鳳仙花’の悲しい韻律がソウル、鍾路区の駐韓日本大使館前に鳴り響いた。‘ウルミッテソン ポンソンファヤ(垣根の下に咲いた鳳仙花)ネモヤンギ チョリャンハダ(君の形がわびしい…)’老人が準備したフルート演奏と一輪のバラは日本軍‘慰安婦’被害少女のためのものだった。
13日午前、少女の姿を形象化した‘平和碑’前に立った老人は、演奏を終えてひざまずいた。 そして涙を流した。彼は日本人社会運動家 野村基之(81・山梨県ベタニヤ教会)牧師だ。 「鳳仙花の歌詞の中の秋風は日本の侵略を意味し、落ちた花は‘慰安婦’被害者ですよね。5才の頃、日本人たちが朝鮮人を苛めるのを見て心が痛みました。その申し訳ない心を持って演奏したいと思いました。」

彼は約40年前にも幼い息子・娘を連れて日帝が虐殺を犯した京畿道(キョンギド)華城(ファソン)、堤岩里(チェアムリ)教会と独立活動家が獄苦にあえいだ西大門(ソデムン)刑務所を訪ねた。 野村牧師と韓国の縁は尋常ではない。韓国戦争が勃発する前に日本、東京に留学に来た韓国人の友人を知ってから韓国は彼にとって近い国になった。1968年、宣教師として韓国の地に第1歩を踏み、ソウル、清渓川の貧民街の惨状を目撃した。 野村牧師は1980年代中盤まで韓国と日本を50余回にわたり往復し清渓川で布教と貧民救済活動を行った。‘貧民運動の父’故チェ・ジョング前議員と共にしたことだった。‘平和碑’献花に先立ち、彼は12日慶南(キョンナム)、統営(トンヨン)で開かれたチェ前議員13周忌追悼式に参加した。 昨年も日帰りで韓国に立ち寄った。清渓川で布教活動をして縁を結んだおばさんが亡くなり、後に残った病院の借金800万ウォンを渡すためであった。

野村牧師は日本政府が‘慰安婦’問題の始末をつ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語った。1965年、韓-日協定を結んだが両国共にこの問題を覆いかくし適当にやりすごしたということだ。「‘慰安婦’被害は明らかな事実ではないですか。 申し訳ない心を持つのは私の良心としては当然のことです。」彼はこの日、駐韓日本大使館を訪問しようとしたが取材陣が集まり志を達せなかった。日本の一市民として‘慰安婦’問題に対する日本政府の立場を聞き、韓国人が納得できる措置を取ってほしいという話をしようとした。「2つの民族がなくなりはしないでしょう。 争うより仲良く過ごすのが良くないのかと、お願いしたかったのです。」

野村牧師の携帯電話の液晶画面には空を飛ぶ飛行機の写真がある。彼の家の窓を開けば空に見える日本成田空港と仁川空港を行き来する飛行機だ。彼はきちんとした韓国語で話を続けた。「飛行機を見るたびに韓国の友人を思います。」 15日に日本に戻る彼は平和を愛する人々と共に‘慰安婦’問題解決を望む意を日本社会に伝えると語った。

ハンギョレ 2012.2.13
livedoorニュース(訳) 2012.2.14

Remorse Over 'Comfort Women'

Japanese pastor Motoyuki Nomura bowed in apology for Japan's wartime atrocities on Monday in front of a statue representing the "comfort women" forced into sexual slavery by the Japanese Imperial Army during World War II. He played a Korean song on the flute in front of the statue, which was set up in December last year near the Japanese Embassy in Seoul.

Nomura is known for his volunteer work in the 1970s and 80s when he visited Korea 50 times to help the poor living in slums along the Cheonggye Stream.


Japanese pastor's atonement over comfort women in Seoul

Motoyuki Nomura (R), a Japanese pastor, weeps after playing a Korean song on the flute at the Peace Monument, a statue of a young girl that symbolizes sex slaves known as "comfort women," in front of the Japanese Embassy in Seoul on Feb. 13, 2012. Nomura, 81, who hails from Japan's Yamanashi Prefecture and worked for the relief of poor people in South Korea in the 1970s and '80s, made the visit as a gesture of his own atonement for Japan's wartime atrocities. The monument was dedicated to now-elderly Korean women who were forced into sexual slavery for Japanese soldiers during World War II. Former comfort women, along with their supporters, have called for an apology and compensation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which has yet to offer either for the war crimes.


“꽃송이 짓밟은 일본, 죄송한 마음 갖는건 당연”
팔순의 일본인, 위안부 소녀상에 무릎꿇다


'청계천 빈민운동' 노무라 목사
‘봉선화’ 연주하며 장미꽃 헌화
일본대사관 항의방문은 불발


검버섯이 핀 팔순 노인의 손이 플루트 위에 조심스레 얹어졌다. 손가락을 움직이자, 가곡 ‘봉선화’의 서글픈 운율이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길에 울려 퍼졌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노인이 준비한 플루트 연주와 장미꽃 한 송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소녀를 위한 것이었다.
13일 오전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평화비’앞에 선 노인은 연주를 마친 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내 흐느꼈다. 그는 일본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81·야마나시현 베다니교회) 목사다. “봉선화 노랫말 속 가을바람은 일본 침략을 의미하고, 떨어진 꽃송이는 ‘위안부’ 피해자들 같아요. 5살 무렵,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연주하고 싶었어요.”


그는 약 40년 전에도 어린 아들·딸을 데리고 일제가 학살을 저지른 경기도 화성 제암리 교회를 찾았었다. 노무라 목사와 한국의 인연은 남다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일본 도쿄에 유학 온 한국인 친구를 알게 되면서 한국은 그에게 가까운 나라가 됐다. 1968년 선교사로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디면서 서울 청계천 판자촌의 참상을 목격했다. 노무라 목사는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을 50여차례 오가며 청계천에서 선교와 빈민구제 활동을 했다. ‘빈민운동의 대부’ 고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한 일이었다. ‘평화비’ 헌화에 앞서, 그는 12일 경남 고성에서 열린 제 전 의원 13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지난해에도 하루 일정으로 한국에 들렀다. 청계천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연을 맺은 아주머니가 숨지면서 남긴 병원 빚 800만원을 내주기 위해서였다.


노무라 목사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 협정을 맺었지만 양국 모두 이 문제를 덮고 적당히 넘어갔다는 것이다. “‘위안부’피해는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죄송한 마음을 갖는 건 내 양심으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을 방문하려 했으나 취재진이 몰려 뜻을 이루진 못했다. 일본 시민으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묻고, 한국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해달라는 말을 하려 했었다. “두 민족이 사라지진 않잖아요. 싸우기보다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않느냐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노무라 목사 휴대폰 액정화면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사진이 있다. 그의 집 창을 열면 하늘 위로 보이는, 일본 나리타공항과 인천공항을 오가는 비행기다. 그는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을 이었다. “비행기를 볼 때마다 한국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15일 일본으로 돌아가는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을 바라는 뜻을 일본 사회에 전하겠다고 했다.

2012/01/20

隔離される慰安婦像



韓国政府も内心では運動家たちのパフォーマンスを快く思っていないのだろう。韓国も少しずつ大人の国になって来たのかもしれない。しかし、運動家たちは恐らくこの後世論に助けを訴えるだろう。そうなればどうなるか?韓国の世論がまだまだ成熟していないらしい事は、李明博大統領の来日時の行動が教えてくれた。(追記:水曜デモなどの際は、普通に写真が撮れるようである)

写真: 慰安婦像の回りで写真撮影を牽制する警察官。少女像には雨具が着せられている。外国人記者の中には、喧嘩が勃発するの防ぐ為に警察が守っていると、微妙に勘違いしたレポートをしている人が、そうではなく、日本との間の諍いの種になることを当局は恐れている・・・ということ。

20日午前ソウル、中学洞日本大使館を警備する警察が日本大使館の前に設置された慰安婦平和碑少女像への接近と撮影を防いで無理をかもしている。 現場警察関係者は少女像のき損憂慮と日本との敏感な事案である事から許可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話した。

Newsis 2012.1.20

20일 오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을 경비하는 경찰들이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의 접근과 촬영을 막아 무리를 빚고 있다. 현장 경찰 관계자는 소녀상의 훼손 우려와 일본과 민감한 사안이므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2/01/16

慰安婦像の製作者

この二人が問題の慰安婦像の製作者らしい。たぶん。
最初はもっと素朴なデザインだったが、どういう経緯があったのか、よりリアルな像に変更されたようだ。




当初のデザイン


ジャパン・バッシングを天使に仮託する人々


彼らが天使と言っているのは子供たちの事である。慰安婦ハルモニの言うことはよく分からない。しかし、学校の先生から教わった。なぜ幼い少女たちを(日本軍が)捉えていったのか・・・と疑う事を知らない子供たちは言う。

彼女たちを全面に立てて大人は言う。「日本は天使(子供)たちの叫びに」良心を苛まれないのか?そして(意図的に)少女の形に作られた造り物の像まで利用して自分たちのパフォーマンスを飾り立てる。像は、「天使のような目」で日本大使館を凝視しているのだそうだ。そして良心的日本人が登場する。

慰安婦騒動の中心にいる人々は、日本を道義的に見下してこれを叩く快感に酔いしれている。これを民族的快楽と呼んだのは産経の黒田記者であるが、さらにその為に子供まで利用している姿を見ると、道義的な問題を抱えているのは、この運動家たちの方だろう。

「すでに気持ちで許す準備を終えたおばあさんたち」という部分が面白い。元慰安婦たちは、自分たちの尊厳が回復されていないなどとは思っていないのである。彼女たちはとうの昔に、軍人相手の娼婦から民族的英雄に大出世しているのである。一方で20年を超える日本に対するネガティブ・キャンペーンに対し、許しがたいと思っている日本人も少なくない。


子供にマイクを持たせて日本政府を糾弾させる


日本は天使らの叫びが良心に警鐘鳴らさないのか?
許す気持ちに心が傾いたおばあさん達だが、日本政府の態度は

「日本は公式に謝りなさい!謝りなさい!謝りなさい!」
「日本は賠償しなさい!賠償しなさい!賠償しなさい!」

いつもよりきれいな幼い天使たちの声が日本大使館の前にこだました。1004回水曜集会に、とりわけ幼い天使たちの姿がたくさん眼に触れた。1004回集会に天使たちがたくさん訪れてきたようだ、という小説家キム・ウンソン氏の言葉にみな愉快そうに笑った。天気は鼻先をかすめる風がとりわけ冷たく感じられるほど鋭かった。

やはり政治家や偉い肩書を持つ人々は一人も見られない。あどけない小学生、中高生、大学生らがキム・ボクトン、キル・ユンオクおばあさんのお二人様を親しく囲んで立っている。遠く忠清南道公州からきた学生たちとのことだ。2012年1月11日に開かれた1004回日本軍慰安婦問題解決のための水曜定期集会の風景だ。

子供たちがおばあさん、がんばってください!と書いた色画用紙を持って立っていて、ある子供はおばあさんたちに差し上げる手紙文を朗読した。子供は手紙文で「私たちは幼くて慰安婦おばあさんたちの話がよく分かりません。先生に話を聞いて知ることになりました。戦争すれば戦争だけすればいいのに、なぜ幼い少女たちを捉えて行って悪いことをして悲しくさせるのか分からない」としておばあさん頑張って下さいと挨拶をした後、手紙文が書かれた紙をおばあさんに伝達した。手紙を受けた二人のおばあさんの顔には明るい微笑が浮かぶ。

日本大使館の前に立つ慰安婦平和碑はスカートとチョゴリを着た髪の短い少女像だ。13才の年齢で慰安婦に引きずられて行った少女を象徴するように幼くてあどけない姿で日本の謝罪を促すように大使館をぼんやり凝視している。
(中略:平和像の説明)
集会が終わって日本から韓国に帰化したというある女性が帰る車中で、座ったキル・ユンオクおばあさんの手を握って「本当に申し訳なくて恥ずかしい」という心情を明らかにして頭を下げるとすぐにキル・ユンオクおばあさんは逆に「私は日本人を嫌いません。私たちと似たような人たちに何の誤りがありますか。謝罪しない日本政府に誤りがあるのですね。」としてその日本人女性を慰めた。

良心的な日本の民間人は自分の国が犯したことを恥じるのに、日本政府は相変らず公式謝罪どころか品位を問題にして慰安婦少女像の撤去を主張している。日本政府は一日もはやく、すでに気持ちで許す準備を終えたおばあさんたちに心より謝って許しを乞わ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天使のような目で毎日、日本大使館を凝視する少女像の目と毎週の水曜デモのたびに慰安婦少女像の前を訪れ日本に公式謝罪を叫ぶおばあさんたちを慰める幼い天使たちの叫びが良心に警鐘をならして恥を自覚するならばの話だ。

2ch 蚯蚓φ訳 (副題は引用者が補った)

일본은 천사들 외침이 양심에 경종 울리지 않는가?
마음으로 용서할 마음 가진 할머니들 하지만 일본정부의 태도는


“일본은 공식 사과하라! 사과하라! 사과하라! ”


“일본은 배상하라! 배상하라! 배상하라!”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어린 천사들의 목소리가 일본대사관 앞에 메아리를 울리며 울려 퍼졌다. 1004회 수요 집회에는 유난히 어린 천사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1004회 집회라 천사들이 많이 찾아온 것 같다는 김운성 작가의 말에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날씨는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질 만큼 매서웠다. 역시나 정치인들, 무슨 번드르르한 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앳된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생들이 김복동, 길윤옥 할머니 두 분을 둘러싸고 다정하게 둘러 서 있다. 멀리 충청남도 공주에서 올라 온 학생들이란다. 2012년 1월 11일에 열린 1004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정기 집회 풍경이다.


어린이들이 니와 할머니 힘내세요! 라고 쓴 색도화지를 들고 서있고 한 어린이는 할머니들에게 드리는 편지글을 낭독했다. 어린이는 편지글에서 “우리는 어려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잘 모른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전쟁을 하면 전쟁만 하면되지 왜 어린 소녀들을 잡아다가 나쁜 짓을 해서 슬프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할머니 힘내세요 라고 인사를 한뒤 편지글이 적힌 종이를 할머니에게 전달했다. 편지를 받은 김복동 할머니와 길윤옥 할머니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추운 날씨 탓에 이전과 같은 문화 행사는 펼쳐지지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가 넘치는 화기애애한 집회였다. 게다가 평화비를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작가가 딸과 함께 집회 현장을 찾아서 더 의미가 깊은 집회가 되었다.


아다시피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세워진 위안부 평화비는 치마저고리를 입은 짧은 단발머리 소녀상이다. 13살의 나이로 위안부로 끌려 간 소녀를 상징하듯 어리고 앳된 모습으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듯 대사관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소녀상의 뒤 그림자엔 가슴에 맺힌 자유에의 갈망과 한을 상징하듯 나비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평화비 표지석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쓴 평화비라는 글자와 1992년 1월 8일부터 이 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1000차 수요시위 때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이 있은 후 소녀상 옆에는 소녀를 위로하듯 누군가 놓고 가는 인형과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맨발을 안타깝게 여긴 듯 누군가 발밑을 둘러놓은 목도리를 시작으로 늘 고운 모자와 목도리 따뜻한 옷, 무릎 덮개 등이 수시로 바뀌고 있어 시민들의 소녀상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운 마음을 짐작케 한다.


이제 소녀상은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시민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소녀상 주변에만 유독 가로등이 꺼져있는 것을 발견한 한 시민이 트위터에 날린 호소문으로 삼성의 마음을 움직여 미뤄오던 가로등을 수리해 다시 불이 들어오도록 만들기도 했다.


집회가 끝나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화했다는 한 여성이 돌아가는 차안에 앉은 길윤옥 할머니 손을 붙잡고 ‘ 정말 죄송하고 부끄럽다’는 심정을 밝히며 머리를 숙이자 길윤옥 할머니는 오히려 “나는 일본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어요.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정부가 잘못이 있는 거지요.”라며 그 일본인 여성을 위로했다.


양심적인 일본의 민간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일을 부끄러워하는데 일본 정부는 여전히 공식 사과는커녕 품위 운운하며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하루 빨리 이미 마음으로 용서할 준비를 마친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천사와 같은 눈매로, 매일 일본대사관을 응시하는 소녀상의 눈망울과 매주 수요시위 때마다 평화로의 위안부 소녀상 앞을 찾아와 일본의 공식 사과를 외치며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어린 천사들의 외침이 양심에 경종이 되어 부끄러움을 자각한다면 말이다.

2011/12/23

慰安婦像撤去させるな、良心的日本人女性の一人デモ



日本籍かどうかまでは分からないが、完全にネイティブの日本文だろう。韓国のメディアは、日本人女性による一人デモと報じている。



日本大使館前に立てられた慰安婦(少女)像は、新たな名所になっている。撮影スポットと言ってもいいかもしれない。これまでは「可哀想なハルモニ(お婆さん)」で世間の注意を引いて来た運動家たちだが、ハルモニが高齢化した今、彼女たちを看板にする事が難しくなってきている。今度は「可愛い少女像」がハルモニの代わりを務めてくれるという算段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

韓国の市民団体はこういった戦術に長けている。日本側も見習うべきだろう。

20日午後ソウル、鍾路区中学洞駐韓日本大使館の前である日本人女性が「少女像(?)を撤去せずに慰安婦ハルモニたちに謝れ」というプラカードを持ち一人デモをしていた。

Yahoo! Korea 2011.12.23

少女の像の回りに大勢の人が集まる。日本糾弾の「聖地」を作るという挺対協の悲願は少しずつ実現しているように見える。慰安婦についての教科書記載が義務付けられる事になった韓国では、政府ですらこの大衆的熱狂は止められない。米国産牛肉のBSE報道に端を発した「ろうそくデモ」のように、韓国民が後になって冷静に振り返る日が来るのだろうか?

ハルモニがいなくなってもシンボルは健在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 일본여성이 '소녀상을 철거하지말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2011/12/19

毎日新聞も突き放す韓国の慰安婦騒動



毎日新聞は進歩派だから、現場には慰安婦支援団体らに同情的な記者が少なくない。今でも、慰安婦問題について割合マメに取り上げている。だが、社説の書き手には色々な考えの人がいるようで、主張が右に行ったり左に行ったりする。しかし、産経でも読売でもない毎日新聞がこうした意見を表明したことは、日本の運動家たちも重く受け止めた方がいい。

アジア女性基金については批判もあるが、中心になった大沼保昭教授などは一生懸命だったと思う。村山政権下であったからこそ実現した基金であり、軍隊と性の問題で、過去にこの種の女性たちにこれだけのアフターケアをした国はないだろう。それを力づくで邪魔したのが韓国の慰安婦支援団体--挺対協であり、その時泣かされたのは、間に立って働いた日本のNGOだけではない。受け取りを希望した慰安婦は挺対協による虐めを受けたのである。

毎日新聞はさらに知恵を絞れと言っているが、仏の顔ですら三度まで。相手の為にも未来指向の両国関係の為にも、この件についてはもう相手にしないことである。


社説:慰安婦問題 原則曲げずに対応を

日韓の首脳が気軽に相互訪問して意見交換するのがシャトル外交の良さだが、今回は「肩ひじ張らずに」とはいかなかった。旧日本軍の従軍慰安婦問題に焦点があてられたためだ。日韓の「歴史のトゲ」がまだ抜けないことを物語るもので、未来志向の関係構築が口で言うほど簡単ではないことを実感する。

この問題が改めて浮上したのは韓国の憲法裁判所が8月、賠償請求権について韓国政府が十分な努力をしていないのは違憲との判断を下したことが背景にある。今月14日には元慰安婦の支援団体が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をモチーフにした少女の像を建てるなど、世論の関心が高まった。李明博(イ・ミョンバク)大統領が強い姿勢で会談に臨まざるを得ない事情があったことは理解できる。

だが、それを考慮に入れたとしても、首脳会談の大半をこの問題に費やしたとされる韓国側の対応は、日韓関係の大局からみてバランスを欠く。大使館前にこうした像を建てることは、これまで慰安婦問題に理解を示してきた日本の世論にも受け入れられるものではないだろう。撤去を求めた野田佳彦首相の対応は主権国家として当然である。

日韓の財産・請求権に関する問題は、65年の国交正常化に伴う協定で「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された」と明記されている。このため90年代に慰安婦への補償が外交問題になった時も、日本政府は国家賠償には応じなかった。その代わり官房長官談話で「当時の軍の関与」を認め、95年に「女性のためのアジア平和国民基金」を設立。国民各層からの寄付金を原資に韓国、台湾、フィリピンの元慰安婦に1人当たり200万円の「償い金」を渡すことなどを決め、首相の「おわびと反省の手紙」も届けることにした。基金は事業を終えて07年に解散している。

基金による償い金は、日韓双方の世論にも配慮し、さまざまな論議を経たうえでの政治決断だった。その経緯を踏まえれば、元慰安婦への賠償問題を日韓間で再び政治問題化することは適当ではない

ただ、韓国では国家による賠償ではないという理由で多くの元慰安婦が償い金を受け取っていない。日韓間にこの問題の解決をめぐる認識の溝があることは事実だ。日本側にも道義的な責任はある。野田首相は「人道的な見地」で対応する考えを示したが、外交の原則を曲げない範囲で知恵を絞る工夫は大事だろう。

従軍慰安婦のような女性の人権問題に国際世論は厳しい。政府は過去の対応をきちんと世界に説明する努力を続けるべきだし、女性の名誉や尊厳に関わる問題には一層積極的に取り組む姿勢が必要だ。

毎日新聞 2011年12月19日 2時31分

2011/12/15

産経新聞、超速です



産経は47NEWSのtwitterでの速報より30分も早く(AM 7:17)このニュースを記事にしていたようだ。はやっ!

朝刊には間に合わなかったと思うが、産経の意気込みのほどが知れる。たぶん前もって原稿を準備していたのだろう。準備していたというのは韓国政府も同じで、たしか日本大使館前のデモは毎回昼からだったと思ったから[要確認]、つまりそれに間に合うようにタイミングを計っていたのだろう。

韓国の政界筋の発言とされる「挺対協の活動が『聖域化していて批判の対象となりにくい』」というのは、その通りだろう。日本側が「(外交公館の)尊厳」を持ちだしたのは、よい作戦だ(産経は「尊厳を蹂躙」とまで書いたw)。日本人にも尊厳があるのだという事を、韓国の人達に理解してもらわなければならない(昨日は外務省前で取材していたので、このエントリーは準備稿のまま一日遅れでupとなった)。


在韓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記念碑、韓国団体が建立「外交公館の尊厳を蹂躙」

【ソウル=加藤達也】日本統治時代の元慰安婦を支援する「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対協)」は14日午前7時過ぎ、ソウル市鍾路(チョンノ)区の在韓日本大使館前路上に慰安婦の碑の建立を始めた。挺対協は同日中に据え付けを終え、正午ごろには除幕式を行う予定。

碑の建立について在韓日本大使館は外交ルートを通じて韓国側に建立させないよう要請してきた。だが建立が現実となったことで、「外交公館の尊厳に関わる重大な問題」(大使館幹部)とし、韓国側に改めて抗議する方針だ。

また日本の対韓感情の悪化は避けられず今月17、18日で調整が進められている李明博大統領の訪日にも影響が避けられない情勢となった。

碑は高さ約120センチの少女の像に空席の椅子が並ぶデザイン。挺対協は碑を「平和の碑」と名付け、「訪れた人に、像を隣に記念写真を撮ってもらいたい」としている。

碑の建立計画は今年に入って本格化。挺対協は所管の区役所などへの働きかけを進め、7月にデザインを公表した。

一方、区役所側は政府機関に対し建立の許可に関する問題点の有無などを照会。その結果「設置を妨げる理由はない」として8月下旬に許可を決定し、挺対協側にも口頭で「問題ない」と伝えていた。

だが、その後、韓国外交通商省が区に対し「碑が設置されれば日本大使館が混乱するのではないか」と非公式に意向を伝達。これを受け、区側は方針を見直し、挺対協に「碑の設置許可は区の権限の対象ではない」と通知し、「現状のまま設置されれば、違法状態となる」(鍾路区役所)との見解を示していた。

今後、日本側は韓国側に碑の撤去を求めていくものとみられるが、韓国の憲法裁判所が今年8月、元慰安婦の賠償請求権をめぐる韓国政府の努力不足を違憲と判断しているほか、挺対協の活動が「聖域化していて批判の対象となりにくい」(韓国政界筋)ことから、世論への配慮もあり、政府として撤去を働きかけるのは難しいとみられる。

産経   2011.12.14

2011/12/14

[速報も]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の像」設置開始




昨日韓国政府が不干渉宣言をしたので、これは事実上のGOサインだと思っていたが、やはり第1000回記念水曜デモが開催される今日に合わせて慰安婦の像の設置工事が開始された。

さきほど日本のネットメディアも共同通信の速報を出した。

挺対協としては大勝利というところで、本日東京の外務省前で行われる「人間の鎖」の参加者も喜んでいるだろう。しかし、これは前にも言ったが、この像はある人にとっては「平和の像」なのかもしれないが、見方を変えれば反日運動の記念碑でもある。数十年後の日本人や韓国人がこの像を見てどう思うか、それは分からない。しかし、この像が長く、何十年、もしかしたら何百年と現地に佇むことは間違いない。

あとは、歴史の裁きに任せよう。

韓国政府「慰安婦像」に事実上のGO?



事実上のGOサインかな(追記の通り、やはり事実上のGOだったらしい)?挺対協としては、なんとしても14日の水曜デモ(第1000回)にお披露目したいので、ギリギリのタイミングで韓国政府が配慮したのかもしれない。慰安婦請求権について「言い訳する余地がない」と言っているのだから、「被害者」は韓国政府にも賠償を求めても良さそうなものだが。

慰安婦像設置 韓国当局「関与する問題ではない」

日本の植民地時代に従軍慰安婦にされた韓国人女性を支援する市民団体「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が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に設置を計画している「平和の碑」と関連し、外交通商部の趙炳ジェ(チョ・ビョンジェ)報道官は13日、「政府が関与する問題ではない」と明らかにした。

同団体は日本大使館前で毎週水曜日に開いている抗議集会「水曜集会」が1000回目を迎える14日、従軍慰安婦を象徴する少女の像を設置するとしている。日本政府は外交ルートを通じて設置の中止を求めており、外交通商部は日本側の要求を同団体に伝えているという。

趙報道官は「昨日、もう1人の被害女性が亡くなり、被害女性は63人となった。設置の中止や設置場所の変更を求める状況ではない」と説明した。また、外交施設の安全と品位維持に協調する義務があるが、「平和の碑」が果たして品位維持に反するものかは疑問だと指摘した。

慰安婦請求権問題と関連しては、「水曜集会が1000回に達するまで解決できなかったことは、言い訳する余地がない」と話した。ただ、日本政府に外交的協議を引き続き促していると説明。さらに外交協議の可能性がないと判断されれば、仲裁委員会に付託する案も検討しているとした。

一方、韓国政府は今週末に開催されると予想される韓日首脳会談で、慰安婦請求権問題を提起するとされる。


追記: 14日7時45分: 47NEWS(共同通信)がtwitterで速報を出した(産経新聞はその30分前に記事を配信していた。はやっ)。




.

2011/11/02

阿比留記者の杞憂



産経の阿比留記者は嫌いではないし、慰安婦問題について幾つか貴重な情報を与えてくれている。しかし、民主党や菅直人批判に見られたようにジャーナリストとしては感情的過ぎるような気がする。この論説もその為に空回り気味。

これも前から言っていることだが、韓国を初め各国に建てられつつある「慰安婦の碑」は反日運動の痕跡でもあるのだから、長い目で見れば韓国人にとってバツの悪い記念碑になるだろう。・・・我々日本人が諌めてやる必要はないのである。日本国民の対韓感情が悪化するという懸念も杞憂だろう。

また韓国の国民の強い訴えにも関わらず日韓首脳会談で慰安婦問題が取り上げられなかった事は、大きな成果である。この問題に関して日韓両政府とも両国関係にマイナスはあれど益なしと考えている事が確認できた。もちろん韓国の政権が変われば多少の変化もあろうが、韓国期待の民主党(日本)政権すらこの問題から手を引き、韓国も今後180度転回するのは難しいだろう。

ただ、この問題と韓国の憲法裁判所判断の余波で、再び慰安婦「騒動」が四大紙に取り上げ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良かった。改めてこの騒動が終わっていないことが、多くの国民の知るところになったはずだ。「謝罪マニア」や「問題先送り主義者」が問題を複雑化させて来たという阿比留の指摘は正しい。慰安婦問題の真相解明の為に元慰安婦の聞き取り調査の結果を公開させようという主張にも賛成である。彼が言うように「日韓関係の正常化のためにもすべてを白日の下にさらすべき」である。


慰安婦記念碑建立を阻止せよ

一見小さな出来事のようでも、政府がただ腕をこまぬいて見ているだけだと、日韓関係に取り返しのつかない禍根を残す計画が韓国で進んでいる。

元慰安婦援団体の「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対協)」がソウルの在韓日本大使館前の路上に「記念碑」建立を計画し、ソウル市が許可したため12月にも設置される問題だ。

碑は慰安婦を象徴する高さ約120センチの少女の像の隣に空席の椅子が並ぶデザインだ。挺対協は毎週水曜日に日本大使館前で集会を開き、民主党の岡崎トミ子元国家公安委員長もかつて参加した慰安婦問題糾弾集会が1000回を迎える12月14日、除幕式を実施する意向だという。

だが、日本の軍や官憲が強制的に女性を集めた証拠は、政府が国内外の公文書館や関係省庁に八方手をつくして調べても一切見つからなかった。

挺対協は勤労動員された女子挺身隊と慰安婦を意図的に混同し、悲劇を演出しようとしているが両者は全く別物だ。貧困のため親に売られたり、悪質な業者にだまされるなどして意に反して慰安婦となったりした女性はいただろうが、それを日本軍のせいにするのは筋違いだ。

こうした歴史的事実を踏まえ、記念碑建立をやめるよう訴える機会が19日の日韓首脳会談だった。ところが、野田佳彦首相は会談後の共同記者会見で「慰安婦問題は出なかった」と述べ、韓国側がテーマとして持ち出さなかったこと自体が成果であるかのように胸を張った。

「いっそ記念碑建立予定の大使館前の路上にドラえもんやガンダムの像を100体ぐらい建てようか。とにかく記念碑を建てさせなきゃいいんだから」

記念碑建立取りやめを韓国側に働きかけている外務省筋はこんなヤケクソ気味のアイデアを披露する。韓国における日本の象徴である大使館前に史実と反する少女の強制連行を表した記念碑が建てば、日本は「性奴隷(セックススレイブ)の国、日本」であることを受け入れさせられた形になる。当然、日本国民の対韓感情は「そこまでやるのか」と冷え込むことだろう。

●政府は情報公開を

歴史問題ではいつも、自分と同調者だけが良心的で立派だと信じ込む謝罪マニアや、その場しのぎの問題先送り主義者が問題を複雑化させてきた。

「野蛮な行いをしながら公式な謝罪をしていないのは日本の国会議員として恥ずかしい。帰国したら慰安婦問題を広める」

今月12日の挺対協の集会には社民党の服部良一衆院議員が参加し、こう発言している。こうしたタイプの人にとって、韓国側が主張する慰安婦の強制連行説は、いくら根拠が薄かろうと反証があろうと疑ってはいけないドグマなのだろう。

また、慰安婦募集時の日本軍・官憲の関与の「強制性」を政治判断で認め、国際社会にそれを広めてしまった1993(平成5)年の「河野洋平官房長官談話」の罪もとてつもなく重い。

「女性が強制的に連行されたものであるかは、文書、書類ではなかった。本人の意思のいかんにかかわらず連れて来い、という命令書は存在しなかった」

河野氏自身が後にこう認めているのである。韓国政府の要請に安易に応じ、姑息(こそく)に出されたこの政府談話によって、日本の国際イメージはどれほど損なわれ、問題を長引かせることになったことか計り知れない。

結局、河野談話の根拠は韓国での元慰安婦16人への聞き取り調査だけだった。これも談話作成にかかわった石原信雄氏(当時官房副長官)が「裏付け、本人の親に会うとか当時の関係者に会うとかそういう手段はない。もっぱら本人の話を聞くだけだ」と証言している。

私はかつて、この聞き取り調査について外務省と内閣府に情報公開請求を行ったが、ともに「元慰安婦たちのプライバシー」を理由に却下された。だが、プライバシーを保護しながら情報公開する手段もあるはずた。日韓関係の正常化のためにもすべてを白日の下にさらすべきだ。




産経  2011.10.31

2011/09/28

慰安婦の碑に外務省「適切な対応を」




適切な対応って?産経は感情的になるのでなく、この(慰安婦)問題の背景を丁寧に報じて行けばいいのである。

ソウルの大使館前「慰安婦」記念碑設置 外務省が「適切な対応」要求

日本統治時代の元「従軍慰安婦」を支援する団体が計画している在韓日本大使館前の路上の「記念碑」建立をソウル市が許可した問題で、外務省が韓国側に対し「適切な対応」を要求していることが27日、分かった。山野内勘二アジア大洋州局参事官が自民党外交部会で明らかにした。

団体側の計画では12月14日に除幕式を行うとされており、山野内氏は「通常の外交活動を行う上でも非常に否定的な影響があり得る」と述べ、大使館を通じて懸念を伝達してい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

産経 2011.9.27

政治家個人はいろいろだろうが、韓国政府としては彼女たちを持て余しているところも実際あるのではないか?

在韓日本大使館前の慰安婦碑設置計画、日本が中止要請

【ソウル聯合ニュース】日本の植民地時代に従軍慰安婦にされた韓国人女性を支援する市民団体「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がソウルにある日本大使館前の路上に「平和碑」の設置を計画していることについて、日本の外務省が碑を建設しないよう要請したことが28日、分かった。韓国の外交通商部当局者が伝えた。

同部は市民団体の設置計画や目的などを調べる方針という。

ただ、政府は平和碑設置の許認可権を持っていないため、市民団体の設置を強制的に中止させるのは難しいとみられる。同当局者は「外交的に適切でない行為があれば自制を求めることはできるが、強制力はない」と述べた。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は1992年から毎週水曜日、ソウルにある日本大使館の前で慰安婦被害者への謝罪を求める集会を行っている。集会が1000回を迎える12月14日に平和碑の除幕式を行うを予定だ。

2011/09/20

大臣も後押し、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像建立へ



こういった動きは止めようがないだろう。むしろ、慰安婦騒動が形になって残るという事だから、悪いことではないと思う。産経は「外交摩擦が激化する可能性」などと書いているが、ちょっと考え難い。日本の泣き寝入りで終わるだろう。これで立場が逆なら、両国間協議の受け入れ拒絶の理由に使われるところだろうが、この辺が、攻めの外交と受け身の外交という日韓の外交スタイルの違いなのだろう。

右の写真で挺対協の幹部が披露しているのが、「平和の碑」。慰安婦の記念碑というより、水曜デモの記念碑というのが実際だろう。20年間に渡るジャパン・バッシングの象徴に「平和」の碑と名付けるセンスがすごい。こういうイメージ戦略を、日本の保守系団体はもっと学んでもいいのではないか?


在韓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記念碑 韓国側が建立許可

【ソウル=加藤達也】日本統治時代の元「従軍慰安婦」を支援する団体がソウルの在韓日本大使館前の路上に「記念碑」建立を計画、管轄のソウル市鍾(チョン)路(ノ)区が申請審査を終えて建立を許可していたことが19日、分かった。外交筋が明らかにした。法的許可を受け、碑は12月にも設置される可能性が高まった。また、審査過程で韓国の保健福祉相が設置を推奨する文書を区側に提出して団体を後押しするなど、審査が政治的な色合いが強いものだったことも判明した。

日本側は、大使館前に反日的な構造物が設置されることに強い懸念を表明していた。野田佳彦首相は21日に李明博大統領とニューヨークで就任後初の首脳会談に臨むが、「碑」の審査通過が明らかになったことで日韓の外交摩擦が激化する可能性が出てきた。

碑は慰安婦支援団体の「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対協)」が今年7月に発表。慰安婦を象徴する高さ約120センチの少女の像の隣に空席の椅子が並ぶデザインで「平和の碑」と名付けている。挺対協は毎週水曜日に日本大使館前で開いている集会が1千回を迎える12月14日、除幕式を実施する意向だ。

鍾路区の審査は8月22日に終了。当初、韓国側に「場所が微妙で外交問題にもなりかねない」(同区)などと慎重論もあったが、韓国が不法占拠を続ける竹島(韓国名・独島)をめぐる反日世論の激化が審査に影響した可能性もある。

慰安婦問題をめぐっては今月、韓国政府が日本政府に賠償請求権の確認に関する協議を申し入れたが、日本側は個人の賠償請求権は消滅したと拒否している。

産経新聞 2011.9.20

2011/07/09

日本大使館前を平和を求める場に[挺対協]



水曜デモの碑に関するニュース。韓国発の日本語ソースもあったので、紹介する。こちらの方が情報源としては正確だろう。要するに、ハルモニという強力なカードが後10年ぐらいしか使えないと分かっている挺対協は、こういった記念碑や資料館を作ることで「ハルモニ後」に備えているのだろう。

散々日本に対する憎しみと敵意を煽った挙句、「平和を求める象徴的な場所にしたい」とは、どこまで人をバカにしているのか。

日本植民地時代の従軍慰安婦に対する戦後補償を求めて、1992年から毎週水曜日に開かれている抗議集会が、今年12月に1000回目を迎えることから、これを記念して、韓国駐在日本大使館の前に平和を祈る石碑を建てる計画が進められます。

これは、従軍慰安婦問題の解決に向けて活動している市民団体、「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が6日、明らかにしたものです。

それによりますと、今年12月14日に従軍慰安婦被害者の水曜集会が1000回目を迎えることを記念し、集会が開かれてきたソウルの鍾路(チョンロ)区にある韓国駐在日本大使館の前に平和を祈る石碑を建てる計画で、その費用を集めるためのキャンペーンを始めるということです。
このキャンペーンは、1000ウォン以上の寄付をした人が、次に寄付を行う人を指定していくというリレーの方式で行われるということです。

これについて「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の代表は、「被害者の方々が高齢であるため、いつまでこの集会が続けられるかは予測できないが、その情熱と意志を石碑に込め、平和を求めるという象徴的な場所にしたい」と説明しています。

2011/07/06

日本大使館前に「連行される慰安婦の像」 デザイン公開



いつものように、韓国最大の慰安婦支援団体、挺対協は発想の天才である。これは現代表であるユン・ミヒャン(写真左)の才能に負うところが大きいのだろう。今回も大勢の子供たちが日本大使館の前に集められ、シュプレヒコールを繰り返した。

今回の水曜デモでは、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に1000回に渡る執拗な日本糾弾デモ(水曜デモ)を記念し、碑を建てることが改めて公表された。碑の名前は「平和の碑」、両国間にナショナリズムと憎しみを20年間に渡り掻き立てた挙句、「平和」の碑だというのである。彼女たちは、大使館前の通りを「平和路」と名付けることも提案している。かつて同胞の学者から、日本と喧嘩することが目的と看破された彼女たちに、果たして「平和」を語る資格があるのか?


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問題(水曜デモ)の碑を建てる計画について、産経の黒田記者の取材には地元の区役所は「外交問題にもなりかねないので慎重に対処する」と答えたというが、挺対協の関係者は韓国のメディアに区役所から援助の申し出があったと話している。どちらが本当かは分からない。

1992年から1千回近く続いている慰安婦被害者らの「水曜デモ」を記念して駐韓日本大使館の前に平和費を建設する方案が推進される。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身隊対策協)は第1千回水曜デモが開かれる今年12月14日駐韓日本大使館前の水曜デモの場所に「平和の碑」を建てることにし、後援者リレーキャンペーンを始めると6日明らかにした。

挺身隊対策協はこの日正午ソウル、鍾路区(チョンノグ)駐韓日本大使館の前で977次需要デモを兼ねた「平和碑建設のための希望のリレー発隊式」を開催しこのような内容を発表した。

キャンペーンは1千ウォン以上の建設基金を拠出した「希望走者」が次の後援走者に募金バトンを渡す方式で進行される。

この日、希望リレー発隊式では富川(プチョン)市民連合女性会が初めての走者宣言をし、彫刻家キム・ウンソン・キム・ソギョン氏がデザインした平和の碑が安易(?)公開された。

高さ120cmほどの平和の碑は日帝に引きずられて行った当時の被害者たちを形象化した少女形の碑石におばあさんの姿の影が垂れた形に作られる予定だと挺身隊対策協は説明した。

挺身隊対策協は今月の初めまでボランティアメンバー助けと次に「アゴラ」などを通じて700万ウォン余りを募金し水曜デモの場を「平和」と命名しようというキャンペーンも進行している。

第1千回水曜デモの当日には世界各地で連帯デモを行い、その週を「日本軍慰安婦学習週間」と名づけ全国初め・中・高等学校で共同授業をする計画だ。

ユン・ミヒャン挺身隊対策協常任代表は「水曜デモが1千回続いているということだけで、すでにこの場所は歴史的遺跡になった」とし「ハルモニたちがいつまでこちらにいらっしゃる訳には行かないが、その情熱と意志を碑石に入れて平和を希望する象徴的場所で残そうとする趣旨である」と話した。

また他の挺身隊対策協関係者は「管轄鍾路(チョンノ)区庁も(碑石建設に)協力するという立場を明らかにした」として「場所選定問題に対する日本大使館側反応が心配だが原案のとおり推進する方針」と明らかにした。



정대협 日대사관 앞 기념비 건립 추진…후원 릴레이 돌입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1992년부터 1천회에 가깝게 이어지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요 시위'를 기념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천회째 수요시위가 열리는 올해 12월14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장소에 `평화비'를 세우기로 하고 후원자 릴레이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6일 밝혔다.


정대협은 이날 정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977차 수요시위를 겸한 `평화비 건립을 위한 희망릴레이 발대식'을 열고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캠페인은 1천원 이상의 건립 기금을 낸 `희망주자'가 다음 후원 주자에게 모금 배턴을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날 희망릴레이 발대식에서는 부천시민연합 여성회가 첫 주자 선언을 했으며 조각가 김운성ㆍ김서경씨가 디자인한 평화비 가안이 공개됐다.


높이 120cm 가량의 평화비는 일제에 끌려갔을 당시 피해자들을 형상화한 소녀 모양의 비석에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양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정대협은 설명했다.


정대협은 이달 초까지 자원봉사자 도움과 다음 `아고라' 등을 통해 700여만원을 모금했으며 수요시위 장소를 `평화로'로 명명하자는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1천회째 수요시위 당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연대 시위를 벌이고 해당 주간을 `일본군 위안부 배움 주간'으로 정해 전국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공동 수업을 할 계획이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수요시위가 1천회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이 장소는 역사적 유적지가 됐다"며 "할머니들이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 수는 없지만 그 열정과 의지를 비석에 담아 평화를 희망하는 상징적 장소로 남겨두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또다른 정대협 관계자는 "관할 종로구청도 (비석 건립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장소 선정 문제에 대한 일본대사관 측 반응이 염려되지만 원안대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11/06/26

ソウル慰安婦運動の碑、地元役所の本音は?



また2chの蚯蚓φ訳を拝借。挺対協が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に日本に対する抗議活動の碑を建立しようとしているという話は、何も今新しく出てきた話ではなく、このサイトでもこれまで何度かお伝えしてきた。

しかし、外務省ではこの話は掴んでいなかったらしく、日本大使館側が慌てていると産経の黒田記者が報じたのは今月の11日。黒田記者が鍾路区役所の担当部署に取材したところ、「まだ許可はしていない。団体に詳しい計画書を出すように言ったがまだ届いていない。場所が微妙で外交問題にもなりかねないので慎重に対処することになろう」という答えが返ってきた

ところがところが・・・関係者は「鍾路区庁から援助を申し出られた状態で、試案は遅くとも7月初めに出てくるものと見られる」と話しているという。どちらが本当なのだろう?どちらにしろ、碑は建つだろう。しかし前も言ったように、これも慰安婦「騒動」のひとコマであり、わざわざ当事者が形に残してくれたのである。ヘイト・スピーチもこうした碑も貴重な歴史の示準化石なのである。

20年間紆余曲折の末..慰安婦博物館できた

日帝の蛮行と当時女性たちが経験した人権蹂躪の歴史を忘れないためにソウルの真ん中に「慰安婦博物館」が建てられる。敷地と募金問題、また、一部保守団体の反発などで難航してきた慰安婦博物館が来る12月14日、慰安婦おばあさん定期水曜集会1000回をむかえてその姿を現す予定だ。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対協)は21日去る1992年から20年余りの間続けてきた水曜集会の歴史と慰安婦おばあさんたちの歴史的意味を賛え、一歩進んで戦時女性人権蹂躪問題を扱うために「戦争と女性人権博物館」の建設を確定したと明らかにした。

ソウル、麻浦区城山洞に位置する博物館は地下1階~地上2階規模で常設・企画展示室、資料室などを整える予定だ。来る7月まで建物の買い入れを終えリモデリングを通じて12月開館までに博物館をつくりあげる計画だ。

慰安婦博物館は全額、民間の寄付金で建てられる。挺対協は去る2003年からホームページを通じて1万人建設委員募集キャンペーンとポータルサイト寄付プログラムなどオン・オフラインで募金活動を繰り広げ現在の総募金額は17億ウォンに達する。既に知られたことと異なりソウル市と政府の財政支援はただ一銭もないと挺対協は明らかにした。

キム・ドンヒ戦争と女性人権センター事務局長は「十匙一飯で建設基金を集めた。毎月お小遣を送ってきた学生たち、退職金の半分を寄付した教師、全国の修道女と女性労働者らの基金、名前を明らかにしないまま1000万ウォンを寄付したおばあさんなどがその主人公」と話した。

また、挺対協は水曜集会1000回をむかえて日本大使館前に平和碑をたてる事業も進行中だ。平和碑は過去20年以上毎週日本大使館の前で行ってきた水曜集会の歴史を賛えるためのもので今年の初めから議論が始まり、彫刻家キム・ソギョン、キム・ユンギョン夫婦が碑石製作を担当する予定だ。製作費用は昨年11月以来、水曜集会参加者から1人当り1000ウォン以上ずつ募金して現在450万ウォン程度集められた状態だ。去る10日からダウム、アゴラでも募金が進行中だ。

キム事務局長は「日本大使館の異議提議が予想されるが鍾路区庁から援助を申し出られた状態で、試案は遅くとも7月初めに出てくるものと見られる」と話した。

日本語訳 蚯蚓φ 2ch

20년간 우여곡절 끝에..위안부 박물관 생긴다


일제의 만행과 당시 여성들이 당했던 인권 유린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서울 한복판에 ‘위안부 박물관’이 세워진다. 부지와 모금 문제, 또한 일부 보수단체의 반발 등으로 난항을 겪어왔던 위안부 박물관이 오는 12월 14일 위안부 할머니 정기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1일 지난 1992년 이후 20여년 동안 이어온 수요집회의 역사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더 나아가 전쟁 시 여성 인권 유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건립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할 박물관은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이며 상설ㆍ기획 전시실, 자료실 등을 갖출 예정이다. 오는 7월까지 건물 매입을 마무리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12월 개관까지 박물관을 꾸려갈 계획이다.


위안부 박물관은 전액 민간의 기부금을 통해 지어진다. 정대협은 지난 2003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1만인 건립위원 모집 캠페인과 포털사이트 기부 프로그램 등 온ㆍ오프라인에서 모금활동을 벌여왔으며 현재 총 모금액은 17억원에 달한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서울시와 정부의 재정 지원은 단 한푼도 없다고 정대협은 밝혔다.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십시일반으로 건립 기금을 모았다. 매달 용돈을 보내온 학생들, 퇴직금의 절반을 기부한 교사, 전국 수녀님들과 여성 노동자들의 기금,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1000만원을 기부한 할머니 등이 그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또 정대협은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세우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평화비는 지난 20여년간 매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해온 수요집회의 역사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올해 초부터 논의가 시작됐으며 조각가 김서경, 김윤경 부부가 비석 제작을 담당할 예정이다. 제작 비용은 지난해 11월부터 수요집회 참여자들로부터 1인당 1000원 이상씩 모금해 현재 450만원 정도 모아진 상태다. 지난 10일부터 다음 아고라에서도 모금이 진행 중이다.


김 사무국장은 “일본 대사관의 이의 제기가 예상되지만 종로구청에서 도와주겠다고 나선 상태로 시안은 늦어도 7월 초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1/03/06

水曜デモ1000回記念、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像建立へ



これは先月のニュース。見逃していた。

ソウルの日本大使館といえば、独島アカデミー所属大学生らが昨年、「竹島」で表記した書籍らを破るパフォーマンスを行っていたし、過去にも独立記念館の関係者が日本の教科書を燃やしたり、日本国の首相の写真が焼かれたり、08年の7月には、愛国的市民がキジを殺していたこともあった。

確かに「平和」を考えるにはいい場所ではあるだろう。韓国市民にとっては反日活動の聖地でもあった。


在韓日本大使館の前に日本軍慰安婦問題の解決を願う内容の記念碑の建設が本格的に推進されています。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は、今日(16日)在韓日本大使館の前で957回定期水曜集会を開き、「水曜集会千回目を迎える12月14日、別名'平和の碑』を建てる計画だ」と公表した。

協議会は、「石碑に入る具体的な内容はまだ確定されていない」としながら「水曜集会千回となる前に、日本の法律上の賠償と謝罪を望む」と述べています

MKニュース 2011.2.16

竹島表記の書籍を破りすてる子供たち(2010年2月)

小泉首相の写真を燃やす。福田総理の写真も燃やされた

日本の教科書を焼く(05年3月)

竹島の日に反対して日章旗を燃やす(06年2月)

キジを殺すパフォーマンス(08年7月)

日本から「良心的市民」がデモに参じることも(06年7月)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비 건립"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희망하는 내용의 기념비 건립이 본격 추진됩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오늘(16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957차 정기수요집회를 열고, "수요집회 천 회를 맞는 12월 14일 일명 '평화의 비'를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협의회는 "비석에 들어갈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수요집회 천 회가 되기 전에 일본의 법적 배상과 사죄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